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라! 내 진단명

[1부: 발견] 정신과를 방문하기까지

by 네오

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알기엔 전공 수업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대학교 도서관에 관련 서적을 찾아가며 따로 공부를 더 했었다.


MMPI(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와 DSM-4(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 현재는 DSM-5지만 당시는 DSM-4였다.)에 명시되어 있는 ‘아마도 내가 이 진단명이지 않을까?’ 하는 것 위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 조현병: 망상, 환각, 와해된 언어가 없다. ▶ 패스

* 우울증: 상당 부분 관찰되나 그러기엔 대학 생활이 너무 즐겁다. ▶ 패스

* 강박증: 강박사고는 일부 인정. 그러나 뚜렷한 규칙이나 리추얼은 없다. ▶ 패스

* 편집증: 억울지심이 있긴 하지만 수용할 건 수용한다. ▶ 패스

* 자폐 스펙트럼 장애: 의심스럽긴 하나 정상 기능이 더 많다. ▶ 패스

* 성격장애: 이건 뭐가 이렇게 광범위하고 종류가 많지? ▶ 스펙트럼이 넓어 애매모호했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지워나갔다. 한두 가지 증상이 걸린다고 진단 내릴 순 없었다. 찾다 보니 뭐라고 딱히 진단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근데 난 왜 이렇게 죽을 것 같이 힘든 걸까? 도대체 뭐지? 그렇게 조현병 책부터 성격장애 책까지 십여 권의 책을 탐독했었다. 그러다 마지막 성격장애 책을 읽을 때쯤 든 생각이 있었다. 마치 정신 질환은 이러저러하게 나열한 원인들로 ‘운 나쁘게 걸려든 재수 없는 상황’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각 증상별 원인과 치료 방법을 공부하면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정환경이 어쩌고, 양육 환경이 어쩌고, ~ 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는다.>라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미 그런 환경에서 자랐는데...


내가 책을 통해 찾고 싶은 것은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이었지만 나는 책을 통해 절망감만 갖게 되었다. 병을 고치고 싶었지 원인 규명과 증상 따위의 구구절절한 임상 논문 성과가 알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치료받고 싶은 환자의 심정이었지 치료 전문가가 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책을 덮어버렸다. 책에서는 그 어떤 답도, 희망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책을 통해 내 진단을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 진단 내리고 자가 치료하는 건 불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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