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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Sep 06. 2023

통제권

목줄을 하지 않는 개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물과 관련된 프로그램은 거의 안 봤는데 우연히 아들 둥이와 함께 강형욱 훈련사님의 영상을 봤다. 그 후로 유튜브 추천 영상으로 올라와 자주 보게 됐다.


내가 본 영상은 <개는 훌륭하다> 였는데 귀엽고 특이한 동물을 소개하는 여느 동물 프로그램과는 다른 감동이 있었다. 반려견이 사람과 함께 살아갈 있게, 혹은 반려견의 불안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애쓰는 강형욱 훈련사님과 견주의 노력이 자식을 훈육하는 부모의 마음 같아 몰입됐다.


평소와 달리 냉담하고 단호한 주인의 태도에 대한 반려견의 반응은 다양했다.

애교를 부리거나, 무섭게 짖거나, 심지어 물기도 했다. 

아무리 반려견이라도 본능적으로 짖고 무는 동물에 대한 공포심이 있을 텐데 강훈련사님과 견주는 포기하지 않는다. 반려견을 사랑하는 마음은 깊지만 조금은 단호하지 못한 견주에게 훈련사는 이렇게 말한다.

제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칭찬할 수 있는 거예요.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 칭찬하는 건 죄송하지만 우스워요.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칭찬하면 감동받아요.
- 동물훈련사 강형욱 -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찌릿했다.

나는 그동안 '칭찬'은 견주라서, 선생님이어서, 부모이기 때문에 등 인간관계에서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 둥이를, 회사나 학교 후배를 함부로 칭찬하곤 했다.

강형욱 훈련사의 말대로라면, 그들은 내 칭찬을 우습게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면 내겐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 둥이조차도 내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답하기 어렵다.


젊은 층이  '~라떼'를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 단지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혹은, 직장에서 좀 더 일했다는 이유로 섣부른 칭찬과 훈계를 남발한 격이니 싫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동물과 인간은 차이가 있다. 확실한 상하관계, 주종관계가 분명한 반려견과 견주의 관계와 달리 인간관계는 복잡하기 때문이다. 부모라고 해도 자식을 완전히 소유하고 통제하는 것은 어렵고, 다양한 사회적 역할할 때문에 이 모임에선 평등하지만 다른 모임에선 수직적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인간에게 있어 '통제'는 적절한 동기부여를 통해 스스로 자신을 관리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초등교사들의 교권 회복 노력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랑스럽지만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 우리 아이들을 올바로 지도하기 위해선 이 통제권이 보장돼야 된다. 통제권을 물리적 폭력으로 휘두른 극히 일부 교사를 처벌할 정도의 보호장치는 필요하겠지만 통제권 전부를 박탈해선 안된다. 


조승연 작가님의 <시크:하다>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이 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어린 자녀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는 척하고 열심히 들어주고, 아이의 입맛에 맞추어 식사 메뉴를 바꾸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한다. 아이는 그렇게 모든 것들 어른들이 받아주는 환경에서 자란다. 그러다가 자신이 성인이 되어 보니 사회는 자신의 꿈이나 감정 취향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느끼는 좌절감은 얼마나 폭력적일까? 어쩌면 한국 젊은이들의 고통과 고뇌는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아이들은 자랄수록 인생의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는 것 같다. 유아기 시절 마음껏 누리던 자유와 권한을 평생 다시는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프랑스인의 인생은 지식과 경험, 사회적 우아함이 쌓이면서 어린아이가 작은 아기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어른의 식탁으로, 어른의 식탁에서 회사의 임원 회의실로 점점 강한 발언권을 획득하는 과정을 밟아가게 되므로 어른이 아이보다 얼굴이 밝은 것 같다. (중략) 프랑스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괴로운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는 여정이 아니라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기대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 어른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어릴 때 자유를 실컷 누리고 크면서 점차 하향곡선을 긋기보다는 어릴 때 조금 통제를 받더라도 어른이 되는 것이 기대되고 기다리게 되는 편이라고 할 것 같다.

당장 힘들어하는 반려견이 통제된 훈련을 통해 명견으로 거듭나듯 아이에게도 지금은 힘들지라도 미래를 위한 통제된 교육이 필요하다. 힘들어하는 아이의 마음을 공감할 수는 있다. 하지만 훈육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지속적인 훈육은 부모나 교사가 아이를 통제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감정은 존중하되 행동은 통제하라.'는  하임 기너트의 말처럼 아이의 마음은 공감하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통제권이 교사에게 보장돼 초등 공교육이 다시 정상화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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