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기운을 흘려보내다
무기력한 나를 되살려보고자 하는 마음이 커져간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고 무언가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다. 그렇게 예전에 즐겨 했던 수영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스포츠 센터에 새벽 6시 수업을 등록했다. 가장 이른 시간이었지만, 의외로 수영장은 항상 꽉 차 있었다. 수영장 통유리로 들어오는 환한 빛을 받으며 물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새벽의 정적을 깨는 듯 활기찼다.
선생님은 잠에서 덜 깼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가 넘치셨다. 그분의 발랄한 목소리는 마치 모닝콜처럼 나를 깨웠다. 한편, 나이가 꽤나 있으신 수강생분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차게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셨다. 그들의 발차기에서 나오는 힘과 열정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고, 물이 내 몸을 감싸는 순간, 더 이상 나는 침체된 상태가 아니며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고 꼭 필요한 것만 취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수영하는 동안 내가 지니고 있던 검은 무거운 생각들을 물속에 흘려보냈다.
물속에서는 모든 것이 나의 마음 먹기에 달려 있었다. 조금이라도 불안함이 스며들면 호흡이 가빠지고, 물속에서의 긴장은 나를 가라앉게 했다. 너무 힘을 주면, 물의 저항에 밀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결국 물과 하나가 되려면 마음속 불안과 긴장을 놓아야 했다. 불안할 때 더 발버둥 치면 더 깊이 빠져들고 그 속에 갇힐 뿐, 그 흐름에 몸을 맡겨야 비로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 7시 반. 수업이 끝나면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축축하게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불편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상쾌하게만 느껴졌다. 나쁜 기운이 물속에서 모두 씻겨 나간 것 같았다. 나를 무겁게 한 기운을 비워내고 가벼워진 몸으로 수영장 문을 나서 숲길을 걸으며 회사로 향했다. 마치 내 앞에 펼쳐진 하루가 밝고 희망차게 시작될 것만 같았다. 물속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다시 나아가는 그 짧은 시간이, 내가 다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수영을 시작으로 내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난 것 같았다. 점점 더 많은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갈망이 커져갔다. 그다음으로 내가 선택한 취미는 그림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그림에 몰입하게 되었다. 미술 학원에 등록하면서 드로잉, 수채화, 유화, 오일 파스텔 등 다양한 기법을 배웠다. 기법마다 다른 매력을 느꼈고, 그 매력 속에 깊이 빠져들었다.
한 장의 캔버스 앞에 앉으면 세상의 소음이 모두 사라지고, 고요함이 시작된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마치 나만의 작은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화려한 색을 쓸 때는 나의잠재된 열정과 욕망이 드러났고, 부드럽고 차분한 색을 고를 때는 내가 원하는 평온함이 드러났다. 어떤 날은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무엇을 먼저 그릴지조차 정하기 어려웠고, 캔버스 위에서 연필이 머뭇거렸다. 그럴 때마다 그림이 잘 안 풀리는 이유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답답하고 복잡하다는 신호임을 깨달았다. 반대로, 그림이 순탄하게 그려지는 날은 내 마음이 안정되고 맑은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림은 그 자체로 나와의 대화였고, 그 대화 속에서 점점 더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모든 것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처음부터 선을 완벽하게 긋거나 색을 정확하게 맞추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그건 개성이 없는 그림으로 만들었다. 중요한 건 과정 그 자체였다.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한껏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
곧 또 다른 취미를 하나 더 늘렸다. 바로 발레였다. 사실 발레는 초등학생 때 아주 잠깐 했었는데,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포기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미 성인이 되어 굳어진 몸으로 다시 시작하는 게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어차피 취미니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학원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고, 체험 수업까지 참여해 보기로 했다. 수업에서 마주한 멋진 선생님과 우아한 동작을 소화하는 수강생들의 모습은 나에게 강한 자극을 주었다. 나도 저들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났고, 그렇게 발레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발레는 평소에 입을 수 없는 우아한 옷을 입고, 한껏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어릴 적엔 유연하지 않다는 이유로 발레를 포기했지만, 성인이 된 후 다시 도전한 발레는 나에게 자존감을 높여 주는 취미가 되었다.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나의 몸 구석구석을 의식하며 아름다운 동작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발레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예쁜 발레복을 고르는 일에도 빠져들었다. 출퇴근길에는 발레 영상을 찾아보며 동작을 가다듬었고, 점점 더 발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나는 취미 부자가 되어있었다. 수영, 그림, 그리고 발레는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주었고, 내 안에 가득했던 무기력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 대신 새로운 도전,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다시금 자리 잡았다. 점차 일상 속에서의 나 자신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취미에 깊게 빠져들었을 땐 일보다 취미가 우선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회사에서의 나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큰 감정적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했다. 내 진짜 열정은 업무 외의 시간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다. 취미에 몰두할 때의 나는 활기가 넘쳤고, 그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회사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이 회사 밖의 진짜 나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 더 이상 나를 정의하지 않는 공간이라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