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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료하면 회사를 다니세요

by 강아

직장은 사회의 축소판이라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회사에 다니면 그 병이 치유될 가능성이 있다. 세상엔 나 말고도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신의 싫은점에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들도 본인의 그러한 점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우선 소리에 예민한 나는 (예전팀에서) 보스 옆자리에서 일한 적이 있다. 보스는 목소리가 컸는데 그런 점을 자기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잘 안들려서 그렇다고 했다. 그걸 차치하고라도 조용한 사무실에서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 컸다.


공용 공간 내 회의탁자가 있는데, 업무공간과 회의공간은 파티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서 회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데 그 공간을 3팀이 나눠 쓴다는게 문제다. 즉, 세 팀중 회의를 해야하는 팀이 있으면 해당 공간을 쓰는데, 보스랑 회의하는 날이면 귀에 피가 날 것 같았다.


어느날은 깨끗한 테이블에 이런 문구가 붙었다. ‘다같이 이용하는 공간입니다. 작은 목소리로 회의해 주세요’ 하지만 그 문구는 그저 ‘문구’로서 남아있었다. 마치 화장실에서 ‘깨끗하게 사용해주세요’ 하지만 깨끗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은 옆팀으로 옮겼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크셔서 업무공유내용도 다 들을 수 있다. 그게 내 업무에 도움이 되는 거냐고 묻는다면 대답하지 않겠다. 나는 조용히 헤드폰을 쓰지만 그래도 들린다.


팀을 바꿔도 얼마든지 있다. 지금 보스는 손톱을 사무실에서 깎는다. 예전 팀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하도 싫은 티를 내니까 옆 동료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손톱이 어디로 튈줄 알고 사무실에서 깎는지? 예측할 수 없는 소리가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하는지 모르는건가? 층간 소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마당에. 그럴 때 나는 일부러 들으라고 ‘왜 사무실에서 손톱을 깎는거야?’ 마치 옆동료에게 말하듯이 큰소리로 말했지만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우리 보스는 본인의 자리는 요새처럼 밀폐되어 있다. 그래서 본인의 자리는 아무도 볼 수 없으나 직원의 자리는 지나다니면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구조다. 보스가 지나갈 때는 ‘무슨 일해?’ 모니터 보면서 대놓고 물어본다. 어느 순간부터 직원들은 모니터 스티커를 샀다. 하지만 난 예산이 없어 그냥 쌩 화면이다. 사비로라도 해야하나 싶지만 내 돈으로 회사에 돈쓰긴 싫어 놔두고 있다.


어떤이는 킁킁이인데 비염으로 돼지코소리가 난다. 옆 부서에서 그 소리를 들은 선배는 내게 물었다 ‘뭔 소리야?’ 그러자 나는 ‘XX요’ 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래? 누구같이 친분이 있으면 말하겠는데 못말하겠네’ 라며 대화는 종료됐다. 하지만 그 부서 아무도 그에게 그 말을 하지 않는지 컹컹이는 계속되고 있다.


그 밖에도 본인이 일처리 잘못해놓고 타인이랑 싸우기, 내 처지는 모르고 다른 사람 말하기, 꼽주는데 맞서 싸우기 등이 있다. 삶이 무료한 사람이라면 회사에 다니면 무료함을 없앨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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