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가 된 작은 꼰대!
브런치 북에서 언급됐던 부분은 내가 입사하면서 꿈꿨던 조직문화였다.
- 점심시간에 자유롭게 자기 계발&휴식하는 문화!
- 사무실 운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우!
- 퇴근 후의 삶을 꿈꿀 수 있게 하는 규칙적인 근무시간!
- 아기와 친정엄마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일하는 워킹맘!
밀레니엄 세대였던 난 20년 전에 입사했다.(벌써?)
진부한 ‘~라떼’ 얘기를 하자면,
내가 9급으로 임용됐을 때는 ‘~양’이라 불렸다. 김양, 오양, 이양~
출근하면 윗분들 책상을 닦고 신문을 챙겨서 동장님 책상 위에 가지런히 정리했다. 전기포트에 물을 채워놓고 쓰레기통을 비웠다. 남자 선배님들의 재떨이에 휴지를 깔고 물을 뿌려놓고 전날 피었던 담배꽁초를 치웠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저기 가래 섞인(웩~) 종이컵을 치워야 되니까.
행정업무에 협조해주시는 통장님, 각종 단체 회원님들(다양한 음료 기호를 갖고 계신)의 방문을 위해 2리터짜리 물통 3개(믹스커피, 녹차, 생수 각 한통씩!)를 냉장고에 준비하는 것! 여기까지가 9시 업무 시작 전에 막내가 해야 되는 일이었다. 책상을 깨끗하게 닦고, 신문을 가지런히 놓는 일이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최고의 셰프가 되기 위해 설거지부터 시작하는 요리사가 된 것 같았다. 소림사(?)에서 득도하기 위해 마당부터 쓰는 수도승이 된 것도 같았다. 행정과는 조금도 연관성이 없던 그 허드렛일이 마음을 가다듬고 기초를 배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안 하게 될 것이란 믿음도 있었다. 고참이 되면 안 해도 될 일들! 막내일 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심한 내가 경직된 공직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20여 년 동안, 난 최고위직인 1급에서 9급까지! 층층시하 다양한 시어머니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조직문화에 내가 적응하는 방법은 그저 참고, 약을 먹는 것뿐이었다. 결국 난 우울증에 걸렸다. 어제 방문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내가 3주 동안 안정을 취하길 권한다며 진단서를 끊어주셨다. 속이 다 뒤집힐 것이고 다양한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지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난 내일도 출근할 테니까! 과연 정말 필요한 건지도 모를 각종 자료들을 작성하고 여기저기 보고하기 위해 윗분들 일정을 체크하고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 했던 일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신규직원들 덕분이었다. 부당하게 생각한 게 나뿐만이 아니었구나! 처음에는 대리만족을 느꼈다. 속이 시원했다.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이 생각보다 간단해 보였다. '저렇게 말하는 거였구나.' 멋져 보였다.
하지만 멋진 것도 잠시! 신규님들이 멋지고 당당해 보인다고 그 업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일 중 일부가 나와 같은 직급들에게 다시 되돌아오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며느리를 본 시어머니가 다시 새댁일을 하게 된 느낌이랄까? 분명히 이젠 내게 별 것 아니고 쉽고 빨리 할 수 있는 것들인데 더 버겁게 느껴졌다. 처음 그 일을 할 때와 마음이 같을 수 없으니까!
너무나도 당연하게 움직이지 신규님들과 당연하듯 기대하는 간부님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마지못해 하게 되는 중년의 작은 꼰대들! 답답한 건 딱 샌드위치가 된 애매한 꼰대들 뿐이다!
나는 어른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화끈하게 후배들을 봐주지 못하고 한 번씩 톡! 쏘지만 그들의 마인드는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비록 내가, 혹은 누군가 불편을 겪게 될 수 있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것들은 대부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게도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내 아들 둥이가 월급쟁이가 되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맞벌이인 우리 부부를 보고 자란 아들 둥이는 본인도 언젠가 회사를 다녀야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의 아들 둥이가 회사를 다니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꿈꿨던 모든 것들을 눈치 보지 않고 했으면 좋겠다.
내가 했던 열 가지의 고민 중 한 가지도 하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일하게 되길 바란다.
앞, 뒤로 꽉 막혀 답답하지만 엄마, 아빠 샌드위치들이 묵묵히 참는 이유가 아닐까?
조금씩 낳아질 것이라는 믿음! 자식들은 나처럼 살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념!
그래서 난 내가 주장하지 못했던 것들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MZ세대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들 역시 머지않아 또 다른 샌드위치가 되겠지만, 조금씩 덜 답답해하길 바란다.
그렇게 세대가 바뀌면서
샌드위치가 답답한 느낌이 아닌, 누군가에게 든든하고 맛있는 한 끼의 식사로 기억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