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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이는 '개'입니다.

by 이서진

적반하장(賊反荷杖)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 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


억울하고 어이없는 적반하장인 경우가 종종 있지만

최근 '반려견'을 키우는 견주들로 인해 자주 생각나는 고사성어다.



박물관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어린이 교육프로그램, 행사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시실은 조용하다. 관람객의 정숙(靜肅)이 요구된다.


타인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고,

어두운 조명, 유리 진열장 등의 환경으로 '안전'도 신경 써야 된다.


하지만, 박물관 전시실 내 '정숙'은

무엇보다도 유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된다.

학예연구사는 아니지만,

유물에 얽힌 스토리를 알고 나면 스스로 경건해진다.

그런 사연을 가지고

그토록 긴 시간을 무사히 버텨 온 유물이 존경스럽다.


전시실 안내를 위해 야간 당직을 서고 있을 때 한 여성 손님이 입장했다.

점점 다가오고 있었는데 실루엣이 살짝 이상했다.

어깨 위에 초록색의 꿈틀거리는 게 있었다.

바로 '이구아나'였다.

나) 손님, 죄송한데 전시실 내부에는 파충류는 데리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갑자기 그녀는 내게 소리를 질렀다.


손님) 어머어머! 지금 우리 아기한테 지금 파충류라고 하셨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갑자기 들리는 고함소리에, 멍해진 나는 '이구아나가 파충류가 아니고 동물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 내가 지금 우리 아기랑 산책하러 나왔는데, 방해하시는 거예요? 우리 애는 박물관에 오면 안 돼요?


음... 이 분은 내가 응대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 같았다. 청경 아저씨를 불러야 되나... 생각하는 순간,

감사하게도 청경 아저씨가 1층에서 달려오고 계셨다. 관람객이 많지 않은 저녁시간에 그렇게 고함을 쳤으니, 1층에 계셨던 청경 아저씨가 바로 듣고 달려온 것이었다.


청경 아저씨와 함께 전시실 밖을 나가는

적반하장이던 손님을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뒤늦게 황당함이 몰려왔다.

저분은 본인이 이구아나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님, 이구아나를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걸까?

아기 같은 이구아나를 그렇게 사랑한다면, 풀숲이나 모래사장에 데리고 가지... 웬 유물??


간혹, 길에서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여성을 보면 꼭 한 마디 던지는 어르신들이 있다.

"쯧쯧, 저러니까 변을 당하지."

성희롱, 성폭행을 당한 여성에게 오히려 품행의 방정함을 논하는 사람들도 있다.

범죄를 범한 그 사람의 잘 못인데 피해자에게 잘 못을 떠넘긴다.


일부, 견주들이 그렇다.

공원에선 분명히 반려견에게 '목줄'을 채워야 한다.

답답한 강아지들을 산책시키고 싶어 하는 주인의 마음이 이해가 되므로

줄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 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혹은, 정말 아기 취급을 받아서인지, 다리가 아파서인지

강아지 전용 유모차에 타고 있는 강아지들을 보면 오히려 너무 귀엽기까지 하다.


그런데, 간혹 목줄을 하지 않는 강아지가 있다.

주로 작은 강아지들인데, 문제는 그 강아지들은 주로 사람을 좋아해서

발발 거리며 사람들을 향해 달려온다는 것이다.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나와 우리 아들은 그럼 기겁을 한다.

내가 분명 엄마기 때문에 아들을 보호해줘야 되는데,

생명을 위협받는 것 같은 공포 앞에서

미안하게도 '아들'은 순간적으로 잊힌다.

제 자리에 선 채 '엄마~'하고 엉엉 우는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아들에게 간다.

뒤늦게 뛰어온 견주. 개를 부르더니 그제야 목줄을 한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순간, 견주의 말에 화가 치민다. 심지어 웃으면서...


견주) 어머, 무슨 어른이 개를 무서워해요? 얘는 아기라서 안 물어요~

(아들을 보며) 얘, 넌 덩치도 크면서 뭘 울고 있니~


내가 누구인가, 뒤늦게 시작된 두 번째 사춘기,

갱년기로 파이팅! 넘치는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아줌마다!

이번엔 나의 차례다.


나) 아줌마!!

이 강아지는 아기가 아니라고 '개'라고여!

개랑 산책할 때는 반드시 '목줄'을 해야 된다는 기본 상식도 모르세요?

그리고 먼저 사과를 하셔야죠!! 아줌마 개 때문에 진짜 우리 아이가 놀랬잖아요!!!!!!!


제발... 당신의 아이는 '개'라고여.


아파트 1층 광장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목줄은 안 한 개 때문에 수시로 놀랜다.

'죄송합니다.'라고 바로 사과하는 견주는 열명 중 한두 명이다.

나머지는 다 비슷한 반응이다.

'어른이 왜 그렇게 무서워해요? 우리 애는 안 물어요'

물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원하지 않는 나에게 달려오는 것도 너무너무 싫다고요...

정말 당신의 아기라고 생각한다면

제발 좀 잘 데리고 있어 주세요!

아기처럼 꼭 안고만 다녀 주세요!


이 글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글이 아니다.

나도 목줄을 한 강아지들은 귀엽고 예뻐 보인다.

강아지의 목줄이 내겐 '뭐든지 막아 줄 것 같은 든든한 가림막' 같다.

마음이 놓여서 강아지 본연의 귀여움을 느낄 여유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제 글을 보시는 분 중에

견주가 계신다면 용기 내서 한 말씀 올리고 싶다.


"당신의 아이는 정말로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어쨌든 '개'입니다. 제발 밖에선 목줄을 해 주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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