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이란 단어는 너무 위대하고 신성하게 느껴져 감히 쓸 수 없을 것 같은 단어지만
엄마가 된 내가 감히 '희생'이란 단어를 입에 올려보고자 한다.
소방관이 타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 같은 고결하고 숭고한 '희생'은 아니지만
엄마가 되고 나니 언급하기에도 자잘한 작고 보잘것없는 '희생'의 순간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내게 왔다.
아이가 갓난아기였을 때는 내 밥보다 아이의 밥이 우선이어서
밤마다 2시간 간격으로 깨어나 아이 우유 챙겨주느라 푹 자는 '잠'을 희생했었다.
반찬과 국을 데워 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먹는 한 끼의 식사도 사치스러워
국에 말아 서서 후루룩 먹거나 조리가 필요하지 않은 빵이나 과자로 끼니를 때웠다.
그렇게 식사다운 '식사'도 희생했었다.
아이는 수시로 토하고 침도 흘려서 예쁜 옷은커녕 깨끗한 옷을 입는 것도 어려웠다.
아이로 인해 옷에 하도 뭐가 묻으니 그때마다 갈아입으면 빨래가 산더미라
어느 순간부터는 옷에 이물질이 묻어도 아무렇지 않게 그냥 입었다
그렇게 꼬질꼬질한 옷을 입으며 '패션'도 희생했었다.
뭐 그뿐이랴.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실상 내가 나를 위해 뭔가를 하기보다는 아이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은
일찌감치 내려놓았다. 머리도 질끈 묶고 다니고(하루에 한 번 샤워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었다)
아이가 다칠까 봐 손톱도 항상 짧게 잘랐었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기 쉽게 펑퍼짐하고 신축성 있는 옷은 필수였다.
아이를 품고 비비고 하니까 내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도 조심스러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포기하는 것들이 늘면서 나를 내려놓는 희생을 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알려주지 않았지만 엄마가 되니까 절로 하게 되었다.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라는 감정이 실제로 무엇인지 매 끼니마다 느꼈다.
맛있는 거 먹으면서 좋아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진짜 내가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었다.
지금도 과일 킬러인 아이들이 한 조각의 양보 없이 몽땅 다 자기 입에 넣느라 바쁘지만 서운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아이들이 한 개라도 더 먹을 수 있게 나는 저절로 포크를 내려놓게 되었다.
'짜장면이 싫다'라고 까진 아니지만 정말 난 안 먹어도 괜찮은 것 같았다.
사실 이런 자잘한 것들은 '희생'이란 카테고리에 넣기도 창피한 게 비단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엄마들이 하는 것들이라 누군가는 엄마면 당연한 거지 여길 수도 있겠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자신이 걸치는 것보다, 자신이 누리는 행복보다
아이를 우선시하면서 작지만 많은 것들을 아이에게 내어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당연시하면 안 되겠다 생각한 것은 엄마가 되서였다.
엄마가 돼서 '희생' 한 것 중에 가장 큰 것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나이'인 것 같다.
34살에 엄마가 돼서 지금 40대가 되었으니 30대 후반은 엄마로 사느라 바빴다.
인생에서 꽃다운 나이 일부분을 떼어 아이들을 위해 살았다.
우리 엄마는 나보다 일찍 결혼해 아이도 일찍 낳았으니 나보다 훨씬 예쁘고 창창한 20대를 나와 내 동생을 키우며 다 보냈을 것이다.
내가 클 때는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었다. 반짝반짝 빛나야 할 20대에 어떻게 아이를 키우며 살았을까.
엄마가 되고 보니
나를 위해 그 시절을 내어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크고 많은 것을 내어준 것인지 이제야 알게 된다.
당신의 젊음을 희생해서 내가 그 시간들을 먹고 컸음을 나는 왜 이제야 알았을까.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하는 희생들은 결코 아이가 원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원해서,
아이들은 태어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으니까
엄마인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어떤 희생을 했든 간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는 말은 평생 동안 아이에게 절대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커서 한 번쯤은 생각해 주면 고마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도 커서 언젠가 엄마가 가장 창창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자신에게 한 켠 내어줬음을 알게 되는 날이 올까?
오늘의 수다거리
아이들을 위해 희생한 순간들을 떠올려보세요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른이 되어 나의 부모님께서 하신 희생의 순간들이 기억 난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