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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언어의 한계와 소통의 지혜

by 달보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언어를 필수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언어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대화 중에 서로의 뜻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아 오해가 생기고, 이로 인해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 아무리 명확하게 의도를 전달하려 해도, 그 간극에서 미묘한 오류는 피할 수 없다. 예컨대, '건강해 보여 보기 좋다'는 뜻으로 "얼굴에 살이 좀 붙었네?"라고 말했더라도, 상대방은 '살쪘다는 걸 돌려서 말하는 건가?'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균열은 사실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 이는 원래부터 존재했던 관계의 빈틈이 표면화된 것일 뿐이다. 사람은 자신과 친밀한 관계에 대해 문제가 생길 리 없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각자의 인생과 경험이 다른 만큼,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면,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언어적 오해에 쉽게 상처받는다. 대화를 나눌 때, 내 말을 상대가 정확히 이해했을 것이라는 기대는 실망과 불만의 씨앗이 된다. 그러나 언어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이는 언어를 만들어낸 생각 자체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이란 정답이 없는 단순한 심리적 반응에 불과하며, 그 불완전함은 언어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친구와 사과를 나눠 먹으며 그가 "맛있다."라고 말했을 때, 그가 느낀 맛의 깊이나 종류는 내가 느낀 것과 다를 수 있다. 밤하늘의 달을 보며 "멋지다."라고 같은 감탄사를 내뱉더라도, 서로가 부여한 '멋짐'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우리는 단지 비슷하다고 짐작할 뿐, 상대방의 경험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다. 결국, 상대방에 대한 모든 판단은 내 기준과 해석에 기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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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상대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며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데서 발생한다. 가령 친구에게 "내가 힘들다는 걸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고 하자. 이때 친구가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면 우리는 실망하고, 그를 무심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친구의 경험, 맥락,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나의 기준으로 그를 판단하는 것은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할 뿐이다.


언어라는 도구의 본질과 한계를 이해하는 것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언어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동시에 오해와 갈등을 낳기도 한다. 이러한 양면성을 받아들이면, 상대방에게 내 말을 100% 전달하려는 기대를 내려놓을 수 있다. 마치 가위가 모든 것을 자를 수 없는 것처럼, 언어 역시 모든 감정과 의도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따라서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고, 상대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내 의도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본값으로 삼는다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소통에서의 작은 실망이 큰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준다.


우리는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내면은 철저히 다른 존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각자의 경험과 세계관은 독보적이다. 같은 말을 들어도, 같은 것을 보아도 각자가 느끼는 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더 지혜롭고 유연한 태도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언어의 한계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더 나은 소통을 위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언어는 완벽하지 않다. 그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으며 보다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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