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생활기
2주 후에 출발하는 파리행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퇴직서를 제출했다.
이후의 모든 절차는 물 흐르듯 흘러갔고 그렇게 어느덧 파리로 가는 D-Day가 되었다.
전날 밤에 부랴부랴 싸둔 짐들을 아침에 다시 체크했다.
'혹시 몰라'병에 걸려 챙겼던 발레복, 버물리 등이 눈에 거슬려 홧김에 빼버렸다(후회 중). 여름이라 옷 무게가 가벼우니 무겁지 않을 것 같았던 캐리어는 공항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버리고 싶을 만큼 무거웠다. 분명 뺄만한 건 다 뺐는데 뭐가 이리 무거울까. 언젠가 배낭 하나에 나의 모든 것을 담아서 여행하고픈 로망이 있는데 불가능할 듯하다.
하필이면 계단이 자주 있는 환승 구간을 만났다. 첫 번째, 두 번째 계단을 오를 때는 '누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들었고, 세 번째 계단을 오를 때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게 괜히 서운하고 씁쓸했다.
문득,
'내가 나이가 들었나'
하는 생각에 이런 모험은 이번이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인천공항행 버스에 올라 지난 2주 동안의 시간들을 회상했다.
우선, 내가 일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 것이며, 가능성이 있는 일인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빠르게 앱 하나를 만들었다. 이 앱을 만들기 위해 일주일정도 하루 3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최소 스펙으로만 만들어서 아직 허술하지만 가능성을 보여줄 정도로는 만들었기 때문에 부모님, 남자친구를 조금은 안심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과분한 작별 선물들을 받았다. 앱을 홍보할 때 쓰라며 홍보용 QR코드가 찍힌 스티커, 나의 결심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책들, 파리의 여인에 어울리는 향이 담긴 핸드크림 등을 받았다. 나와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들이 내게 전해준 이 마음씨들은 내가 지난 시간을 결코 헛되이 살아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와닿게 해 주었다.
드디어 프랑스 땅을 밟았다.
'Arrival' 표지판을 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하늘 위를 걷는 것 마냥 기분이 붕 떠올랐다.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 느꼈던 그 떨림과 비슷했다. 그 떨림을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지금 느끼고 있다.
공항에서 파리로 가는 열차를 타고 숙소 근처역에 내렸다. 한국에서 나를 착잡하게 만들었던 계단을 또 만났다. 계단을 오를 사람은 나와 통화하고 있는 한 언니뿐. '젖 먹던 힘까지 써보자' 하고 결심한 그때, 그 언니가 통화를 잠시 멈추고 나에게 시크하게 말했다.
"너 들 수 있어?"
내 뇌가 '너의 짐을 들어라'하고 명령하기도 전에 물어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호의를 거절했다.
그래도 좋은 시작이다.
나는 편도 비행기표만 구입했으며, 비자가 없기에 최대 3개월까지만 체류할 수 있다. 일단 2.5주간 묵을 숙소만 예약해 뒀다. 첫 숙소는 호스텔이었다. 체크인 시간보다 빨리 도착해 짐을 라커에 넣어야 했는데, 하필이면 가장 위에 있는 칸만 남아있었다. 이 무거운 짐을 내 키보다 높이 번쩍 들어야 했다. 첫 시도는 실패. 그때, 같이 라커룸에 있던 중년 여성이
"기다려, 도와줄게"
하고 오더니 함께 짐을 번쩍 들어 올려 주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암스테르담에서 파리로 혼자 휴가를 온 50-60대 여성인 Ann이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북쪽이야?"
너무 귀여운 질문에 웃음이 터졌다. "아니, 북쪽 사람들은 여행 아무나 못해." 그렇게 라커룸에서 한동안 북한과 남한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Ann은 덕분에 너무 재밌는 사실을 알았다며 나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고 했다. 우리는 각자의 여행을 위해 헤어지며 인사했다.
"숙소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