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며칠 전 저녁을 먹다 말고 남편이 말했다.
"헤어지는 게 훨씬 어렵겠지?"
"갑자기?"
"그러게 갑자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
"압축 파일도 아니고 빨랑 풀어봐요."
물 한 모금을 마신 남편이 말을 이었다.
"나더러 당신보다 하루 늦게 가라며. 그러려고 노력 중인데 알 수 없는 게 인생길이잖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땐 헤어진다는 말은 우리 인생 사전에 실리지도 않았었지. 그런데 아웅다웅 함께 살다 보니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네. 시간이 이렇게 흐른 줄 몰랐다는 건 내가 무심했다는 뜻이겠지. 얼마 전 친구 부인이 세상을 떴잖아. 코로나 때문에 잘 가라는 인사도 못했다며 친구가 펑펑 울더라구. 병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끝이었으니까. 그렇게 갑작스러운 헤어짐도 처음 만날 땐 헤어진다는 건 꿈속 사전에도 없을 단어였겠지. 그 친구처럼 황망하게 헤어진다는 건 더더욱 말이야."
언제부턴가 감상에 빠지곤 하는 남편의 말이지만 이 말만은 단순히 노화와 함께 증가한 여성 호르몬 탓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뭉클한 무엇인가가 가슴 한복판을 치밀고 올라왔다. 남편 친구 부인의 입장에서는 또 얼마나 안타깝고 아쉬웠을까.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손 한 번 흔들어주지 못하고 가야 하는 자신을 얼마나 원망하며 갔을까. 하지만 우울하게 흐를 것 같은 분위기가 싫어 짐짓 딴전을 부리며 남편의 말을 받았다.
"당신 친구 일은 정말 안타까워요. 하지만 그 헤어짐은 코로나가 원인이니까 예외로 쳐 주도록 합시다."
"아냐. 다음에 딸들 오면 다짐을 받아둘 게 있어."
"다짐? 무슨 다짐?"
"혹시 아빠가 먼저 떠나더라도 엄마가 외롭거나 힘들지 않게 잘 챙기라고 말야."
"아니 왜? 정말 왜? 왜 갑자기 애들까지 들먹이는 거야?"
내가 어리둥절해서 이유를 캐묻자 남편은 말을 끊고 식사에 열중했다.
설거지를 하는 내내 마음이 언짢았다.
'혹시 이 사람이 어디 크게 아픈 건 아닌가? 초음파 검사 결과 어디에 이상이 나타났는데 내게 숨기고 있는 건 아닌가?.......'
대강 설거지를 끝내고 텔레비전 앞에 앉으며 남편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당신 어디 아픈 거 맞지? 의사가 큰 병원에 가보랬는데 숨기고 있는 거지?"
당황한 듯 남편이 손사래를 쳤다.
"이 사람은? 숨길 게 따로 있지 아픈 걸 왜 숨겨?"
"그럼 왜 갑자기 헤어지는 얘길 꺼내? 헤어지는 것까지는 당신 친구 부인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요. 하지만 애들한테 무슨 다짐까지 받겠다는 거야? 당신이 어디 이상이 있지 않고서는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요? 정확히 알려줘요. 의사가 뭐랬어요?"
남편이 정색을 했다.
"아냐, 아픈 거 아냐. 초음파 검사 결과도 정상으로 나왔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얼마나 엄살쟁이에 겁쟁이인지 당신도 잘 알잖아. 조금만 어디 이상 있는 거 같으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나잖아."
"그럼 왜, 왜 갑자기 심각해지는 건데? 왜?"
남편의 말에 내 걱정은 점차 투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당신은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잖아."
아니다. 나는 혼자서도 잘한다. 신호등도 파란불이 나왔을 때 건너고 빨간불일 땐 건너지 않는다. 남의 싸움에 끼어들지는 않지만 경찰에 알려야 할 때는 신고할 줄도 안다. 그러나 남편은 물론 언제부턴가 딸들도 나를 어린아이처럼 대한다.
"엄마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천천히 천천히."
"잠시 멈춰요, 이제 건넙시다."
"엄마, 그건 제가 들게요. 엄만 팔에 힘이 없잖아."
"이리 줘요, 남편 아꼈다 어디 쓰려고."
그때마다 나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혼자서 기차 타고 서울에서 능내까지도 다녀왔고 엄마 아빠가 계신 양수리까지도 잘 다녀왔노라고 나를 변명해 주곤 한다. 가족들이 모두 길치처럼 굴 때도 한 번 다녀왔던 길을 단번에 찾는 사람이 나 아니냐고 큰소리도 친다.
같은 말을 또 반복했다.
"나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이야, 다시 한번 들려줄게요. 초등학교 2학년 때 혼자서 기차 타고......."
"알아요, 당신이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이란 거. 하지만 딸들에게 미리 말을 해 둬야 당신이 좀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 헤어진다는 말이 주는 의미를 요즘 당신을 보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됐을 뿐이야."
이런 때는 고맙다고 하면 된다. 잘 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따지듯 투정을 부리다가 이내 동전 뒤집듯 상냥하게 고개를 숙일 수 없어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럼, 나도 딸들에게 당부를 해 둬야겠네. 아빠 잘 챙겨드리라고?"
"난 괜찮아. 내 걱정은 마세요."
"내 걱정도 아직은 마세요, 특히 애들에게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내게서 비롯됐음을 잘 안다. 내가 가족들에게 대했던 그대로 가족들이 내게 돌려주는 것일 뿐이다.
언젠가는 남편도 나도 딸들에게 헤어진 후에 홀로 남게 될 사람을 부탁한다는 말을 하게 되리라. 그 시간이 하루가 될지 일 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남은 사람이 힘들지 않게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전해야 하리라.
나보다 180일이나 어린 남편이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여전히 철부지로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남편의 머리에서는 검은색을 찾기 힘들고 내 머리에서는 아직 흰색을 찾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구나.
첫째가 다녀갔지만 남편은 '아직은'이라고 못박은 내 당부를 잊지 않은 듯 며칠 전 우리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고맙다. 내게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면을 두렵지 않게 일깨워준 남편에게 감사하다.
오늘 남편과 함께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데 이웃분이 말씀하셨다.
"두 분이 이렇게 함께 가시는 거 참 보기 좋아요."
오래오래 보기 좋은 모습으로 살고 싶어졌다. 깨달음이 늦어 늙음도 더디 온다면 오래오래 깨달음 같은 건 멀리하면서 철없이 건강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