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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불효자다

by 강아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혼자 사는 자식이 걱정돼서 반찬을 바리바리 싸서 내려온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또 없으면 서운해서 한 번씩 만나서 반찬을 전달받고 밥을 먹곤 한다.


지난 주말에도 어머니가 내려오겠다고 해서, 정류장으로 마중 나갔다. 어머니는 캐리어와 백팩 한가득 먹을 걸 가져왔다. 백팩을 메고 따라오는 어머니에게 '제가 들게요' 하고 주차된 차로 갔다. 오징어볶음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미처 사 오지 못했다며, 마트에 들러 오징어를 사가지고 가자고 하길래 '알겠어요'라고 했다. 이것저것 채소까지 장을 봐서 집으로 왔다.


소분된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어머니는 오징어볶음을 했다. 레시피를 보고 하려면 할 수 있는 요리지만, 최근 요리를 할 에너지가 없어서 배달 음식으로 충당하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오징어에 칼집을 내며 '이렇게 하면 구웠을 때 먹음직스럽게 돼'라고 하면서 음식이 완성됐다.




그녀가 쌀국수를 먹고 싶다고 해서 근처의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할머니가 치매증상으로 새벽에 자식들에게 돌아가면서 전화를 한다고 했다. 예전에 학원에 다닐 때 원장님의 아버지가, 젊을 때 그렇게 총명하셨던 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서 곤혹스럽게 한다는 흘려들었던 말이 내 가족의 입장이 되자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다음 주에 시간을 또 내서 와야겠네'

라는 말에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했다. 할머니는 숙모의 요양원에 있어서, 삼촌에게 '삼촌, 가야 될 거 같은데 예약 안 해도 돼?'라고 했더니 그냥 와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할머니가 복을 많이 지으셨나 봐요. 요새는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시대인데 자식들 모두 할머니께 정성을 다하잖아요'라고 했다.


3월의 초봄이었는데, 가는 길은 내내 더웠다. 가는 길에 상위기관에서 전화가 왔다. '제가 운전 중이어서요, 도착해서 다시 전화드려도 될까요?'라고 했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서 과일찹쌀떡을 픽업해서 요양원에 도착했더니, 할머니는 어머니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머니께 자꾸 쌀 이야기를 했다. '쌀을 너희들에게 나눠줘야 하는데'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다. 어머니는 '엄마 나 쌀 있어 안 줘도 돼'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계속해서 쌀을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삼촌한테도 전화하고 이모한테도 전화했다. 삼촌은 할머니가 요새 전화를 시도 때도 없이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슬퍼서 그냥 가만히 있다가 '할머니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아'하고 요양원을 나왔다.




요양원에서 출발하는데, 상위기관에선 다시 전화가 왔다. 매출액 부분이 잘못돼서 확인을 해야 할 거 같은데 로데이 터 가지고 있으시죠? 이거 시계열로 봤을 때 문제 생기면 책임소재를 공문으로 분명히 해야 해요.'라고 전화를 받자마자 숨을 쉬지 않고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어머니를 터미널 앞에서 내려 드렸다. 자꾸만 할머니의 생기 잃은 눈빛과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당황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복잡한 심경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여기서 서울 가는 버스가 있었던 거 같은데 없대' '어머니 제가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라고 전화를 끊는데 주말에까지 전화 온 일이 신경 쓰였다. 어머니가 고속터미널이 아닌 시외버스 타는 곳으로 간 것 같아 다시 전화를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또다시 경부 가는 버스가 없다고 했다. '어머니 저번에도 거기서 경부 가셨잖아요'라고 하니 '기억이 안 나'라고 했다. '거기 인포 있으면 바꿔보세요'라고 바꿔보니 인포는 경부 가는 표를 끊어주었다. 한참을 어머니가 계산하는 소리가 나고 난 계속해서 '어머니! 어머니!'라고 외쳤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자마자 '어머니, 표가 있는데 왜 없다고 하신 거예요'라고 하자 '아니, 서울로 가려고 했는데 없다고 해서 인천으로 가려고 했지'라고 하는데 '그럼 인천으로 가셨음 됐잖아요' 말하면서, 지리에 어두운 어머니를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닌데 계속 화가 났다. 어머니께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나서 '끊을게요'라고 했다.




일요일에 걸려오는 일 관련 전화와, 혼자서 잘 살 수 있는데 주말에 반찬을 건네주러 온 어머니와, 할머니의 총기 잃은 모습은 날 예민하게 했다. 이렇게 상황이 안 좋아지면 감정이 올라가는 게 내 단점인데, 이걸 어머니께 푼 것 같아서 집에 오기 전까지도 화가 났다. 집에 도착해서 데스크톱을 켜고 업무를 정리했다. 갑자기 피곤해지고 말아서 잤다. 일어나자 저문 밤의 음산함이 창밖에 서려있었다.


어머니께 전화했더니 '응 이제 도착했다. 쉬어라'라고 그녀는 말했다. 효 이런 거 다 좋은데, 나는 안 좋은 상황일 때 가까운 사람에게 나타나는 감정의 크레셴도가 가끔 버겁다.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것도 싫다. 또 다음날 어머니께 '죄송했어요. 제가 더 잘할게요' 이런 뻔한 말을 하는 나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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