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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의 긴 코만 부러운 날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고교 동창 딸내미 결혼식에 다녀오려고 준비를 마친 남편이 물었다.

"어때?"

어제저녁 이미 정해둔 옷을 입은 모습이 어떤지 확인하는 말로 들렸다.

"괜찮아요. 오늘 약간 쌀쌀하다니까 콤비도 괜찮지."

"아니 안경."

"안경? 어제오늘 기온이 내려갔으니 다른 때보다 안경에 김이 더 서리긴 하겠네."


남편이 거울 앞에 서서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해 본다. 이런 때 입을 다물면 작은 상처라도 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지극히 가깝다는 핑계로 한 마디를 기어코 하고야 말았다.





남편이 거울 보는 모습 좀 지켜봐 주는 게 뭐 어떻다고, 지켜보기 싫으면 다른 일을 하면 될 일이다. 어제 눈비가 와서 빨래를 못했으니 오늘은 빨래 너는 일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할 일도 많다. 그보다는 코로나 변이종 확진자가 수그러들지 않으니 오늘 동창 딸내미 결혼식엔 참석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 말을 뿌리치고 나가는 남편이 못마땅하다는 뜻이다. 아니 그보다는 마치 내 말의 뜻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순진한 척하는 남편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고 함이 더 옳겠다.


"아니, 안경에 김 서려도 괜찮을 것 같으면 끼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뭘 거울을 보고 또 보고 그래요. 그러다 얼굴 닳겠다. 여자 동창이 있는 학교도 아니면서."


남편이 살짝 웃는다.

"안경을 끼는 게 나을지 안 끼는 게 나을지 당신이 말해 주면 좋잖아."

"치이, 금방 얘기했잖아. 김 서려도 괜찮을 것 같으면 안경 끼시라고."





그렇게 매끄럽지 못한 답변을 하고 나니 외출하는 사람에게 또 예의가 아닌 것도 같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세상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코로나 이전엔 삼월 하순에도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사람은 환자들 뿐이었다. 코로나와 함께 연중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절을 살게 되었다. 마스크를 뚫고 나온 콧김이 안경 안쪽을 뿌옇게 가린다. 처친 눈꺼풀 때문에 젊은 날에 비해 시야도 좁아진 데다 안경에 서린 김은 불청객 중 불청객이다. 미안한 마음에 한 마디 했다.


"이런 땐 피노키오 코가 부럽지, 그치?"

"어. 나도. 겨울에 안경 낄 때만 코가 길어졌으면 좋겠는데. 콧김이 저만치 가서 날아가도록 말이야."

"오마나, 하지만 당신은 거짓말을 못하잖아."

"그래, 내가 좀 거짓말을 못 하긴 하지."

"좀? 가끔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는?"





남편이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남편의 표정 저편 안경에선 김이 서렸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남편의 참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 없게 했다. 혹시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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