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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Apr 09. 2021

사과, 해 주세요!

깔끔한 기분이 드는 말하기.

금요일 오전 8시 50분 정도였다.

휴직 중이라 가족 외엔 전화 올 곳이 없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서 보니 모르는 휴대폰 번호였다.


나) 여보세요?

상대방) 00본부장 아닌가요?


70대 이상으로 추정되는 남자 어르신 목소리였다.


나) 아닙니다.

상대방) 응? 아니라고?


상대방은 사과는 커녕 궁시렁거리며 전화를 먼저 끊었다. 

난 잠시 멍해졌다. 뭐지?? 


수신목록을 보고 방금 전화 온 그 번호로 내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 여보세요?

나) 방금 전화 받았던 사람입니다.

상대방) 그런데요?

나) 전화를 잘 못 거신 것 같은데 사과를 안하고 끊으셨네요. 사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대방) 뭐 그럴 수도 있지, 젊은 여자가...

나) 제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구여... 제가 사과를 받고 싶으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대방) 아 진짜... 미안합니다. 됐어요?  뚝! (전화 끊는 소리)


8살 짜리 아들래미가 엄마가 싸우는건가...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 승현아, 괜찮아~ 아저씨가 엄마한테 잘 못 해서 사과를 받은거야.

    누군가 너한테 잘 못하면 사과를 꼭 받는거야. 알았지?


사실, 이런식으로 전화가 잘 못 걸려 온 적은 많았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끊었다.

아마도 나랑 통화한 어르신도 '별 미친 여자 다 봤네.'라고 주위에 큰소리 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사과를 받고 싶었다.


최근에 15년간 일했던 직장을 휴직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를 가는 날 보다 안가는 날이 더 많은 아들을 케어 해 주고 싶기도 했고 

그동안 바빠서 못했던 운동, 취미생활을 하고 싶어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난 휴직만 하면 편안하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하루종일 아이와 함께 있느라 내가 꿈꿨던 것을 하나도 못하고 있는 내게 화가 나고 있던 참이었다.


사실은 나한테 내가 화가 나 있었는데, 괜히 그 어르신께 화풀이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아이에게 EBS 강의를 틀어주고는 친정엄마에게 전화에서 얘기를 했다. 이러니 저러니..~

다 듣고 난 엄마는...


엄마) 이제 나이 드니까, 잘하니 잘 못 했니 따지는 것도 귀찮아.

나) 그래도 잘 못 한 건 맞잖아. 사과를 해야지. 이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꺼야!

엄마) 그래, 잘했다. 그러고 싶을 땐 그래야지! 그런데 그래서 속이 편해졌니?

나) 당연...하지! ... 엄마, 승현이가 나 찾아. 전화 끊을께...(뚝!)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데 마음이 후련한 것만도 아닌 이 감정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난...다시 속으로만 참아야 되는 것인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건지... 그 답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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