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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별 Aug 21. 2024

나의 성격이 나의 아이에게

나는 걱정이 많고 불안이 심하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며

매사 늘 계획적이고 융통성 없고 빡빡한 성격이다.


원래 태어났을 때부터 이랬을까? 천성이라는 게 있다던데.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 나는 어땠는지,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달랐는지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면

엄마의 부재가 많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밥을 스스로 차려 먹어야 했다. 동생도 돌봐야 했고.


엄마 아빠는 내게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하는 청개구리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것은 일종의 나의 무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가 무시당하는 일은 없다.

선생님도 이뻐한다.

부모님께 칭찬까지는 아니지만 부끄럼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했던 것 같다.

딱히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대학에 가지 않으면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돈을 버는 것보다 공부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대학에 갔지만

대학 등록금을 버느라 돈도 벌고 공부도 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는 나의 장래희망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서 간간히 조사하는 장래희망란에 학생의 희망란과 부모의 희망란이 있었는데

엄마는 늘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했다.

엄마가 나의 의사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할 수 없음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아빠는 엄격했다. 통금 시간도 있었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았다.

계집애가 나돌아 다녀서 좋을 것 없다고 했다.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은 물론이고 여자친구들과 놀고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공부도 하고 돈도 벌어야 해서 놀 시간도 없었지만.


아빠의 강압적인 통제와 불안하고 불행한 가정에서 참을 만큼 참다가

대학교 3학년 때 이불가방과 옷가지, 책이 담긴 가방을 들고 아빠한테 말도 없이

대학교 앞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어차피 20살부터 내 용돈, 등록금 모두 스스로 했기 때문에

굳이 허락이 필요했을까 싶었다.

집을 나간다는 이슈로 또 서로 좋지 않은 감정과 상처받을 말을 주고받느니

말없이 집을 나서는 게 낫다는 판단도 들었다.

아빠는 그 이후로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내게 연락이 없었고 나도 연락하지 않았다.

어쩌면 입하나 덜었으니 내가 나간 것을 좋아했으려나.


어찌 됐건 경제력이 약한 부모 사이에 태어나 나 먹고살 궁리를 빨리 해야 했던 덕에

일찍부터 철들었고 스스로 자기 한 몸 건사할 수 있게 독립적이고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런 성격들 덕에 생활력까지 강해져

남들이 대부분 좋게 보는 장점들을 두루 갖출 수 있게  것 같다.


엄마, 아빠는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줄곧 싸웠다.

참 힘들도 좋지.

같은 주제로 같은 말로 매번 그렇게 쉴 새 없이 싸우고 또 싸우고.

그래서 난 눈치가 백 단이 되었다.

사회생활하면서 눈치가 빨라

돌아가는 상황 파악도 빠르고 어떤 결과가 올지 예상도 잘해

얼마나 많은 이득을 봤는지.

슬프디 슬픈 나의 또 다른 장점이 아닐까 싶다.


결론적으로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것은 나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누구보다 독립적이어서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잘한다.

불운과 불행을 탓하고 절망하고 있을 바에야

빨리 없는 것을 포기하고 내가 할 수 있은 것에 매진하는 것이 나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낭비와 사치랑 거리가 멀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소비생활을 한다.


그러나 난 항상 불안하고 마음속에 온갖 걱정이 많았다.

엄마랑 아빠가 또 싸울까 봐

돈이 없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할까 봐

가정이 불우하고 불화가 있는 것을 친구들이 눈치챌까 봐

이대로 내가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까 봐


불안하면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일어날 수 있는 변수에 대해서 미리 생각하고 대안을 마련해 놓아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모든 상황이 내가 컨트롤 가능한 상황이 되어야지 마음이 놓인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많이 온다.

깨어나자마자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아이가 학교에 어떻게 가지?" 걱정이 시작됐다.


학교까지 아이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리는데

올해 1학년인 첫째 아이는 아직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릴 때 걸어서 학교에 가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린 적은 한 번 있었다.

그날도 나는 잠이 막 깬 둘째 아이를 둘러업고 차에 태운 후

첫째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줬다.


학교는 8시 40분까지 가면 되는데 그때 차로 데려다주면 학교 앞에 차가 너무 많고 복잡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둘째 등원도 시켜야 한다.

그래서 8시에 출발했다.

차로 가니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아이는 8시 10분에 학교에 도착했다.

적어도 선생님께서 출근하시기 전까지

문이 잠긴 교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려야 할 텐데

나는 집으로 되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걱정을 시작한다.


학교 코 앞에 내려주면서

아이에게 비옷을 입히고 우산을 씌우고 장화까지 신겼다

가방엔 여분의 양말과 손수건까지 넣어뒀다. 혹시 장화에 물이 들어가 젖으면 닦고 갈아 신으라고.


학교에 차로 데려다주면서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쏟아냈다.

"너도 이제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가 봐야 해.

다들 비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고 어딘가에 갈 수 있어.

옷이 조금 젖을 수 있겠지만 또 옷이 젖어봐야 학교에서 어떻게 그 이후에 대처를 할지도 알 수 있고..."

쓸데없는 나의 걱정을 한 바가지의 잔소리로 쏟아부어 봤자 마음이 후련해지지도 않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비가 오는 날 아이를 학교에 차로 데려다주면서

앞으로 아이가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가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못난 엄마다.


매사가 그렇다.

걱정이 앞서서, 나의 불안을 참지 못하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데 늘 실패하고 만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아이가 뭔가 하기도 전에 했는지 물어보고 해야 한다 말하고 잘했는지 체크한다.


이런 나를 엄마로 둔 나의 아이는 어떤 성격을 가지게 될까?

 

'적당히 좀 해야지'란 생각이 절로든다.


오늘의 수다거리

아이가 닮았으면 하는 나의 성격과 닮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성격이 있나요? 어떤 것들인가요?

아이의 성격 중 나를 닮아서 그런가 봐 느껴지는 것들이 있나요?

부모의 성격이 아이의 성격 형성에 얼마큼 영향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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