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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May 05. 2021

축복받는 나의 똥똥한 배!

  "어머~ 둘째 임신했네. 축하해요~~"

  "승진도 하고 둘째도 생기고, 겹경사네!"


(지하철 임산부 우대석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여기 앉으세요..." 


그들의 축하는 늘 진심이다. 축하를 받은 나는 항상 겸연쩍고 부끄럽다.

왜냐면... 내 뱃속에는 둘째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살이다...ㅠㅠ

심지어 사람이 많은 지하철 임산부 우대석 앞에서 자리를 양보해 주는 분을 만나면 이 배는 '아기 배'가 아니라 '똥배'라고 말 하기도 민망 해 고맙다고 말하며 그냥 앉아버린다. 그래서 이젠 임산부 우대석 근처에는 가지도 앉는다.

우리 둥이마저 내 배를 쓰다듬으면서...

  "엄마, 내 동생은 항상 엄마 뱃속에 있는데 언제 볼 수 있어?"라고 묻고, 

옆에 있는 남편은 웃겨 죽는다고 깔깔거린다. 퐉!!!


우리나라는 타인의 사생활에 유독 관심이 많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해라~

취직하면 결혼하라~

결혼하면 아기는 언제 낳냐~

애 한 명이면 외롭다, 둘째는 언제 낳냐~

...... 끝이 없다. 말하는 사람은 걱정과 관심이라고 말하지만 호기심과 간섭으로 느껴진다.

특히 자주 보게 되는 관계(가족, 친척)일수록 더 조심해야 된다. 

혹시 가족 중 자꾸 내게 상처 주는 말을 하거나 앞으로 할 것이 예상되면 강력하게 나가야 된다.

어물쩡 듣고 있다가는 내 속만 상한다. 


나 역시 시댁에서 둘째 압박을 받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내게 둘째 얘기를 하지 못한다.


몇 년 전, 시댁에 결혼식 행사가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뷔페 한쪽 방에 시댁 식구들이 모여 밥을 먹게 됐다. 그때, 눈치 없는 남편의 사촌누나가 말했다.


  "올케~ 둘째는 언제 낳을 거야? 맞벌이라 먹고 살만 할 텐데, 둥이 더 크기 전에 얼른 낳아~"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라, 가볍게 무시하고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눈치 없는 남편의 한마디가 문제였다.


  "누나! 장모님이 이제 힘들어서 둘째는 못 키워주시겠데. 그래서 우리 둘째 못 낳아."


잉? 여기서 우리 엄마 얘기가 왜 나오는 거지?? 

둥이 봐주시느라 고생한 우리 엄마... 를 언급하다니!!


  "형님, 궁금해하셔서 말씀드리는 거니깐 잘 들으세요! 맞벌이긴 해도 여전히 제가 벌지 않음 생활이 안 돼서 육아휴직도 다 못 쓰고 나가서 돈 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둘째를 갖는다고 치면, 둥이 아빠 쉰 살에 애가 태어나는 건데 재벌이나 그때 아이를 낳는 거죠. 둘째가 10살에 둥이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데 그 뒤 교육비며 생활비는 형님이 주실 건가요? 그리고, 요즘 육아는 돈만 있음 다 됩니다. 제가 바쁘고 몸이 약해서 아이를 돌볼 수 없어도 둥이 아빠가 돈만 잘 벌면 도우미 이모 들이면 되는데, 형님 아시다시피 우리가 지금 그럴 형편이 되냐고요. 저희 친정어머니는 지금도 둥이가 고등학교 때 사위가 직장을 그만두게 돼, 대학교 학비며 생활비를 딸이 다 벌어야 할 딸이 안쓰러워 죽겠다고 하세요. 이제 궁금한 게 좀 해결되셨나요?"

 

  "어, 올케 내가 잘 몰랐네;;  밥 먹어..."


결혼식 피로연의 뒤풀이가 싸늘해졌고 그 후, 시댁 식구 중 그 누구도 내게 감히 둘째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한 번에 왕! 달려들 땐 세게 물어야 된다.


한 번씩 꼭지가 돌아 확 달려드는 나일지라도 잠시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매번 날카롭게 덤비긴 어렵다. 

더구나 임산부 배보다 더 큰 내 배는 타인의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휴직 들어가기 얼마 전, 1년 반 만에 만난 남자 직원을 회사 로비에서 만났다.

역시나 너무나 환하고 기쁜 얼굴로 나를 축하해줬다.


  "00 씨, 육아휴직 들어간다는 얘기 들었는데, 둘째가 생겼네요. 축하해요~!"

 

  '육아휴직이 맞긴 하는데... 둘째가 아니고 옛날이 봤던 둥이 육아휴직이에요ㅜㅜ'라고 선배 언니도 아닌 오랜만에 본 남자 직원에게 말하기가 차마 민망하여,


  "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마 그 직원은 지금도 내게 둘째가 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ㅠㅠ 


내 배는 여전히 축복을 받고 있다. 그 간 받은 축복이 늘 쌓여있는 나의 행복하고 감사한 똥배 -.-;;

아마도 내가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게 그 똥배에 쌓인 축복 때문인 것 같다. ^^

(혹시 주변에 가임기 여성이 배가 나왔더라도 한 템포 쉬었다가 천천히 동향을 살핀 후, 정말 임신이 맞다고 판단될 때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타인에게 말로 준 상처는 언젠가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서 상 사생활에 관한 질문이 대화 에서 완전히 삭제되긴 어렵겠지만, 나를 위해서라도 몇 가지는 조심할 수 있지 않을까?


 - 예민한 사항은 가급적 질문을 자제하고

 - 진심으로 함께 고민하거나 책임 질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만 묻고

 - 매우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질문한다.

이전 10화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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