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생과 통화를 했다.
25층이 넘는 건물, 수천 명이 되는 직원 중 유일하게 내편이 돼 준 소중한 동생이다.
윗분들에게 깨지고,
주민센터, 구청을 거쳐도 해결되지 않는 악성민원에게 몇 시간 욕 들은 날도,
층층시하 간부님들의 다양한 지시사항 처리에 정작 본연의 업무는 밤 10시가 돼야 겨우 시작할 수 있었고,
하나뿐인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 못했다는 것을 슬퍼할 여유조차 없었던....
그 힘든 시간, 내 옆에 있어줬던 감사한 인연이다.
근무하는 층이 서로 달랐던 우리에겐, 정말 힘들 때 '잠시 볼 수 있어?'라는 쪽지를 날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됐다. 복도에서 잠시 만나 5분이라도 짧게 울고 나면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야근 중 출출할 선배를 위해 함께 김밥을 사러가는 그 시간 동안 재잘거리는 걸로도 충분했다.
휴직 중인 내게 전화를 건 동생은, 희망이 없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어제 간부님들 회의 때 우스갯소리로 나온 말인데, 젊은 직원들이 무서워서 입을 닫는데요. 그럼... 그 많은 일들은 우리가 하게 되겠죠? 업무의 총량은 정해져 있을 텐데..."
대부분의 업무들이 그렇듯, 공무원의 업무 역시 칼같이 '깔끔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나만해도 몇 군데 범주에 속해있다. '구(區) 민, 시(市) 민, 국민, 워킹맘, 장애인, 학부모, 중년 여성...' 생애주기, 역할에 따라 제공되는 다양한 행정서비스 접점마다 조정이 필요하다. 타 부서와의 법률해석, 업무분장 등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또, '행사'를 개최한다고 하면 담당자는 분명히 한 명이지만 행사 규모에 따라 '과' 혹은 '국'의 전 직원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니 일, 내 일' 구분할 겨를이 없다. 다 같이 도와서 신속하게 끝내는 게 답이다.
듣기 싫은 '라떼' 사례를 들자면, 내가 등본을 뗐던 신규 때도 주민자치나 환경정비 행사 등에 당연히 참석했었다. '왜, 내가 그 일까지 해야 돼?"라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내가 9급이었을 때, (어쩔 수 없니 나도 '라떼'를 찾는구나ㅠㅠ)
'동사무소 가면 다 널널~하더라'는 부모님의 말을 철썩! 같이 믿은 나는 현실을 깨닫고선 한동안 배신감과 자책의 나날을 보냈다. 바로 평생 해야 되는 직업을 선택하는데 '사전조사'를 전혀 안 했던 것이다. 평일 낮엔 밀려오는 민원에 방광염에 걸릴 정도였고, 주말엔 사실조사를 다녀야 됐다. 개에 쫓기고, 주소를 '모텔, 여관'에 둔 분들도 계셨는데 혼자 다니는 게 너무 무서워 아빠와 다니곤 했다. 그중에서도 '환경정비'와 '단체행사 참석'은 정말 1도 생각 못했던 업무였다.
봄, 가을엔 단체 행사들이 많아서 더 바빴다. 멀미가 심해서 차 탈 때마다 토했고 중간에 여러 번 내렸던 허약한 나였는데... 관광버스 안에서 별 짓을 다하는 억척이가 돼 있었다. '동사무소 여직원들 왜 이렇게 시시해?'라는 단체원 아저씨의 말 한마디 때문에 여직원들은 버스 안에서 앉아있질 못했다. '가무'에 자신 없었던 내가 선택했던 것은 '음주'였다. 오른쪽 주머니엔 소주병을, 왼쪽 주머니엔 진미채를 꽂고 다니면서 술잔 비는 좌석을 비틀거리며 찾아다니느라 바빴다. (지금 저러면 성희롱으로 고소되겠지만, 15년 전만 해도 저런 일이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혼한 언니들이 '이런 건 아줌마들이 막아줘야 된다!'며 아가씨들을 보호해주려 했지만, 여직원들은 점점 단체행사 참석을 꺼렸다.
내가 8급이었을 때,
드디어 민원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민센터 '뒤쪽 놀고먹는 사람들'의 실상은 더 정신없었다. 문화센터 프로그램, 동 청사관리, 10여 개 되는 자생단체 관리, 마을 환경정비와 공공근로 등 일자리사업까지, 거기다가 민원대가 바쁘면 수시로 투입됐다.
주말 행사가 잡힌 어느 날, 그 간 두세 번 빠졌던 9급 신규에게 7급 선임 언니가 말했다.
"희나야, 요즘 많이 바쁘지?"
"네." (단답;)
"이번 주 일요일에 있는 행사가 우리 동에선 큰 행사인데, 같이 가자! 서류 정리하는 건 평일에 우리가 다 같이 도와서 해줄게.'
"제 업무는 제가 하는 게 좋아요. 그냥 전 제 일 할게요."
행사 업무는 전 동 직원이 참석해야 되므로 함께 참석을 권유했던 7급 언니의 말도 맞았고, 눈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각자 업무에 집중하자는 9급 신규의 말도 맞았다. 결과는... 9급은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행사에 참석했던 다른 직원들은 일요일 저녁 10시에 녹초가 돼 퇴근했다. 입 밖으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신규가 현명했구나...'라고 모두 생각했을 것 같다. 그리고 괜히 바보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7급을 지나, 6급이 된 지금의 나 혹은 동기들은, 후배들에게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다. 서무 업무를 주무에게 넘길 만큼 약삭빠른 아이들에게 부탁해봤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그나마 공직에 큰 뜻을 품고 주민센터에서 구청, 광역시청으로 별도의 시험으로 치른 사람들로 구성된 만큼 비교적 의욕적인 후배들이 많다. 그런 후배들은 감사하게도 '자발적'으로 도움을 자처한다. 그런 후배님들 덕분에 그나마 업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후배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계속 그렇게 된다면, 과거 협력해서 진행됐던 일들은 누가 하게 되는 걸까?
어느 브런치 작가님의 말씀처럼 '내 옆에 있는 착한 그놈!'이 하게 될 것이다.
그 동생의 말대로 '우리 나이 또래'가 하게 될 것이다.
윗분들의 조직문화를 조금이라도 경험하고 순응했던 우리! 같은 MZ세대이지만, 80년대 초반의 아이들...
'착한 사람'이 아니라 '거절하지 못하는' 일 시키기 딱! 좋은 순딩이 들!
그리고 나의 성격으로 피해받는 것은 내 가족이 되겠지?
워라밸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나와 살아주는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내 대신 아들을 봐주느라 노후의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 친정엄마에게도 고맙고 미안하다.
우리 아들은... 주변의 언니들 대부분 애들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인다.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나의 모자란 글솜씨로는 감히 적을 엄두가 안 난다.
업무 과중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더욱이 거절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갈수록 미래가 없는 조직으로 변하고 있다. '이 일을 누가 하지?'라는 고민에 앞서 '이 일을 꼭 해야 되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조직이 되면 좋겠다.
건강하고 효율적인 조직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정말 필요한 업무'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고 윗분들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책을 개발한다. 그때마다 효율성이 '낮은'사업을 정리한다면 최소한 암에 걸리는 직원의 숫자를 줄일 수 있진 않을까?
하지만 행정은 서비스다. 혜택을 받는 자에게 서비스를 중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행정은 기업처럼 '효율성'만 따질 수도 없다. 효율성이 낮아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업무도 해야 되기 때문이다. 결국 업무량이 매년 가중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 일은 '옆에 있는 바보 같은 사람, 결국 내'가 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