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잔, 호주에 사는 멕시코 언니

프랑스 생활기

by binter
잊기 전에 얼른 써두고 싶어서 다섯째, 여섯째 잔보다 먼저 이 기록을 남깁니다. (꾸벅)
요약: 퇴사하자마자 프랑스로 왔고, 지금은 호스텔에 머무는 중. 각종 비용 충당을 위해 빠르게 앱 하나를 만들었지만… 아직 수익은 못 내고 있음


오늘 아침, 2층 침대 1층에 묵고 있던 멕시코 언니—이름은 아마 Renata?—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은 아침에 눈인사만 하뎐 사이였는데 그녀 침대 맞은편 공용 소파에 앉아 화장을 하고 있던 참이라 살짝 뻘쭘하기도 해서 말을 걸어봤다.


"How long will you stay?"
"I'll leave today"


그렇다. 곧 떠나는 그녀였다.

그녀는 호주에 사는 멕시코인으로, 암스테르담 1주일, 파리 1주일 여행을 하고 이제 3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호주로 간다고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그녀는 자신의 친구가 한국 출장 중에 한국과 사랑에 빠졌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짧은 5분 남짓한 대화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금세 친해졌다. 그런데 오늘 떠난다니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화장실로 가서 어제 산 자라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한국에서는 시도조차 못했을 스타일이었지만, 어제는 묘하게 용기가 나서 과감히 질러버렸다. 처음 입어봤을 때도 '이건 내 옷이다' 싶었는데, 오늘 다시 입어보니 역시 찰떡. 기분이 좋아져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멕시코 언니가 나를 스캔하더니 갑자기 말을 걸었다.

"Hey"(아마도 그녀도 내 이름을 까먹은 듯하다)


그녀는 예쁜 파란색 원피스를 내게 건넸다.

너무 예뻐서 샀는데 본인에게는 맞지 않는다며 내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거울 앞에서 옷을 대봤더니, 딱 내 톤에 맞는 파란색에 꽃무늬까지 너무 예쁜 원피스였다.


그 순간, 그녀에게서 이상하게 익숙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마치 한국에서 느끼던 ‘정’ 같은 감정이랄까(이러다 멕시코까지 궁금해져서 또 훌쩍 떠나게 되는 건 아닐지...).


너무 고마운 마음에 할 수 있는 감사의 표현을 다 쏟아부었다. 그 덕분에 그녀가 방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대화를 조금 더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암스테르담에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고 했다. 그녀는 그들을 부러워했는데, 그 이유는 '디지털 노마드'여서라고 한다. 내가 선망하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키워드가 나오자 나도 갑자기 흥분해서 내 얘기를 꺼냈다.

“나 사실, 막 직장 그만두고 나와서 지금부터는 내가 가진 기술로 어떻게든 먹고살아보려고 해.”


요즘 만들고 있는 레시피 관리 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혹시 관심 있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그녀는 진심 어린 눈으로 말했다.

“와, 너 정말 대단하다.”


갑자기 과분한 칭찬을 받으니 부정하고 싶었다.(아직 앱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나...)

"아니야... 나 아직 할 거 많아. 멀었어."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거야. 그냥 계속해. 그게 전부야.”


그 말에 괜히 눈시울이 따뜻해졌다.
용기를 얻은 나는 처음으로, 전 직장 동료가 만들어준 앱 홍보용 스티커를 그녀에게 건넸다.


나의 첫 번째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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