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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나 Sep 18. 2020

결혼을 다시 생각한다

분투하는 인생들의 민낯

20대 때에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멋진 문장이었던가!

결혼으로 달려가는 인생들답답하고 측은해 보일만큼 제도적인 구속으로 여겨졌다.

당시 난 '급진'까지는 아니었으나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그러니 결혼은 인생의 무덤처럼,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기를 포기한 이들이 숨기 쉬운, 비겁한 도피처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대부분의 장면이 그렇듯,

호기로운 문장만큼 살아지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가장 늦게 결혼할 것처럼 큰 소리치며 기혼자들을 폄하하던 나는 주위의 누구보다 빨리'결혼'이라는 초신세계로 진입했다. 그것도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 직면하여 미국으로 날아가기까지 하는 도주를 감행하면서. 이쯤되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음을 의미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눈물 나는 후회가 올지라도 자신의 미친 한 순간의 선택에 대한 책임 내지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 이후의 지난한 삶을 견뎌야 함을 의미한다.

그 빌어먹을 자존심 말이다.


서른 즈음, 미친 사람마냥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후의 결혼 생활을 보자면  그 당시 미쳤던 것이 분명하다라고 밖에 더 이상 표현할 말이 없다. 

우리 인생에 한번은 그런 순간이 온다. 저항할 수 없는 쓰나미같은 감정의 파도가 몰아쳐 앞뒤 생각 할 겨를조차 없는 시간, 그 파도를 정신없이 타다 보면 어느 순간 해변에서 너무나 멀어져 돌아가기 요원한 지점까지 밀려와 있다. 운 좋게 구조를 받는다면, 이는 대한민국 부부의 7퍼센트에 드는 경우에 해당한다. 7퍼센트는 유명한 소통전문 강사의 말이다. 그런 부부가 있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사이가 좋은 부부.

웃픈 현실이지만 매우 공감되는 통계치다.


뒤돌아보면,

지난 17년간의 결혼 생활은 한마디로, 분.투.다.

살아남기 위해 하루 하루의 장애물을 묘기부리듯 넘어가는데 눈물, 콧물은 마구 쏟아진다.

기이한 탄성회복력의 단단한 고무줄에 묶인 것처럼

그 현장을 쉽게 탈출하지도 못한다.

호기로운 문장은 그저 문장이었을 뿐임을

재차 확인해야 하는 처절함 또한

매일 마주하니 담담해지는 그 현장이다.

사랑을 위해 죽을 것처럼 달려나간 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그 사랑의 절정은 결혼과 동시에 죽고

이제 사랑해야 한다는 결단과 책임으로 사는 그 곳이

결혼의 세계라는,

강렬한 태양 아래 선크림도 르지 않아

바짝바짝 타는 얼굴로 서 있는 그 곳이 바로

내가 마주한 결혼의 민낯이었다.

한편으로 분에 넘치는 인내를 배웠다는 점에서

한 인간으로서 성숙할 수 있었던 점은

기혼자의 특혜로 꼽을 수 있겠다.

이 특혜를 누리지 못했다면 그 유명한 7퍼센트 집단일 터이니, 축복받은 그대들이다.


모든 것을 처음 경험하지만, 잘 해내지 못할 때

배우자에게 조차 폄하당하는 신뢰의 무너짐을 마주해야 한다.

어디 그 뿐이랴.  

때로 낯선 듯 마주하는 같이 사는 이에 대한 놀라움,

그 출구없는 충격을 무마시키는

아주 가끔의 가족이라는 하나됨의 위로,

그러나 그도 잠시,

오롯이 떠맡은 양육에 대한 평가절하와 감사 생략,

그렇게 쌓인 세월 속에

항상 자신의 일은 맨 마지막으로 밀려나고 

조금 남는 시간이 있을 때  후다닥 해치워야 는 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 익숙해진 스스로를 현모양처라는 우아한 단어로 포장하며 하루를 또 넘긴다.

그 현모양처라는 자기기만의 세계에 숨어든 어느 날부터  골방에서의 나는 큰 소리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진단을 받은 적 없지만 우울증 아니면 화병이었을 터.

다 큰 딸이 문을 열고  하는 말,

 ''엄마, 하고 싶은 걸 해''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때 정치인들을 인터뷰하던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던

멀고도 먼 옛날 이야기가 희미하게 생각난 것이다

결혼이후의 출산과 육아는 거의 모든 면에서

내 삶을 전복시켰다. 기혼자들을 답답한 인생으로 여기던 오만한 눈은, 자녀 양육에 목숨걸고 거기서 내 존재의 이유를 찾기에 혈된 눈으로 어느덧 바뀌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결혼한 여성들이 겪는 과정이 그러하리라 짐작된다.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남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었다는

미셸 오바마 전 미국 영부인의 고백이

사이다처럼 여겨진 것이 비단 나 뿐이었을까!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는 나는

오늘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한다.

분투하는 인생들의 눈물 콧물의 현장인

결혼을 다시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나 웃픈 현실의 결혼은

드라마 속 부부의 세계와는 사뭇 다르다.

그 현장은

발버둥치지만 애쓴만큼 되지 않아 낙심된 마음조차

추스릴 여유도 없고,

멋드러지게 '끝내!'를 차마 외치지도 못는 현장이다.

싸우지 않던 날이 없던 부모님의 이혼 서류를 고치기 위해 직접 가서 다시 부모님의 혼인신고를 했던

상처많던 나처럼 딸은 크지 않기를 바라기에

어른인척 나는 서툴게 그 자리를 지킨다.

그 자리를 온 힘 다해 지키고 서 있는 스스로에게

가끔 이야기해 주고 싶다.

애썼다고.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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