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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Jul 25. 2023

<딱궁이 합동 연재 5> 시간은 절대 인연을 (중략)

소서(小暑)호, 넷째 주



소서(小暑)호, 넷째 주 특별 코너

<이거 내 이야기는 아니고>



* * * * *

다섯 번째 합동 원고의 답장 원고

에세이  - ‘시’간은 ‘절’대 ‘인’연을 다시 ‘연’결해 주지 않아

글쓴이  - 원선아

* * * * *



    안녕. 나 선아야. 편지에는 안부를 먼저 묻는 게 예의인데. 네 소식을 종종 보고 있어서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내가 인스타그램 중독이라서. 지금 속 얘기는 서로 나눌 수 없으니 각자 보이는 것, 봤던 것만 생각하자.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도, SNS가 원래 그렇잖아. 가끔은 너랑 내가 전화하던 게 생각나. 언제 제일 생생하냐면, 전화를 걸어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뿐이라고 느꼈을 때야. 그동안 우리가 멀어진 게 나의 잘못이라며 살았어. 그런데 어떻게 관계 사이에서 과실 비율을 따지겠어. 하자면 그럴 수 있겠지만, 이제 더 이상 누구의 탓도 하고 싶지가 않아. 나는 오늘 ‘시절인연’이라는 용어를 알게 됐거든.


    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나는 너에게 이상한 책임감을 갖게 됐어. 나한테 온 인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만들든 상관없이 지켜야 한다는 숙제가 있어서 그래. 원래 미움받는 게 무서운 사람들이 특히 그런 숙제를 받아. 내가 그랬어. 만약 나에게 오십 갈래의 인연이 있다면, 오십 개로 사랑을 복사 시켜야 했거든. 그러면 좋은 감정만 주고받을 수 있겠다. 기대했어. 이 생각이 무너졌던 건 너에게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을 때부터 였어. 내가 수백 개의 사랑을 만들어 내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구나. 인연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순간 사랑이 몇 개든 의무가 되는구나. 점점 네가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게 느껴졌어. 나의 노력들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어떤 일이든 나는 네 편이었어. 나는 애정하는 사람의 잘못도 긍정적으로 바꿔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니까.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더 잘 알 테니까, 나는 그걸 한 번 더 듣게 하기 싫어서 피하는 것뿐이야. 네 생각에는 내가 마냥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이라고 느껴졌겠지. 네게 말을 할 때도 똑같아. 혹시라도 실수가 섞일까 봐 내 얘기는 잘 안 꺼냈어. 얼마나 바보 같았을까. 그러다 너는 못내 서운해졌을 거야. 많이 답답했지. 이해해. 그런데 미안하지는 않아.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와도 충돌하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것뿐이야. 네게 가장 그랬어. 편한 사람에게 가장 예의 있는 사람이고 싶었어. 나는 누구와의 대화도 편하지 않아. 적절히 불편해야 관계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 사랑한다면 매 순간 긴장해야 하는 게 사실이야. 상처는 가장 기대고 싶은 곳에 숨어있으니까.


   우리 쌤쌤인 거로 해. 네가 어떤 모습을 한 인연이든 상관없이 나는 확실하게 노력했어. 네가 나의 ‘시절인연’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래서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정말 주의했어. 네가 무슨 생각을 가지든 다 인정했어. 내 가치관과는 다르더라도. 너라면 그럴 수 있겠다. 근데 너는 나에게 바라는 모습이 정해져 있었던 거야. 네가 보고 싶은 모습으로 채점했어.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 저렇게 생각하지 말라. 나를 부정하기 바빴어. 그게 네 애정이었다고 하겠지만. 나를 위해서, 나를 위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 거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지는 않았어. 그게 우리가 멀어진 이유야. 이제 내가 만든 세상을 부정하지 않고 봐주는 사람들이 생겼어. 그래서 나는 너와의 인연을 포기했어.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요구하고, 그들이 주지 않으면 마음대로 상처를 만들어서 가져오는 사람이야. 내가 오랜 시간 행복하면 나중이 꼭 힘들더라고. 사랑도 많이 받지만 좌절만큼은 아니지. 그래서 자주 나를 빠트려야 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납득한 이후로 점점 심해진 것 같아. 가끔은 이런 모습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지금도 썩 유쾌하지 않은 생각들을 공개적으로 떠들고 있잖아. 분명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읽는 걸 아는데 멈출 수가 없어. 그들을 믿는 반면에 이제는 관계에 부담을 갖지 않게 되어서 그래. 내게는 그만큼이나 지금처럼 말을 입체화시키지 않는 시간이 정말 소중해. 백지 위에 이상한 화학물질 같은 문장들을 쓰다 보면 맷집이 생겨. 나의 가치관을 흥미롭게 봐 줄 수 있는 인연들이 앞으로 더 찾아올 거라 생각해. 그 덕에 아직 겪지 않은 슬픔에게도 행복할 수 있어. 이런 내가 지금 다시 널 알았더라면. 우리의 시절인연이 그렇게 짧지만은 않았을 거야.


   너 역시 싫었겠지만 내가 더 싫었던 나의 모습들이 점점 더 뻔뻔해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어. 지금 와서 너와 다시 인연이 될 것 같지는 않아. 우리는 한번 부딪혀서 들어맞든, 부스럼이 떨어졌든 다 해봤잖아. 하지만, 멀어진 게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야. 우리는 웃음소리도, 쓸데없이 귀여운 걸 좋아하는 점도 정말 비슷했잖아. 우연히 너와 가는 길이 겹쳤던 시절을 지난 거라 생각할게. 함께 부딪혀 주어 고마워. 네게 나도 의미 있는 시절인연이었다면 좋겠다.


넘어지지 말고,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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