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출장이었다. 지방에 내려오고 나서 차를 가지고 다니다 보니 뚜벅이의 삶을 잊고 있었다. 예전에 수도권에서 회사를 다닐 때에는 지하철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는데 얼굴만 알고 친분은 없는 사람이나 애매한 친분이 있는 사람을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어가야 하거나 혹여 가까워질 때에는 스몰토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닥치는 것이다.
보통은 적정한 거리를 두고 걸어간다. 하지만 시선은 그에게 계속 둔 상태로 어정쩡하게 회사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영향받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의 경우는 신경이 쓰였다. 보통은 상대방이 말을 걸면 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나도 말을 하지 않은 상태로 걸어갔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마주했다. 행사장에 갔다가 회사 부스를 찾아서 간단히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마찬가지로 어색한 모습이 될 거란걸 예상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출장을 가지 않은 게 아니라는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하기도 했다. 도착해서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길래 보고 있었더니 누가 말을 걸었다.'어?' 아는 후배였다. '우리 부스 어디예요?' '여기에요'라고 마찬가지로 얼굴만 알고 신상을 모르는 후배가 말해주었다. 간 곳에는 데면데면한 선배가 있었다. 어색한 웃음 같은 건 보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혼자 왔어?' '네' 하고 나는 10분 만에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에 저만치 아까 인사했던 후배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와는 지난 워크숍에서 회사에서 볼 수 없는 밝은 모습을 회사 외에서 보여주는 그에게 신기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말을 걸면 별 어려움 없이 대화를 이어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도 굳이 그러기는 피곤했고 그녀도 그럴 수도 있었을 게다. 그래서 거리를 둔 채 멀찍이 떨어져서 걸었다.
마찬가지로 회사에서는 부자연스러운 사람이 된다. 보통 때나 혼자 있을 땐 편하게 하는 것들도 회사에선 괜히 주변을 보게 된다. 가령, 회사에서 밥을 먹는 문제도 평소에는 혼자 먹는 게 전혀 거리낌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내식당에서 내가 혼자 먹는 모습을 마주하는 모습은 또 다른 문제다. 괜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될걸 신경 써야 한다는 불편감이 있는 것이다.
어제는 구내식당에 가서 혼자 밥을 먹고 왔다. 집에 가서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면 그것만으로 진이 빠지고 말아서 회사에서 먹고 들어갈 요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와 같이 식권을 가지고 삼삼오오 저녁을 먹으러 온 사람들을 마주쳤다. 나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그들 또한 내게 신경 쓰지 않으리란 걸 물론 안다. 하지만 혼자 있는 모습보다 회사에서의 모습을 신경 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건 주말에 마트에 무방비상태로 갔을 때 회사사람을 마주치는 불편감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