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4. 행복하려면 정직하게 살아야 된다
난 스스로 내린 행복의 정의가 있었다. 그건 바로 '크게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행복해야 한다는 집착도 없는 상태'였다. 그에 따르면 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아늑한 34평 아파트에서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나를 똑 닮은 아이와 함께 살고 있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는 데다가 독서와 글쓰기로 잉여시간을 메우며, 요즘 같은 세상에서 갚아야 할 빚도 많지 않고(통장엔 이미 빚을 다 갚고도 남을 만큼의 돈이 들어 있다), 더 이상 갖고 싶은 것도 필요한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더할 나위 없이 안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행복하려면 정직하게 살아야 된다'라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흔한 말 같으면서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말이 진실에 가까운 말일 거라고 직감했다. 뒤이어 얄팍한 우울감이 맴돌았다. 난 정직과 그다지 가까운 사람은 아니었다. 차마 인정하긴 싫지만 사실이었다. 다른 곳에선 잘 안 그러는데 유독 회사로 출근만 하면, 정확하게는 팀장님 옆에만 있으면 내 안에 잔존하던 정직성이 급속도로 옅어지는 마법이 일어났다.
어떤 분야에서든 기본기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여겼다. 그런 만큼 여러 방면에서 '정석'을 지향했다. 근데 그에 못지않게 편법도 좋아했다. 뻔히 지름길이 눈앞에 있는데 굳이 먼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령 누가 일거리를 줬는데 그게 단순반복 작업이라면 '혹시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만들어 놓은 매크로 같은 게 없을까'라는 의심을 필두로 본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구글링부터 하고 봤다. 그럼 대부분의 경우 내가 찾는 그 무언가를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게 있었다. 그런 식으로 얼굴도 모르는 세간의 인재들 덕분에 시간적 이득을 정말 많이 봤다.
문제는 편법을 취하다 못해 즐기다 보니까 편법만 좇게 된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최소 일주일 정도는 걸릴 법한 일을 3일 내에 제출하라는 오더가 떨어지면 잽싸게 일을 시작하기는커녕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엉뚱한 데 시간을 쏟았다. 혹은 정합성을 요하는 작업이 있으면 더블체크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 번만 꼼꼼하게 잘하면 된다는 안일한 고집을 내세웠다. 다만 근본 없는 똥고집(?)은 아니었다. 문서 작성에 한해 난 꽤나 신속하고도 정확한 편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별로 중요치 않은 것들은 완벽하게 처리하면서도 꼭 중요한 부분에서 걸려 넘어지곤 했다. 그럼에도 '난 웬만하면 틀리지 않는다'는 관념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그 결과 팀장님이 일을 시키면 무조건 빨리 끝내려고만 하거나 게으름 피울 생각만 했지, 실수 없이 꼼꼼하게 잘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물론 어차피 하는 거 차질 없이 끝내려고는 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기회는 단 한 번 뿐이었다. 팀장님이 두 번 세 번 확인하라고 하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고 재빠르게 딱 한 번 훑어보고 마는 게 최선이었다. 업무의 양이 많은 만큼 잔실수도 비례하여 늘어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에 따르는 실수를 팀장님은 요목조목 짚긴 했지만 참 곱게도 걸고넘어졌다. "잘 좀 하지." 혹은 "바빠서 정신이 없었나 보네." 정도에 그쳤다. 그럼 난 반성을 할 법도 한데 딱히 태세를 고치진 않았다. 마치 어른이 오냐오냐 해주니 버릇이 나빠지기만 하는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팀장님 앞에선 농땡이(?)를 피우는 게 쉬웠다. 팀장님은 워낙 컴퓨터와 친하질 않다 보니까 본인이 지시하는 일이 얼만큼의 시간이 걸리는지 당최 가늠을 하지 못했다. 난 그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마감을 정해주지 않고 일을 시키면 늘어질 수 있는 최대한으로 늘어졌다. 가뜩이나 편법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간단한 작업일수록 훨씬 더 빨리 끝낼 수 있음에도 영악한 완급조절을 일삼았다. 그렇게 벌어들인 시간으로는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팀장님이 사무실에 없으면).
반면에 팀장님은 실로 정직했다. 옆에서 보다 보면 참 요령 없이 일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나처럼 잔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씩 풀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했다. 대신하는 일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무실에서 혼자 새벽까지 야근할 때도 많았다. 한편으로는 끈기가 대단한 분이었다. 컴퓨터를 잘 다룰 줄 모르는 상태에서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만큼 답답하고 힘든 것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님은 어떡해서든 정면 돌파하여 끝을 보기 때문이다. 팀장님 손을 거친 일은 파고들수록 잔실수가 돋보이는 나에 비해 뒤탈이 거의 없었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으면 이런 글도 쓰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아직까진 회사에서 주는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보니 해가 떠 있는 시간 중 대부분은 회사에서 보낼 수밖에 없다. 그 말인즉슨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정직하게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만큼의 시간을 불행하게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행복하려면 정직하게 살아야 된다'라는 원리에 의하면 말이다. 그렇다고 회사에 있을 때만 정직하지 못한 거라며 어물쩡 넘어갈 수도 없었다. 직장인으로서의 나도 엄연한 나이기에.
어쩌면 난, 평소 그토록 깔보고 무시하던 팀장님보다 행복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