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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다

by 강아

점심까지 건너뛰고 일했더니 속이 안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빈속이 오래되자 속이 쓰린 것이었다. 야근을 해서라도 많은 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야근을 오래 하긴 쉽지 않아서 중간에 집에 와선 시체처럼 있었다.


갑의 말 때문이었다. '업무 잘 모르시죠?' 이 업무는 작년에도 했던 업무고, 저번에도 틀린 수치를 잡아내느라 업체와 푸닥거리를 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모르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작년에는 내가 검토하고 그에게 넘기느라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고, 당시 회의할 때만 해도 '내가 너무 오래 시간을 끌고 있어서' 늦어졌다고 말했으면서, 이번에는 참조로 걸어두었더니 본인은 볼 시간이 없다고 내게 보라고 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원래 해야 하는 업무니까 보고서를 모두 출력해서 일일이 숫자를 보고 있었다. 1 회독할 때 틀린 부분이 하나 나와서, 불안한 마음에 2 회독을 했더니 틀린 부분이 또 나왔다. 틀린 부분이 나왔다고 업체와 싸우긴 싫어서 메일로 보냈다. 전화할 만큼 에너지가 없기도 했고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가제본을 출력해야 해서, 컨펌을 받고 진행하려고 하는데, 내가 보지 못했던 수정 사항을 갑이 발견한 것이었다. 분명 내가 잘못한 부분이지만, 나름대로 본다고 봤고 내가 일전에 수정요청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일을 하나도 안 했다는 듯이 '잘 모르시죠?' 사람 긁는 말을 하면서 하대하는데 '인간 말종이네' 생각이 들었다.


초과근무라도 해서 내가 하려고 했던 업무를, 보스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보스는 귀찮아했지만 그래도 봐주었다. 그래도 작년 상사는 귀찮다고 후배한테 업무를 떠넘겼는데 그건 괜찮다고 생각했다. 9 to 7까지 쉬지 않고 계속 데이터를 보니까 토할 거 같았다. 하지만 틀린 부분이 나오면 안 되니까 검수를 계속했다. 보스가 수정사항을 발견했고, 결국 업체를 들어오라고 했다.


난 업체를 조지는 사람이 아니다. 예전에는 그랬지만, 그게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체가 검수를 다 했다고 가져온 최종본에 틀린 부분이 다시 나오니까 뚜껑이 열리는 것 같았다. 전화해서 바로 들어오라고 했다. 업체는 서울에서 부리나케 왔다.


'왜 수정사항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품질관리가 안되고 있는 거 같아요'

담당직원은 직원 세 명이 붙어서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성과물이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수정사항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좋게 말했을 때 달라지는 부분이 없으니까 싫은 말을 해야 하나 했다. 담당 직원의 평소답지 않은 흐트러진 외모가 신경이 쓰였다. 맡은 업무가 이 업무뿐만이 아닐 거고, 인력을 요청하면 줄 만큼 회사 사정이 여유롭진 않을게다. 각자 바쁘다고 할 테니까. 하지만, 7억이 들어가는 사업이고 어제와 같은 (상위기관 직원이) 빈정대는 말을 듣기가 싫었다.


수정사항 회의가 끝났다. 말미에 '저 상위기관에 쪽팔리기 싫어요'라고 했다.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지만, 하지 않고는 어제 들은 말의 치욕이 없어질 것 같지 않았다. 본부 직원이 다 듣는 회의탁자였지만, 남의눈을 신경 쓸 만큼 여유가 없기도 했다. 내가 나쁜 사람이 된다는 것의 두려움은 없었다. 보스가 '상위기관이 뭐라고 했어?'라고 묻는 말에 '언제든지 수틀리면 그럴 사람이니까요' 했지만, 어제 들은 그 말이 뇌리에 계속 맴돌아서 어제 집에 돌아와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이런 실수들, 그리고 이걸 지적하는 상위기관의 잘못된 태도, 그리고 그로 인해 망가진 내 자존감을 참을 수 없다. 그건 집에 돌아오면 나를 '무위'의 사람으로 만든다. 열심히 했지만 '일'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는 상위기관의 평가도, 한 행동에 대해선 당연하지만, '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선 비난받는 것도, 그리고 내리 갈굼으로 이어지는 오늘 나의 발언도, 다 참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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