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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Jul 21. 2023

<딱궁이> 일진이 무서웠던 학생은 젊은 꼰대가 되었다

소서(小暑)호, 셋째 주



에세이 - 일진이 무서웠던 학생은 젊은 꼰대가 되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던 날이었다. 환자복, 축구 유니폼, 일식집 알바복 같은 옷들이 마을의 한 고등학교에서 우르르 쏟아졌다. 아직도 저렇게 맞춰 입나. 내게 마지막 체육대회는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이다.


   그때는 한창 스포츠 헤어밴드, 팔목 밴드가 유행이었다. 나도 파란색 하와이 풍 반티를 입고, 하얀색 나이키 헤어밴드를 야무지게 착용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묶기까지 했다. 통통하고 튼실한 다리에 피부까지 까무잡잡해서 마치 이 체육대회 모든 종목을 섭렵했을 것 같은 생김새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종목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보통 체육대회는 시작하기 몇 주 전부터 체육 반장들이 종목 별 인원을 정하기 시작한다. 물어보지도 않고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는 에이스들도 있다. 나는 물어볼 것 같다 싶으면 딴짓을 하고, 화장실로 도망가는 친구였다.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어린 선아의 모습이다.


   체육 수업 시간에는 열심히 하긴 한다. 그런데 체육대회처럼 출전자에게 학급의 승패가 걸린 활동은 정말 싫다. 뚫어져라 쳐다보고 응원해 주는 게 상당히 부담스럽다. 아무 종목에도 출전하지 않는 나는 친구들과 모여서 사진도 찍고, 경기도 구경하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놀았다. 잘생긴 2학년 선배들도 구경하면서 꺄르르대는게 다였다. 3학년은 수험생이라 체육대회 불참이다. 날씨는 또 얼마나 더운지. 운동장 흙먼지가 옷에 다 달라붙고, 온몸이 다 찝찝했다. 손은 닦으면 닦는 대로 꼬질꼬질해졌다.


   체육대회의 꽃은 계주라고 생각한다. 지금 와서 말하려니 계주 경기라고 부르는 게 맞나 싶을 만큼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2학년 선배들의 계주경기는 1학년에게 최고 인기였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에 했다. 내가 ‘조던’이라 별명을 지어줬던 선배도 그때 봤다. 왜 ‘조던’이었냐면 그 선배가 조던 마크가 그려진 헤어밴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여고생답게 다들 한 명씩 선배들을 정해서 저 사람 잘생겼다, 저 오빠 키 커서 멋있다 등을 남발하고 있었다. 나는 별로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 근데 계주경기 때 나도 찾을 수 있었던 거다.


   조던은 나 말고도 모두가 아는 ‘노는 사람’이었다. 날라리 말이다. 지금 이런 단어를 쓰려니 너무 오그라든다. 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조던을 보고 친구들에게 저 사람 잘생겼다고 했더니, 누군지 모르냐고 되물었다. 원래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남에게 관심이 없었고,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해서 우리 반 친구들이라도 기억해 보려는 게 최선이었다. 근데 하필 내가 잘생겼다고 한 선배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노는 무리에 있다는 거다. 나는 일탈이랍시고 하던 게 후문 담 넘어 맘스터치에 가는 일, 쉬는 시간에 정문 앞 슈퍼에 가는 일밖에 없는데. 저 사람은 미성년자인데 하면 안 되는 걸 다 했다. 그때는 하지 말라는 걸 하는 사람이 일진이었다. 종 치면 교실로 들어와야 하고, 학교는 되도록 나와야 하고. 그런 당연한 것들을 지키지 않는단 말이다.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친구에게 말했다. 누가 진심이래. 그냥 잘생겼다는 거지. 이때까지만 해도 다 괜찮았다.


   지금의 인스타그램이 가지는 파급력처럼, 그때는 페이스북이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라서 다들 각자 프로필에 오픈 채팅방 링크를 올려뒀다. 나도 페이스북을 통해 조던을 검색해 봤다. 조던의 프로필에도 링크가 있었다. 쭈구리 원선아가 이때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익명의 힘을 체험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다들 뭔지 알리라 믿는다. 나만 상대가 누군지 알고, 상대는 내가 누군지 모를 때의 느낌말이다. 나는 학교에서도 휴대폰을 몰래 안 내고 조던과 오픈채팅을 했다. 점심시간에 조던이 친구들과 밖에 무리 지어 얘기하고 있을 때, 나는 교실 창문에서 조던을 보며 카톡을 보냈다. 정신 나간 스토커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둘 다 익명이라는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조던은 익명의 내가 누군지 궁금해했다. 스무고개 같은 추론이 시작됐다.


   앞머리 유무, 교실의 층수, 단발인지 장발인지, 안경을 썼는지 안 썼는지 등등의 질문을 받았다. 나같이 생긴 여자애들은 우리 학교에 널리고 널려서, 굳이 거짓으로 답하지는 않았다. 익명이 무너질 거라고도 생각 안 했다. 나의 이름을 말해도 조던은 내가 누군지 모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상착의와 생김새가 우리 학교에 흔하다는 건, 동시에 조던이 나의 대답으로 다른 사람을 구체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든지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여자애들이 있었다. 조던은 아마 머릿속에 따로 생각해둔 사람이 있었을 테다. 그 친구는 희연이다.


   희연이는 1학년이었지만 조던처럼 일진 무리에 속했다. 보편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모두에게 친절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모범 일진이었다(이런 단어를 쓰진 않는 듯하다). 나 역시 희연이와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다. 내게 잘해줘서 기억에 남는 친구다. 조던이 익명의 나를 희연이라고 잠정 확신한 거다. 중 단발에, 안경을 쓰지 않고, 차를 타고 등교하는 1학년 여자아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희연이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너 희연이지. 조던의 연락을 보고 오픈채팅을 서둘러 정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이게 무서웠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괜히 엄한 사람들을 건드렸나 싶더라. 특정 무리에게 미운 털이 박히면 얼마나 커다란 쪽팔림으로 다가오는지 알아서 그렇다.


     조던과의 연락을 정리하고, 중간고사가 일주일도 안 남았을 때였다. 희연이에게 연락이 왔다. 선아야 혹시. 로 시작되는 카톡이었다. 희연이는 조던에게 오픈채팅과 관련된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자기가 생각했을 때 그 익명이 나일 것 같아서 먼저 연락한다고 했다. 창피함이 얼굴에 휴지 젖듯이 빠르게 번졌다.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괜히 내가 조던과 연락하기 위해 희연이를 이용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억울했다. 희연아. 혹시 내일 잠깐 만나서 얘기할래? 오해가 생겼을 것 같아 바로 만나서 모든 걸 얘기해 주고 싶었다. 익명이 재미있어서 계속 연락했다, 너를 이용한 게 아니라 내가 조던한테 말한 것들은 실제로도 나에게 해당되는 설명이었다. 구구절절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아냐. 중간고사 끝나고 그때 보자. 희연이는 지금 중요한 게 뭔지 잘 알았다. 하지만 나는 중간고사를 통으로 날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과거의 경험들은 시간을 통해서 우스워지기도 하는데, 당시에는 절대로 우습지 않았을 테다. 조던이고 뭐고 그 2학년 선배와의 일은 페이스북 게시글처럼 조용히 묻혔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희연이와의 대화도 성공적이었지만, 희연이 친구들 사이에서 얘기가 좀 돌았던 것 같다. 그쪽 여자애들 근처를 지나가면 나를 보며 속닥거리긴 했다. 그것도 오래 가진 않았다. 다들 공부하기 바빠서 다행이었다. 노는 애들 앞에서는 괜히 기가 죽는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걸 쉽게 해버려서 그런지 무섭기도 하다. 라고 생각했던 게 이때가 마지막이다.


      성인이 되고 깨달았다. 사회적 위력 즉, 재산과 자리로 사람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거다. 생계가 간절한 사람은 할 수만 있다면 돈과 자존심을 맞바꿀 수 있는 분위기다.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는 나이, 경험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지위로 판가름 된다. 학생 때가 좋은 거라고 지겹도록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그 말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게 편할 거라는 의미만 담는 게 아니었다. 일진은 잘 좀 나간다는 애들 즉, 다른 학교에 아는 친구들이 많고, 타투를 했거나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학교를 벗어나게 되면 알게 된다. 사람 앞에서 정말 기가 죽고 위축되는 게 어떤 느낌인지, 하지 말라는 걸 하면 어떻게 되는지. 급식 먹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진 놀이 하던 친구들이 사회로 나가 일진 놀이 시즌 투를 하는 경우도 많다. 금수저다, 주식이다, 재능이다 뭐다 해서 실제로 ‘잘’ 나기도 한다. 바깥에 일진들이 너무 많다. 마치 사회가 어른들이 다니는 고등학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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