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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아이디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온 것은 졸업식이 끝나고서도 일주일 정도가 지난 이월 중순의 추운 겨울날이었다. 보일러를 살짝 틀었지만 여전히 우리가 사는 빌라의 온기는 넉넉하지 못했다. 나는 겨울점퍼를 입은 채 방 한구석에 기대어 졸업식 날 삼촌이 건네준 흰 봉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엄마의 편지를 계속 만지작거릴 뿐 여전히 읽어보지는 않았다. 함께 넣어준 용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할머니뿐 아니라 하율이에게도 엄마로부터 용돈과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 할까. 그 돈을 쓰는 것뿐 아니라 반으로 접힌 그 편지를 열어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동안 우리를 외면한 엄마를 너무 쉽게 용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돈과 편지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마음이 엄마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옛 사진을 보관하고 있는 상자에 함께 넣어두어야 할까.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 엄마는 아팠다고 하는데, 이제는 정말 괜찮아진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카톡’하고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였다.
- 안녕하세요, 정민 학생, 혹시 정민 학생 카톡이 맞다면 꼭 답해주세요. 저는 단원고 2학년이었던 정다연 학생의 아빠입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이 메시지를 본다면 꼭 연락 주세요. 제 번호를 남겨드립니다.
곧 이어진 두 번째 메시지엔 낯선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다연 누나의 아빠라고? 몇 개월 전, 다연 누나의 핸드폰이 복구되었을 때 뉴스 영상에서 본 그 중년의 남성. 복구된 사진을 한 장 한 장 보면서 아파하고 오열하던 그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영상을 나는 몇 번이나 돌려보았던가. 영상에 담긴 다연 누나의 핸드폰 자료에는 다연 누나와 내가 그해 사월, 안산의 벚꽃 산책로에서 찍은 기념사진도 포함돼 있었다. 수학여행 바로 직전 주말에 찍은 사진이었으니까 아마도 가장 최근 자료로 소개가 됐을 것이다. 나 역시 카톡으로 받은 그 사진을 아직도 잘 갖고 있다. 누나와 내가 찍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이니까. 누나가 내게 준, 이제는 더 낡아버린 그 중고 태블릿PC와 함께.
- 안녕하세요. 저는 다연 누나와 친했던 동생 박정민이라고 합니다.
내가 답장을 보내자마자 다연 누나의 아빠는 곧바로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곤 자신은 내 전화번호가 없으니, 아까 자신이 남긴 번호로 전화를 걸어줄 수 없느냐는 메시지가 이어 도착했다. 다연 누나의 아빠는 나를 어떻게 알게 됐을까? 카톡 사진을 보고서? 우리가 주고받았던 카톡 메시지를 읽고서? 아니면 다연 누나의 메일함을 열어봤을까? 다연 누나가 살아있을 적만 해도 나는 핸드폰이 없었다. 누나가 빌려준 태블릿PC로 카톡 아이디만 만들었을 뿐. 다연 누나 아빠는 내 메일주소와 카톡 대화로 내 아이디를 찾아봤던 걸까.
나는 잠시 틈을 두었다가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다연 누나 아빠와 통화라니. 무슨 말을 나누게 될까. 뭘 잘못한 게 없는데도 살짝 긴장이 되었다.
“여보세요.”
내가 걸자마다 곧바로 그는 전화를 받았다.
“정민 군 맞죠? 이렇게 갑자기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달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나한텐 정민 군 전화번호까지는 없어서요.”
“아, 괜찮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무슨 일로? 아까 메시지에서는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셨는데…….”
“아, 그게 말이죠. 얼굴도 보지 않고 바로 뭔가 부탁을 해야 할 거 같아서 미안하긴 한데요.”
“네, 말씀하세요. 뭔가 도움이 된다면 도와드릴게요.”
“일단 정민 군에게 어떻게 연락을 하게 된 거냐면… 아,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하나.”
대체 무슨 일일까?
“천천히 말씀하세요.”
“작년 여름 전에 배에서 찾은 다연이 핸드폰을 복구했거든요. 그래서 카톡이나 사진 같은 자료를 모두 넘겨받았어요.”
“네, 저도 뉴스 봐서 알고 있었어요. 탐사보도 뉴스채널요.”
“아, 그랬군요. 어쨌든 그 자료 받고 나서 가을쯤부터 다연이 자료를 천천히 다시 봤어요. 카톡 대화까지도요. 다연이 사생활이니까 평소엔 볼 수 없는 거지만, 다연이가 그런 일을 겪으니까 오히려 모든 것들을 볼 수 있게 된 게 참 기분이 이상하고 슬펐지만……”
“…….”
“어쨌든 카톡을 살펴보니까 거의 매일같이 정민 군이랑 대화를 했더라구요.”
그땐 그랬다.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면 내가 늘 창동역으로 달려가서 다연 누나한테 메시지를 보내곤 했으니까.
“사고가 있기 전 주말에는 안산에도 정민 군이 직접 왔더라구요. 맞죠? 같이 찍은 사진도 있던데, 카톡에도 있었고.”
“맞아요. 누나가 도봉구 살 때 저도 거기 살았고, 거기서 누나가 봉사활동 할 때 친해졌어요. 그래서 누나가 이사 간 다음에 제가 한 번 놀러 갔어요. 그때 찍은 사진이에요.”
“화정천 근처에서 찍은 사진 같더라구요.”
“거기 하천 산책로를 같이 걸었어요.”
“도봉구에서 안산까지 놀러 올 정도면 많이 친했나 봐요.”
“누나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엄청 친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였는데, 누나가 제 동생이랑 저한테 되게 잘해줬어요.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선물도 주고 그랬거든요.”
“다연이가 그렇게 잘해줬다면, 정민 군을 참 좋은 동생으로 생각했나 봐요. 걔가 어릴 때부터 형제가 없어서 외로움을 많이 탔었는데.…….”
다연 누나의 아빠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사고 당시 카톡을 살피다가 다연이가 끝내 읽지 못한 메시지를 봤어요.”
“아, 사고 이후에 보낸 메시지요?”
“제발 무사해달라는 제 메시지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사고 당일 오후에 정민 군이 보낸 메시지도 있었어요.”
내가 어떤 메시지를 보냈던가. 난 그때만 해도 다연 누나의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바쁜 수학여행 일정 중이거나, 여전히 제주도로 가는 중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밤늦게 라디오를 들으면서 사고 소식을 접했다. 라디오…… 그래, 다연 누나의 신청곡이 흘러나왔던 그 라디오.
“그날 정민 군이 메시지를 두 개 보냈어요. 잠깐 읽어봐 줄게요. 첫 번째는 ‘오늘 수학여행 가는 날이지? 지금쯤 도착했으려나. 즐겁게 놀다 와’였어요.”
맞다. 그런 메시지를 보냈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그 중고 태블릿PC의 카톡 앱을 열면 아마도 남아 있을, 내가 다연 누나에게 보냈던 마지막 메시지들.
“두 번째가 중요한데요. 두 번째 메시지는 ‘누나의 첫 작품은 잘 읽고 있어. 생각보다 내용이 길던데. 결말은 완성 못했다고 했지? 나랑 하율이도 나오니까 어떻게 끝날지 나도 궁금하다’예요. 기억하나요, 정민 군?”
당연히 기억이 난다. 몇 번이나 꿈에서 나온 안산역에서의 헤어짐. 그때 건네받은 노트. 악몽으로 잠에서 깰 때마다 내가 몇 번이나 읽곤 했던 누나의 첫 소설이자 마지막 소설. 제목과 결말이 쓰이지 않은 미완성의 이야기. 어찌 그걸 잊을 수 있을까.
“기억해요. 안산역에 놀러 갔을 때, 누나가 직접 쓴 소설이라고 제게 노트를 한 권 보여줬어요. 결말은 빠져있지만 누나가 직접 샤프로 빼곡하게 쓴 소설이었어요. 저랑 제 동생과 다연 누나가 친해지게 된 일 년 간 얘기를 각색해서 썼더라구요.”
“혹시 그 다연이 작품을 지금 갖고 있나요?”
“아… 다연 누나가 그때 그 노트를 제게 잠깐 맡겼어요. 감상평을 듣고 싶다고 해서. 근데 누나가 사고를 당해서 돌려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럼 지금도 그 노트가 정민 군에게 있겠군요?”
지금 다연 누나의 아빠는 소설이 쓰인 그 하늘빛 노트를 원하고 있는 것인가.
“저한테 있어요. 제게 몇 남지 않은 누나의 소중한 흔적이거든요. 아주 잘 보관하고 있어요.”
다연 누나의 아빠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내게 정중히 부탁을 했다.
“정민 군. 미안하지만 그 노트를 내게 넘겨줄 수 있을까요? 딸을 잃은 아빠의 마음은 딸의 모든 것을 되찾고 싶거든요. 정민 군과의 대화 내용을 읽다가 그 소설의 존재를 알게 됐고, 또 다연이 장래희망이 작가라는 것도 뒤늦게 알았어요. 그때만 해도 다연이랑 사이가 소원했던 때라서……”
“…….”
“아빠로서 자격이 없어 보이지만 뒤늦게나마 다연이 꿈을 되살려주고 싶어요.”
“되살려주다니요?”
“정민 군. 혹시 ‘4.16 기억전시소’라고 못 들어봤어요? 참사가 있고 난 다음 해부터 문을 연 전시관인데요. 매해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기억 프로젝트’라는 전시를 해요.”
“아, 알고 있어요. 저도 몇 번 가본 적 있어요.”
“오, 역시. 정민 군은 우리 다연이를 계속 기억해주고 있었군요. 올해는 아니고 내년 기획을 유가족들과 논의 중인데요. 내년 2019년이면 우리 아이들이 희생된 지 오 주기가 되잖아요. 특별한 기억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서 얘기하던 중에 이런 기획이 나왔어요. 꿈 많던 아이들의 꿈이 사고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했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전시해 보자고요.”
장래희망을 전시한다고? 꿈을 전시하다는 말인가.
“가수가 꿈이었던 아이는 생전에 노래 부르던 장면과 음성을, 기타 연주자가 꿈이었던 아이는 사고 전까지 쓰던 기타와 연주곡 녹음 파일을, 그리고 우리 다연이처럼 작가가 꿈이었던 아이는 그 작품 원본을 전시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다연 누나의 꿈. 영화 속 ‘몬티’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던 다연 누나. 누나의 첫 소설이면서 마지막 소설인 하늘빛 노트. 그래서 누나의 그 노트가 다연 누나 아빠에게 더 필요했구나. 그렇다면 내가 계속 그것을 갖고 있을 이유는 사라진다. 전시가 끝나면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건 당연히 유가족인 다연 누나 아빠에게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지금도 가끔씩 읽곤 하는 누나의 이야기는, 누나의 이야기면서도 나와 하율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꿈에서조차 누나는 그걸 강조하지 않았던가. 너만의,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것이라고.
“다연 누나 컴퓨터에도 그 소설 초고가 있을 거예요. 잘 찾아보시면.”
“아, 그런가요? 그렇지만 최종 완성본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다연이 글씨체로 직접 쓴 작품 노트가 있다면, 그게 더 전시에 어울릴 거 같아요.”
“그렇긴 한데요. 누나가 직접 쓴 거에도 결말은 빠져 있어요. 누나는 결말은 아직 쓰지 못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보고 좀 도와달라고도 했고요. 그래서 제가 갖고 있던 거예요.”
“하지만 이제 다연이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잖아요. 미완성이라고 해도 그건 다연이 작품이잖아요.”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는 없었다. 이분은 다연 누나의 아빠니까. 다연 누나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고, 나보다도 다연 누나와 가까운, 세상에서 유일한 가족이니까.
“이번 주말에 노트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사는 곳을 알려주면 내가 정민 군 집으로 찾아갈게요.”
“시… 시간을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안 돌려드리겠다는 게 아니라, 저도 누나의 글이 소중해서요. 우리들 얘기가 담겨 있기도 하고요.”
“시간요?”
“네. 저도 복사든 필사든 누나의 소설을 곁에 남겨놓고 싶어서요. 원본은 돌려드릴게요. 그리고 누나와 꿈에서 한 약속도 있고요.”
“약속이요?”
“오래전 꿈이지만, 저한테 누나가 미완성된 결말을 대신 써달라고 했어요.”
“다연이가 꿈에서 그렇게 말했다고요?”
“네. 비록 꿈이라곤 해도 저는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누나 소설을 잘 옮겨놨다가, 제가 나중에 꼭 결말을 완성시켜보고 싶어요. 저도 누나처럼 작가가 꿈이거든요.”
“카톡 대화에서는 정민 군은 웹툰 작가가 꿈인 것 같던데…….”
“예전엔 그랬는데요. 어릴 적 꿈은 자주 바뀌기도 하니까요.”
“그럼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까요?”
“일주일 후에 돌려드릴게요. 그 정도면 충분히 옮겨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럼 일주일 후 다음 주말에 내가 직접 정민 군한테 찾아갈게요. 고마워요, 다시 다연이 노트를 돌려준다고 해서.”
나는 다연 누나가 빌려준 태블릿PC 얘기는 굳이 꺼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야말로 누나의 마음이 담겨 있는 소중한 물건이니까.
“만약에 노트가 내년에 전시된다고 하면요.”
“네.”
“제가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정민 군 부탁이 뭔데요?”
“누나 소설엔 제목이 없지만, 그 노트가 전시될 땐 제가 그 소설에 제목을 붙여보고 싶어서요.”
“그래요? 전시 소개에 넣어도 되겠네요. 다연이의 작품을 보관해 준 친한 동생이 지어준 제목이라고. 그 제목이 뭔데요? 벌써 정해져 있나요?”
“제목은 「느리게 읽는 마음」이라고 해주세요.”
“알겠어요. 적어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