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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Oct 28. 2022

공무원의 문화, '밥 서무'를 아시나요?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약 6천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한다. 

그리고 주변에 다른 사무실도 많기 때문에 대략 만여 명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점심시간마다 전쟁이다.

주변 식당은 뻔한데 이 많은 직원들이 1시간 안에 동시에 점심을 다 먹어야 되기 때문이다.


자리가 꽉 찬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소중한 점심시간이 허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중요한 업무가 바로 '밥 서무'이다.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지만 효율성을 위해 필요한 업무! 


밥 서무! 

업무 분장에는 없지만 꽤 신경 쓰이는 업무다. 윗분들이 전날 술을 드셨으면 해장할 수 있는 곳으로 예약해야 된다. 갑자기 개인 약속이 잡힌 직원이 생기면 인원수를 변경해야 되고 매달 밥값을 거둬 정산해야 된다.

혹여라도 과장님을 모시는 날이면 메뉴 선택에 훨씬 더 신중을 기한다. 좋아하시는 음식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최근 2~3일 내 방문 한 식당과 겹치지 않게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밥 서무를 하기 싫어한다. 분명히 업무가 아닌데도 매일 일정한 시간과 수고로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그 팀의 막내가 밥 서무를 맡는다. 매일 오전 점심 인원수를 포함하고 식당을 예약한다. 고시 출신이 아니고서야 누구나 막내 시절을 겪기 때문에 밥 서무를 한 번쯤은 대부분 경험한다. 직급 순서대로 돌아가는 직장이기 때문에 남자 직원,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제외되지 않는다. 

나 역시 당연하게 밥 서무를 했었다. 혹시 점심 약속이 잡힌 날이면 팀원들이 갈 식당 예약까지 해놓고 미안한 듯 빠지곤 했었다. 그러면서 9급, 8급, 7급을 거쳐 6급이 됐다. 

(시청에는 7급 중참급까지 밥 서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조직 내 MZ세대가 많아지면서 이 무언의 법칙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약속 있으니까 드시고 싶은 곳에서 맛있게 드세요!"라며, 가뿐히 말하고 떠나는 서무님이 있는가 하면,

밥 서무를 피하기 위해 아예 점심밥은 혼자 먹겠다고 선언하거나 점심시간을 활용해 운동을 하는 직원도 있다.


 '나는 당연하게 했었는데 안 해도 되는구나.'라는 허탈감과 당황함!


9급부터 시작해서 8급, 7급 때도 밥 서무를 했었는데  6급이 돼서도 밥 서무를 해야 되다니!!

나도 분명 MZ세대인 밀레니엄 세대인데! 다만, 조금 일찍 직장생활을 한 탓에 그래도 윗분들 밥 챙기는 것을 귀찮지만 당연하게 생각했다. '후배가 생기면 당연히 안 하겠지'라는 믿음으로 꾹 참아가며 했었다.


'밥 서무' 외 필요하지만 업무가 아니기에 안 한다고 한들 누군가를 탓할 수 없는 일들은 사무실 내에 많다. 

과장님 손님 오시면 차 내드리기, 정수기 물통 갈기, 공용 컵 씻어놓기, 비품 챙기기! 등 

과장님들도 MZ신규들이 무서운 것을 알기 때문에 어리다고 함부로 시키지 않는다. 대신 어느 정도 조직문화에 익숙해진 7급 선임이나 6급들에게 지시하신다.

  "언니, 우리가 서무일 때 분명히 이거 했던 거 같은데 왜 지금도 우리가 하는 거죠?"라는 하소연만 동기들과 나눌 뿐! 정말 위아래로 꽉 낀 샌드위치가 따로 없다.


우리 조직도 많이 유연해져서 임원은 임원끼리, 직원은 직원끼리 점심을 먹는 부서도 서서히 생기고 있다. 우리 부서는 아직 그렇진 않지만 분명 조직문화가 유연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아마 내가 그만두지 않고 간부가 될 쯤이면 윗분들 밥을 매일 챙겨줬던 그 옛날을 혼자 추억하면서 

매일 점심 약속을 고민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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