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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나 Sep 23. 2020

실패에게 물었다

너, 꼭 내게 왔어야만 했니?

고백부터 하자면 난 변호사시험 오탈자다.

이는 다섯 번 같은 시험에 불합격했다는 이야기다.

이해하기 쉽게 이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시간 그리고 돈을 쏟아부으며

그 나이에 보통의 평균인들이 하는 많은 역할들을 포기하고

이방인으로 살았음을 의미한다.

애초에 원하던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며

가족들조차 그런 나를

불쌍한 인생이라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연민 어린 시선을 받아내고

때로 더 이상 '이 사람에게는 기대 없음'을 가지고 대하는 관계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해야 했음을 의미한다.

이 오탈자라는 실패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가끔 외로웠고

자주 화가 났다.

오늘 이 불편하고 숨기고 싶은 과거를 꺼내 든 이유는

실패에게 묻고 있던 꽤 오랜 시간 동안의

내 안의 질문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답을 찾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다

너, 꼭 내게 그렇게 왔어야만 했니?

너 아니어도

안간힘을 써야 했는데.


서른여덟의 기혼여성으로

로스쿨을 가기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당시 암투병 중이시던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학병원에 다녀오던 날

병원을 나서시며 불쑥 말씀하시던 아버지,

"네가 로스쿨 들어가면 내 병이 낫겠다."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던 아버지의 소원이라 하시니

그 날 바로 로스쿨 입학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나이가 많고

아이는 곧 초등학교에 들어가 손이 많이 갈 것이며

3년간의 천문학적인 학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또 공부라면 서러운 동기들 사이에서

학업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나 있을지 등등의

합리적인 사고는

아버지의 "병이 낫겠다"는 한 마디를 듣는 순간 정지됐다.

그리고 그야말로 하늘이 도우사

로스쿨에 입학했다.


이후

말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3년을 보냈다.

일부 수업을 마치면  

아버지가 항암치료차 입원해 계신

병원을 갔고

또다시 수업에 참석한 후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를 픽업해

학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학교에 가는 날이 많았다.

그때 택시비로 냈던 돈을 계산하면

꽤 유의미한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다.

한 번은 딸아이 담임선생님께서 전화가 오셔서

학교에 갔더니,

딸이 10 이상의 수 계산문제가 나오면

계산하는 방법을 몰라 손가락을 꼽아가며 세는데

엄마가 신경을 좀 써 주셔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날 11월 찬 바람을 맞으며 내려오는 길에

딸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

눈물이 뚝뚝 떨어다.

대견한 딸은 잘 커줬고

공부를 제법 잘하는 청소년으로 자랐다.

이마저도 하늘이 도왔다고나 할까.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

도저히 합격할 수 없는 환경이었음을

단박에 알아차리는데

순진하던 나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섯 번의 시험을 묵묵히 치렀다.

그리고 매년 4월부터 5월까지는

불합격의 충격에서 헤어나기 위해

드러누워 있다 기어 나오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두고 골프장 가던 남편을 향해 쏟아내던 분노도

되돌아보니 내가 너무 순진했던 듯싶다.

남편은 그 세월을 견디느라

폭발 직전이었을 터인데.

모두에게 혹독했던 실패의 계절이

그렇게 오래도록 반복되었다.


그 추웠던 날들 이후

불합격으로 얻은 유익이 참 많다.

한 번에 몇 가지 일을 해내느라

급하던 성격은 거의

분노조절장애 환자 직전까지 간 상태다.

오래도록 휴가 한번 없던 바쁜 인생에

이제 네버 엔딩 긴긴 휴가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오래도록 앉아 있어 생긴 허리 어깨 통증과

어지럼증과 만성 위염

역류성 식도염뿐 아니라

원형 탈모 등의 병을 하나씩 치료할 시간이 주어져

단군신화의 웅녀처럼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것,

딸아이에게 쏟을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의 여파로

"제발 엄마, 나를 좀 혼자 있게 해 줄래?"라는

반항기 어린 소리를 듣는

주책스러운 엄마의 자리를 탈환했다.

남편에 대한 과도한 심으로

집착녀라는 새로운 캐릭터 발견

부작용도 있었지만

미워서 어쩔 줄 몰랐던 그가

나 때문에 힘들었겠다

생각할 수 있어 감사했다.

그래도 자리에서 일어나 것도 힘들던 아내를 두고

으로 친구들과 떠난 골프여행은 좀 너무했지 않나?

아니다.

각자도생.

그것이 인생이란 걸 깨닫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실패를 경험한 인간이어서

이전보다 너그러운 사람이 된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볼 때

비난 정죄가 앞섰던 나였다.

지금은 타인의 연약함을 목격할 때

짠한 마음이 앞서는 것도

큰 변화다.

때로 인생에서

전부 다 걸고

죽도록 달렸지만

다다르지 못하는 지점들이 있다.

그렇다고

그 인생이 끝이 났나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 목숨 그리 쉬이 끊어지지 않는다.

언젠가 운전을 잘못해서 길을 잃고 들어선 장소에서

자연과 어울리는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 적이 있다.

바빠서 미처 알지 못했는데,

이런 곳도 있었구나,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낯선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으로

잠시 마음이 따뜻해졌던 기억이 난다.


우리 인생의 실패도 무릇 그러하리라.

전혀 보지 못하던 풍경들을 보게 되고

살아보지 못했던 겸손함을 경험하며

결코 이해하지 못하던 인생들에 공감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가 전혀 보려 하지 않았지만

늘 우리 곁에 있던 풍경들을 조우하고 마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훨씬 풍요롭고 다채로운 장면이 연출된다.

죽을 것 같던 통증도

언제가는 지나간다.

그리고 밥도 너무 잘 먹어

체중 조절에 힘써야 하는 날이

결.국.온.다.

그러니

그 자리를

기어서라도 나오기를.

끝난 거 아니다.

풍경이 다를 뿐.


실패는 어느 날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이제는 그를 향한 완강한 거부를 거두고

실패에게 이렇게 말한다.

"안녕,

이번에는 또

무엇을 가지고 온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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