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서울로 출장을 가게 되면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가 생각이 난다. 그건 서울뿐만이 아닌 특정 지역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고향이 그곳인 친구가 지방에 갔을 때 그곳에 없단 걸 알면서도 생각나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서울에 가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갈 때마다 그에게 연락을 했다.
'어디야?' '집이지' '나 이태원인데 너 생각나서 연락했어' 그의 집은 서빙고였기 때문에 내가 연락하면 나오리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고 내가 그곳임을 말함으로 인해 '너와 가까이 있어'라는 걸 전하고 싶기도 했다. 그는 내 마음을 알았을까? 보통 그렇게 당일에 연락하기보다는 그냥 그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싶었다.
그건 내가 그를 오랫동안 흠모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가르치려는 태도가 없었다. 또래의 남성이나 연상의 남자를 만나면 흔히 느껴오던 우월감이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나가 있어서인진 몰라도 그와의 관계는 항상 동등하다고 느꼈고 그의 약간 얼빠진 모습이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사람을 대하는데 어색한 나는 특히 적당한 친분감이나 사회관계의 사람을 만날 때는 그런 능숙하지 않음을 숨기려고 완전히 차가운 태도를 취하곤 했다. 하지만 그를 만날 때는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받아들여질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장난을 걸게 했다.
아끼던 바에 함께 간 날이었다. 그날은 바틀을 시키고 테이블을 잡았다. 다국적 인종들이 모여 온전히 음악의 그루브에만 상호합의할 수 있었을 때 나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춤을 추면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내가 춤을 춰서 평가받지 않을 수 있었고 그게 그와 함께라서 더욱 특별했다. 어두운 공간에선 그와 손을 잡을 수도 있었고 안길수도 있었다. 피부에 와닿는 그의 따듯함은 오래 그에게 안겨있게 했고 독한 술은 내 안으로부터도 그만큼의 열기를 내뿜었다. 테이블로 돌아왔더니 누군가 말했다. '누가 여기 테이블 술 먹었어요' '뭐라고요?' 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나도 화가 나는 듯싶었다. 하지만 곧 웃음이 나왔다. 누가 술 먹었으면 어때, 오늘 이렇게 즐거운 걸. 그와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한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이 이와 같이 큰 느낌을 갖게 해 준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젠 서울에 가서 굳이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거절당해서라기엔 아직 내 마음이 그에게 향하고 있다. 더 이상 그를 만나서 뭘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막막함이 애써 휴대폰의 버튼을 누르지 않게 한다. 나는 그에 대한 마음을 꾹꾹 접어 넣고만 있다. 이 마음이 접는다고 해서 접어질 거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