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1부: 발견] 정신과를 방문하기까지

by 네오

※ 일러두기: 책에 나오는 ‘주치의’는 과거 치료받았던 정신과 의사이며 주치의와의 대화 내용은 주치의의 허락하에 진료과정을 녹음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주치의> 그 당시엔 절대적인 게 있다고 믿고 싶거든요.


생각해 보면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있을 거라는 착각, 환상, 믿음이 나를 더 괴롭힌 것 같다.


나> 선생님.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치료 종결이 다가왔을 때 내가 주치의에게 했던 말이다. 단 하루라도, 단 한순간만이라도, 원인 모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괴로운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누가 도와주거나 치료해 주지 않았다. 약물치료가 증상을 경감시킬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는 못했다. 의사는 진료하고 처방하고 치료할 뿐 좋아지는 건 '내 몫'이었다.


주치의> 의사로서 고마운 거는 딴 거 없고 치료비 안 줘도 좋으니깐 정말 건강한 모습이 느껴져서 좋고. 항상 저는 여기 있었고, 내가 전도를 했나 왕진을 갔나. 본인이 오신 것뿐입니다. (웃음)


죽어가는 마음을 살리는 건 의사가 아닌 '나 자신'이다. 프롤로그에서 미리 밝혔다시피 중요한 것은 '치료'가 아닌 나 자신과 '관계 맺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못 나 건, 잘 나 건, 아프건, 건강하건, 가난하 건, 부자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방법을 찾아서 그냥 살아가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을 나는 찾지 못했다. 가혹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누구에게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 따지고 보면 의지할 상대도 없다.


주치의> 사람을 믿긴 뭘 믿어요. 인간은 누구나 다 나약하고 모순입니다.


내가 나약하듯이 상대도 나약하다. 누가 누구한테 의지한단 말인가? 의지할 것은 33개의 튼튼한 내 척추뼈일 뿐이다. 이것이 내가 정신과 치료 종결 때 내린 결론이었다. 더 가혹하게 들릴지 몰라도 정신과 의사도, 심리상담사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진 못한다. 결국은 혼자 일어서야 된다. 방법 역시 내가 찾아야 한다. 인생은 내가 원하는 데로 안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어떤 모습의 나일지라도 그런 나를 끌어안고 더 나빠지지 않게 돌보며 사는 것, 나는 그 이상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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