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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일상을 사랑할수록 행복이 짙어진다

by 달보


나는 혼자 여행하는 걸 즐긴다.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양해를 구하면서까지 혼자 제주도를 간 적이 있다. 나에게 여행은 자유로운 탐험이어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하면 자연스레 상대에게 맞추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나는 관광명소를 돌아다니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낯선 동네를 천천히 걸으며 그곳의 공기를 느끼는 걸 좋아한다. 혼자가 아니면 이런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가 어렵다.


다만 아내와 함께하는 여행만큼은 거의 혼자 여행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내는 나를 배려해 일부러 내 방식에 맞춰주는 듯하다. 그런 아내와 떠난 이탈리아 신혼여행은 최고의 순간이었다. 베니스의 좁은 수로를 따라 걷고, 피렌체의 붉은 지붕 사이로 노을을 바라보며, 레꼬의 한적한 호숫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밀라노의 분주한 도심과 뜻밖의 일정으로 들르게 된 암스테르담까지. 어디를 걸어도 사진을 수백 장 찍고 싶을 만큼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상하게도 공통적으로 드는 감정이 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여행의 목적이 무엇이든, 여행하는 방식이 달라지든, 누구와 함께하든 상관없이, 여행을 떠나면 항상 집이 그리워진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정이라 여겼지만,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그것이 중요한 신호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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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상을 사랑한다. 이탈리아의 낯선 골목을 걷는 순간에도, 집에서 보내는 평범한 하루를 내심 그리워했다.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고, 밥을 먹고, 아내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하루야말로 내겐 가장 완벽한 여행이다. 여행은 일종의 일상을 깨뜨리는 행위다.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다음 여행을 꿈꾸기보다는, 일상의 소중함을 맘 속으로 여미는 편이다.


가고 싶은 곳은 많다. 제주도는 언제나 가고 싶고, 아내와 함께했던 이탈리아와 일본도 다시 찾고 싶다. 특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남아시아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당장이라도 비행기 표를 끊고 싶어진다. 하지만 결국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도 괜찮다. 내겐 매일 하루가 색다른 여행이기 때문이다. 앉은 자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도 수많은 세상을 탐험한다. 집 근처의 카페만 가도 충분히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나로 하여금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여행지에 있는 화려한 건물이나 유명한 음식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더 궁금하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명작을 볼 때보다는, 어느 평범한 가정집 창가에 걸린 작은 화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평범함 속에서 남다른 특별함을 발견하는 묘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일상은 내게 ‘본진’ 같은 곳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상 속에서 보낸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여행지에서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면 여행이 끝난 후의 삶은 얼마나 공허할까.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가장 소중한 곳, 마음이 온전히 편안한 나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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