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2주일에 한 번꼴로 대학병원에 다닌다. 혈액검사, 엑스레이 등 추가검사를 대비해 가급적 예약 시간을 일찍 잡는 편이다.
오늘 내가 간 곳은 신경과, 예약시간은 오전 9시였다. 아침 일찍 서두른 탓에 첫 번째로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신경과에서 실시 한 검사결과상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물론 통증이 심해 다른 검사를 추가로 해 볼 수도 있지만 류마티스 약으로 통증이 줄었으니 류마티스 내과 쪽으로 집중해서 치료해보자고 하셨다. 혈액검사 결과 검사결과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병이 없는 거는 아니라는 말과 함께. 염증수치와 갑상선 수치만 이상했다는데 그건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바, 새롭지도 않다.
갑자기 직업적 열등감이 폭발했다. 내 통증의 원인도 찾지 못하고 최근에 응급실에 두 번이나 실려간 엄마의 병명과 치료방법 역시 찾지 못했지만 그들이 여전히 의사라는 게 낯설었다. 그것도 의사 선생님.
해답을 알려줬음에도 전화로 한 시간 넘게, 혹은 직접 찾아와 내 면전에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을 하는 민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 직업, 공무원이 참 불쌍하게 생각됐다.
특별한 제한 없이 시험만 합격하면 누구나 될 수 있는 공무원.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최상위 클래스를 유지해야 될 수 있는 의사. 전문직.
'그래, 의사 선생님들은 하급직 공무원이 제시할 수 있는 답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문제를 다룰 테니.'라며 생각을 끝냈다. 교수님 진료가 1분 컷으로 끝났다. 준비하고 병원까지 이동 한 시간이 아쉬워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들렀다.
나는 홀로 몰두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잘했다. 몰두하면 시간이 가고, 시간이 가면 그곳으로부터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았으니까.
-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홀로 몰두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봤다.
컬러링, 필사, 소설책 보기, 생각하기, 멍 때리기. 모두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최은영 작가님의 글처럼 잘하지는 않지만 '혼자' 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
당장 눈에 보이는 생산성이 1도 없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의미 있는 존재, 도움 되는 사람, 생산성 있는 직원이 되려고 했던 마음을 던지고
2023년 남은 시간 동안.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을 정성스럽게 해 보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