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주말에 공부할 책도 사놨지만 공부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클래식라디오를 들으며 뒹굴거리다가 집안의 소품을 째려보니 말라가고 있는 호접란이 보였다. 당근 스크롤바를 내리다 보니 호접란을 판다고 되어 있었다.
'지금 가도 돼요?'
'오세요'
'집에 난이 있는데 봐주실 수 있나요'
'가져오세요'
라고 해서 운전해서 가는데 같은 도시지만 3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여기는 시골이기 때문에 1km 가는데 1분을 잡으면 된다. 그만큼 산속에 있었고, '땅 보러 간다고 생각하지'하며 가볍게 나섰다. '여기서 더 들어가야 된다고?'라고 생각할 즈음엔 할머니집의 도로 같은 곳이 나타났는데, 그건 1차선으로 상행차가 나타나면 하행차가 밭으로 피해 줘야 하는 길이었고, 길폭이 좁아 옆 저수지나 논과 단차가 있는 곳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어떻게 안 떨어지고 운전을 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커서 보니 사이드미러를 봐서 운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운전이 익숙하면 차폭감이 생겨 잘 운전할 수 있지만 역시나 가는 길에 나오는 차가 있어 양보해 주었다.
그녀는 전원주택단지에서도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유는 거의 산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착하자 비름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도착했어요'하고 톡을 하니 그녀는 후드티에 장화를 신고 자주색 호접란을 들고 나타났다.
'정원 있는 집이라니 너무 부러워요'라고 했더니 그녀는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땅을 십 년 전에 사서 집을 지은건 3년 전이에요. 원래는 저도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정원 보시다시피 눈뜨면 꽃이 자라 있고 하는 게 너무 신기하고 예쁘답니다. 당근 별거 아닌 거 같아도 한 해에 500명이 올 정도로 많은 분이 왔다 갔어요. 그러다 보니 별 사람도 다 오는데 풍수지리 사람, 식물원 운영하는 사람도 오죠. 오히려 식물원 하는 사람이 식물 좀 구해달라고 해서 제가 모종을 사서 키워서 판답니다. 여기 샀을 땐 한참 들어와야 해서 후회도 했는데 풍수지리 본다는 분이 오셔서 여기가 정말 좋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집 팔 거면 나한테 팔라고 해서 파는 건 걱정을 놓았어요. 땅을 살 거면 잘 팔릴 수 있는가를 고려해서 사세요. 그래도 이젠 아들 물려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처음에 살 때는 자식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샀거든요.'
'그럼 조기퇴직하고 사신 거네요?'물었더니 그녀는 '남편 직장 따라 내려오면서 저는 과외를 했어요. 집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집안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죠.'라고 그녀는 말하며 정원의 식물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자랑했다. '여긴 온실도 있어요'라며 작은 공간이 있었고, '식물원 하신다는 분이 구해달라고 했던 희귀 식물은 뭐예요?'라고 묻자 '노랑겹해당화'에요 라며 '이게 지금은 꽃이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 그냥 풀 같지만 개화하면 정말 이쁘답니다'라고 자랑했다.
그녀 말마따나 그녀 거래목록엔 거래완료 500건이 있었고 근심걱정이 사라진다는 그녀 말처럼 표정이 온화하고 그늘이 없었다.
'이거 소생 가능한가요?'라고 가져간 호접란을 내밀자 그녀는 '괜찮아요. 분갈이를 잘못하면 뿌리가 흙에 묻혀있는 경우가 있는데 뿌리가 지상으로 나와야 하는데 잘 심었네요. 직접 심으신 거예요?'라고 물었고 '산 곳에서 해주시던데요'라고 말했다. 내 난은 꽃이 지고 이파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흙을 파보더니 '그렇게 과습은 아니에요 물 가끔 주면 돼요'라고 해결책을 주었다. 어쨌든 식물살인마가 아니어서 다행인 날이었고 이렇게 지역사회에 스며들어가는 나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집에 오는 500명의 당근회원들이 당근어플에 대한 파워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녀는 '봄 되면 놀러 와요'라고 경쾌하게 말했고 나는 만천홍을 조수석에 조심스럽게 태우고 차를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