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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별 Aug 07. 2024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쉽게 권할만한 일이 아니다.


이토록 오랫동안 하는 강도 높은 육체적, 심리적 노동도 없거니와

돈도 많이 들고

정직한 대가가 따르는 일도 아니니

어찌 권하겠는가


결혼하기 전

나는 '아이'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출산이며 육아를 주변에 겪고 있는 지인도 없어서

도통 아무것도 몰랐고

아주 정직하게 말하자면 애들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귀엽게 생긴 아기를 보면 오구오구 하는 정도 일뿐.

그 이하일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은 전혀 아니었던

철저하게 나만 알고 내 인생만 중요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고 아주 냉소적인 인간이 나였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걸 보고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진지하게 "그래서... 행복하지..?"라는

꽤 심오하고 염려스러운 질문도 받아본 적 있다.


육아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렇게 어려운 것도 이 세상에 있기 쉽지 않다

열변을 토하면서도

결론은 그래도... 행복하다로 끝나는

이상하면서도 아이러니한 나의 말을

사실 나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니 겪어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이 고행과 행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말로는 도저히 납득시키지 못하는 이 감정들과 느낌을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될

수만 가지 이유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두 아이를 만나 생겼던 많은 일들은

나에게 가장 특별한 경험과 가장 완벽한 행복을 가져다준 일이라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나는 부모에게 완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잘 사는 모습보다 싸우는 걸 더 자주 본

어린 시절은 온통 상처투성인 기억들로 얼룩져 있었고

그 기억들에 갇혀 목이 메어오는 억누르고 갑갑한 감정들로

크는 동안 내내 괴로웠다


온전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오는

외로움과 불안, 공허함은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씩 채워졌다


이보다 나를 완벽하게

또 완전하게 사랑해 줬던 이가 또 있었을까

나 또한 누군가를 이토록 대가 없이 사랑해 본 적이 있었을까


내가 뭘 하지 않아도

어떠어떠한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냥 나 자체만으로도

온전히 누군가의 세상이 되고 우주가 되는 경험.


내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내도

어느샌가 다가와 나를 안고 있는

쳐다보면 해맑게 웃어주는

이 조그마하고 연약한 아이에게는

나를 단단하고 강한 사람으로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솔직히 완전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엄청난 부담감과 대단한 피로감이

날마다 쌓이지만


나는 이 아이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든다

뭐라도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계속해서 해나가겠다는 다짐을 품는다


인생의 고단함을 너무 빨리 알았던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은 무서워서 실행은 못했어도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고

그냥 당장 인생이 끝나도 무섭고 아쉬울 게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나의 건강에 신경을 쓴다

보다 잘 살아보고 싶어졌다

살아가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아이 때문에 살진 않지만

아이를 위해서 살고 싶지도 않지만

적어도 아이가 보기에  

부끄럽게 살고 싶진 않다


아이 덕분에

인생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면서도

참 신기하게


만약 진짜 만약에

내 아이가 위험에 빠진다면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나를 내던질 수 있다


나는 이게

아이를 가진 사람과

아이를 가지지 않은 사람의

결정적 차이라고 생각한다


망설임 없이

후회도 없이

그 어떤 대가도 없이

누군가를 대신해

나를 내놓을 수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내리기 힘든 결정을

가장 쉽게 행동으로 바로 옮길 수

있도록 만드는 이가 당신에게는 있는가.


그만큼

이 세상에서

내 모든 사랑을 걸고

내 목숨까지 바쳐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건 정말 귀한 것을 가진 것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

경제적으로

셈을 해서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가를 수 없다고 본다.


표면적으로 잃는 게 더 많아 보이지만

내면적으로 쌓이고 더 가치 있는 것들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해 본 지라.


하지만 분명

낳기 전에는 득실을 따지게 된다.

그걸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미리 경험한 자들의 조언을 믿고

아이를 낳아 길러보라고도 하고 싶지 않다.

그건 개개인이 다를 수 있는 문제니까.


그러나 명백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아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


그 차이는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의 수다거리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인가요?

아이를 낳아 기르길 참 잘했다 생각했을 때는 언제인가요?

아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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