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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를 만나면 상사를 죽여라

by 강아

갑질한 상사와 분리를 요청해서 전산부서에 오게 되었다. 하고 싶지 않은 업무였지만, 그와 떨어져 있을 수 있단 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그는 승진해서 경영본부의 장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헤어지게 된 것으로 만도 살 거 같았다. 출근해서 보기 싫은 상대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마주치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악몽과도 같았다.

그렇게 지내는 공간이 분리되고, 새롭게 맡은 업무를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가 부대표가 된다고 했다. 손발이 덜덜 떨려 의지하던 전문가에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하 직원들이 그에게 축하한다고 인사드리러 간다고 했다. 이를 악물었다. 그가 설사 부대표가 된다 해도 ‘해야만 하는’ 보고들 같은 것도 안 할 요량이었다. 어차피 그에게 나에 대한 인식은 박혀있고,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런 인식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낙하산이 내려오면서 그는 좌천되었다. 그가 가려고 했던 부대표의 자리엔 낙하산이 가고, 그는 우리 본부의 장으로 옮겨왔다. 그를 그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고, 조사절차까지 가지 않은 걸 후회했다. 우습게도, 고전에 나오는 ‘원수를 죽이지 않으면 그 원수는 어디선가 또 마주치게 된다’는 퀘퀘묵은 문장을 현실로 마주하게 됐다.




그때하고 있던 업무는 조사 업무와 수검 업무였다. 당연 하고 싶었던 업무는 아니었다. 해야 해서 했던 업무였다. 하지만 그가 오게 되면 내업무에 많은 관심을 가질게 뻔했다. 전공 분야가 그쪽이고, 그는 종종 자기의 영향력을 행사해서 진을 빠지게 할게 분명했다.


옆 계에는 새로 온, 나이가 많지만 전문성이 없는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랑 같이 해야 하는 옆 계 담당자는 선배와 나를 트레이드하는 게 어떻냐고 했다. 점심을 먹으며 운을 띄웠을 때, 그러마고 했다. 그 담당자는 그저 본인이 전문성이 없는 선배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았을 뿐, 내게 어떤 이득이 될까 그런 제안을 한 게 아니었다. 내가 할 업무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트레이드를 결정했다.




본부의 장은 역시 조사업무로 사람을 들들 볶기 시작했다. 또한 수검 업무를 우리가 받지 않겠다고 한들 받을 수 없는데도, 막무가내로 하지 않겠다고 우겼다. 트레이드된 선배가 그 짓거리를 받아주고 있는 순간, 안도했다. 내가 바꾸지 않았다면 그 업무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업무로 싸우는 건 자신 있었지만, 그를 보고 목소리를 듣는 건 귀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싫었다.


하지만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여서, 그렇게 트레이드를 말했던 담당자 또한 나를 위해 한 게 아니고 본인을 위해서 한 것이었고, 그래서 내가 업무파악을 다 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업무를 주었지만, 그 업무 또한 인증을 받을 수 없는 불확실성 때문에 넘겼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 상사는 좌천되어 타 지역으로 갔다. 난 팀을 옮겼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사람을 믿지 않게 된다. 그리고, 상사를 마주해야 하는 때가 온다면 피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를 죽이지 않으면 다시 만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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