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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Oct 27. 2024

혹시 야근 있나요?

ep 0. 팀장님과의 첫 만남


몇 년 전, 화창한 날씨 아래 매미가 떼창을 부르던 계절에 약 1,600도에 달하는 용광로 앞에서 난 일하고 있었다. 조그만 부스 안에서 기계조작으로 모래형틀에 쇳물을 주입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부스 안에는 벽걸이 에어컨이 있었지만(예전에는 에어컨도, 심지어 부스마저도 없었다고 한다), 실상 큰 의미는 없었다. 부스 밖과 안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금속을 가득 녹여 끓인 쇳물을 실은 대차가 약 10분 간격으로 왔다. 그때마다 밖으로 나가서 불순물을 걷어내고 사방팔방 튀는 불똥 앞에서 용광로에 쇳물을 넣어야 했다. 그리고 형틀에 쇳물을 내려보내는 주입구와 첨가제를 넣는 파이프 주둥이가 쇳물로 인해 틀어 막힐 때마다 쇠꼬챙이로 패서 뚫어줘야 했는데 그 빈도수가 꽤 잦았다. 한 마디로 쉴 틈이 없었다. 게다가 방화복까지 입고 있었으니 땀이 비 오듯 내릴 수밖에 없었다(방화복을 일광건조 해주지 않으면 하루 만에 젖은 땀에 의해 악취가 나기 일쑤였다). 부스 안에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려니 감기 걸릴 것 같고, 안 쐬려니 더위를 먹을 것 같았다. 일하는 동안은 그야말로 '대략 난감'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지역번호가 '02' 혹은 '070'으로 시작했으면 냅다 꺼버렸을 텐데, '010'으로 시작하는 보통의 휴대폰 번호였다. 그래서 받았다.


"여보세요."


"아, 안, 안녕하세요. 호, 혹시 ㅈ, 정치호님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누군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난 인간관계 사업에 그다지 재주가 없기 때문에 평소 전화받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 자초지종은 모르겠으나 '뭐야, 왜 이렇게 말을 더듬는 거지?'라는 생각이 반사작용처럼 들 정도로 말을 많이 더듬었다. 꼭 잔뜩 긴장이라도 한 사람처럼. 그 정도로 말을 더듬는 사람은 대학교 때 똥군기를 잡으려 했으나 말을 더듬는 바람에 모두의 비웃음을 샀던 체육부장 선배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아, 여기가 그, 저, OOOOO이라는 회산데요. 이, 입사지원 하셨죠잉~?"


"아, 네네. 안녕하세요!"


그때서야 며칠 전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정체 모를 회사에 입사지원을 했던 게 기억났다. 당시 다니고 있던 주물공장은 연봉이 7천이 넘고, 세금 떼고 들어오는 월급만 400만 원 정도였다. 안 그래도 빚도 없고 변동지출도 미약했던 난 매달 저축하는 금액만 최소 300만 원이 넘어갔었다. 하지만 일이 너무 위험하고 힘들었다. 애초부터 회사를 오래 다닐 생각이 없었던 내게 직장이란, 남들에게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보상받을 수 있는 나만의 무기를 갈고닦기 위해 잠시 거쳐가는 곳일 뿐이었다. 물론 연봉 7천 이상을 주는 직장을 구하기가 쉬운 건 아니지만(나처럼 스펙도 경력도 없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용광로 앞에서 이런 식으로 일하다간 남는 건 푼돈밖에 없을 것 같았다. 실제 내게 업무를 가르쳐줬던 10년 차 형님은 여름철 쓰러지지 않기 위해 몸보신용 약값만 매 달 100만 원씩 들어간다고 하였다. 심지어 일한 지 10년도 넘은 베테랑인데 연봉은 나와 별반 다르지가 않았다. 하여 이직을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입사 지원서를 넣었던 회사의 담당자인 것 같았다. 별도의 면접관인 건지, 훗날 내 상사가 될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내심 사수가 아니길 바랐다. 근데 말투가 전라도 사투리였다. 광주 사람인 거 같았는데, 경북 지역에서 광주 사투리는 들어보기 힘든 편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광주 사람일까. 광주에서 넘어온 사람일까. 면접 날짜는 빠르게 잡혔다. 전화를 받은 다음 날에(전화가 걸려온 시간은 저녁 6시 30분쯤이었다) 바로 면접을 보기로 했다. 주소는 집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어느 아파트였다.





무슨 일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넣은 건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는 집에서 가깝다는 것. 두 번째는 빨간 날 다 쉬는 사무직이라는 것. 세 번째는 '규모는 분명 크지 않아 보이는데 대체 무슨 회사길래 복지혜택 라벨이 꽤 많이 달렸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복지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근데 또 그런 것치곤 지원자가 별로 없었다. 물론 캐드(컴퓨터 설계 지원 소프트웨어 'AutoCAD')라는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을 우대한다고 적혀 있긴 했으나 필수는 아니었다. 뭐, 나야 땡큐였다. 경쟁이 붙으면 쥐뿔도 없는 난 애초에 면접 자체도 잡히지 않을 확률이 컸으니까.


사실 이직 생각이 그리 확고한 상태는 아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 건지 감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아보니 환경 컨설팅 일을 하는 회사라는데, 환경쪽은 난 아예 문외한이었다. 하여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게 면접을 보러 가는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 생각보다 조건이 좋으면 땡큐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여겼다. 보통 그런 곳은 사람들이 가만히 놔두는 법이 없었으니.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6시까지 오라길래 5시 50분에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나는 전화를 걸었다. 2초 만에 전화를 받더니 바로 올라오라고 하였다. 여전히 말은 더듬었다. 엘리베이터 문 양쪽으로 두 개의 집들이 층층마다 있는 구조였다. 내가 누른 버튼의 층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이미 한쪽 문이 열려 있어서 그리로 바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안에는 세 명이 있었다. 내게 전화를 건 말 더듬는 사람이 누가 봐도 책임자 같아 보였다. 셋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였고 혼자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를 반기느라 웃음 지어 보이는 거였겠지만, 왠지 평소에도 그런 2:1의 구도가 유지될 것만 같았다. 나머지 두 사람은 최소 내 또래거나 그 위일 것 같았다. 일순간 스캔한 바로 느낀 세 명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정말 착하게 생겼다는 점이었다. 단, 그렇다고 좋은 건 아닌 것 같았다. 경험상 사회라는 정글에서 '착함'은 여러 방면에서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두드러질 때가 조금 더 많았다. 가장 좋은 건 일도 잘하면서 적당히 착한 거였지만 그런 사람은 여태 본 적이 없었다. 최소 나를 스친 사람들 중에서는 프로페셔널할수록 성질이 더러웠다.


아파트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최근 들어 리모델링을 한 것 같았다. 거실 창가에 컴퓨터 세 대만 빼면 완전히 가정집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는데, 문제는 그 컴퓨터 세 대가 공간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이었다. 혹시 '숙소 겸 사무실' 느낌으로 인테리어를 한 거라면 완전 실패한 셈이었다. 거긴 처음 방문하는 내 눈에도 사무실보다 좀 더 사무실 같은 곳이었으니까.




내게 전화를 걸고 책임자 같아 보였던 그 아저씨는 나머지 두 명의 상사이자 팀장님이 맞았다. 나를 소파의 넓은 쪽에 앉히고 본인은 맞은편 좁은 곳에 앉아서 면접을 진행했다. 말이 면접이지, 내가 봤던 면접 중에서 가장 면접 같지가 않았다. 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으면 됐었다. 근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면접 보는 내내 난 말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쪽에서 내가 궁금해할 법한 '모든 것'을 아예 페이퍼로 깔끔하게 정리해서 떡하니 테이블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업무 내용과 부연설명은 팀장님이 해주셨지만, 연봉과 복지혜택 등이 적혀 있는 그 A4용지 한 장이면 충분해 보였다. 팀장님도 내게 발언 기회를 줄 생각은 전혀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꼭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말씀을 하셨다. 회사의 본사는 서울에 있었고 내가 일할 곳은 지방에 별도로 있는 지사였다.


그렇게 10분 정도 듣다 보니 대충 궁금한 건 다 해결이 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숙련도가 어느 정도까지인진 모르겠으나 캐드를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호의적이었다. 자세한 업무 내용은 하면서 가르쳐 준다고 하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로 일하는 업무 형태였고, 주말은 물론 빨간 날 다 쉴 수가 있었다. 출근은 여덟 시 반, 퇴근은 다섯 시 반. 아내의 출퇴근 시간과 동일했다. 연봉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30대를 넘어선 나이에 경력 없이 신입으로 사무직에 들어간다는 건, 일단 서류에서 컷 당하기 일쑤이기도 하거니와 입사한다 한들 연봉이 박봉인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페이퍼에 찍힌 연봉을 보니 살짝 좀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준수했다. 주물공장에 비하면 반토막 나는 수준이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나쁘지가 않아 보였다. 어중간한 중소기업에선 찾아볼 수 없는 복지혜택도 많았다. 기대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치곤 마음이 이미 많이 기울어진 상태였다. 당시 아내에겐 면접 본다고 말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면접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아내에게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었다.


"혹시 야근 있나요?"


"아이구, 아니요~ 야근은 거의 없어요."


'거의'라는 말이 꽤나 거슬렸지만 애써 무시하고자 했다. 사기꾼 기질이 영 없어 보이지만은 않은 관상의 소유자인 팀장님이었지만,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다른 조건들이 생각보다 너무 괜찮았기에. 그리고 당장에 다니고 있는 공장을 당장에라도 때려치고 싶었기에. 그럼에도 찝찝함은 시원하게 가시지 않았지만, 요즘 같은 시국에 설마 면접사기를 치진 않을 것 같아서 '거의 없다'는 말을 거의 믿어보기로 했다. 팀장님은 내가 상당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당장에 입사 결정을 해도 좋다는 뉘앙스를 내내 풍기더니 좋게 말하면 영업하듯 다르게 말하면 덤벼들듯, 정확한 이직 날짜를 면접이 끝나기 전에 꼭 받아내고야 말겠단 다짐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받아내려 했으니까.


팀장님의 말들이 거짓이 아니라면 나로선 나쁠 게 전혀 없었다. 정말 그의 말들이 모두 명백한 사실이라면 오히려 내가 잡아야만 하는, 누구에게도 양보해선 안 되는 귀한 자리였다. 비록 결혼식을 두 달 앞둔 시기여서 아내에게 말하기가 꺼려지긴 했으나, 앞으로의 미래가 걸린 문제였기에 용기를 내어 말했더니 아내는 조용히 내 뜻을 지지해 주었다. 내가 만약 아내 입장이었다면 과연 느닷없는 배우자의 돌발 언행을 그리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은 아내를 만난 게 틀림이 없었다.


여하튼 팀장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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