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너하리 Nov 14. 2024

#. 매일같이 쌓여가는 그림처럼

정신과의사의 일기

#. 매일같이 쌓여가는 그림처럼

그림 그리는 게 좋다고 말하며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에도, 매 순간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흰 도화지를 펼치고 앉아 선을 긋다 보면 그 끝에 항상 물음표 하나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 물음표는 마치 제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어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네가 화가도 아니고, 잘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묻는 물음표에 답을 할 수 없을 때면, 저는 서툴게 그린 그림을 누가 볼까 조용히 서랍에 넣어두곤 했죠.

누구나 살다 보면 물음표를 만나게 됩니다. 좋아하는 일, 간절한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초라한 지금 내 모습이 물음표의 크기를 키우죠. 그러다 때로는 그 물음표가 이끄는 대로, ‘이건 어차피 의미가 없을 거야’라며 달콤한 포기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제게 그림을 가르쳐주던 화실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자주 떠오릅니다. “망친 것 같은 그림이라도 끝까지 완성하는 게 중요해요.” 남에게 예쁘게 보이고, 제 마음에도 흡족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늘 새로운 그림만 찾던 저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던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조언대로, 묵묵히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를 찍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물음표가 자주 떠올라 저를 괴롭혔지만, 한 장 한 장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쌓아나갔어요. 작은 것에 마침표를 찍는 것의 의미를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쌓아온 작은 점들이 어느새 선이 되어, 제 인생에서 무엇보다 멋진 그림이 되어 있었어요.

진료실에서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 물음표 앞에 망설이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언젠가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그날만을 기다리며 쉽게 발을 떼지 못하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물음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완벽하게 해내는 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물음표가 떠오르더라도 작은 것에 마침표를 찍어가는 것, 그렇게 쌓여가는 작은 마침표들이 언젠가 선을 이루고 분명 멋진 그림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당신의 오늘은 언젠가 어떤 그림이 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