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작은 어긋남

흐르는 것들에 대하여

by 아르칸테


딸이 여섯 살이 되었을 때,아버지는 아이의 얼굴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분명히 인식했다.

변화는 크지 않았다.표정이 바뀌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미세했고,성격이 달라졌다고 부르기엔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다만 같은 아이가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른 각도로 세상에 놓이는 느낌이었다.

집에서는 늘 비슷했다.
말수는 적었고,움직임은 절제되어 있었고,
아버지가 있는 공간에서는 굳이 눈치를 보지 않았다.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고,
허락을 묻지도 않았다.이미 허용된 범위 안에서만
행동하는 아이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린이집에 갈 때면
아이는 아주 짧은 순간 다른 얼굴을 준비했다.

문 앞에서 신발을 신는 동안,
등 뒤에서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을 때는
그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교사의 시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이의 눈동자가 아주 조금 밝아졌다.

웃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웃음이 올 수 있는 위치를 미리 확보한 표정이었다.

교사가 말을 걸면 아이는 고개를 들었고,
짧은 문장으로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괜찮아요.”

그 말들은 아이에게서 나왔다기보다
상황이 요구하는 정확한 위치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교사들은 아이를 좋아했다.
문제를 만들지 않았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았고,
규칙을 빠르게 이해했다.

“생각이 깊은 아이예요.”
“차분하고요.”

그 말들은 칭찬에 가까웠지만,
아버지는 그 언어들이 아이를 잘 설명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놀이터에서 작은 일이 있었다.

아이 둘이 같은 색 블록을 잡았다.
잠깐의 당김이 있었고, 교사가 가까워졌다.

딸은 즉시 손을 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제가 양보할게요.”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눈은 교사를 향해 있었다.

교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상황은 그걸로 끝났다.

그러나 교사가 돌아서자마자
딸은 바닥에 떨어진 다른 블록을 집었다.

처음에 원하던 것과 완전히 같은 모양이었다.

그 선택은 계획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이동처럼 보였다.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조용히 옮겨갔을 뿐이었다.

아무도 그 장면을 문제 삼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아이의 행동을 머릿속에서 여러 번 되짚었다.

양보는 진짜였을까.
아니면 양보라는 형식을 통과한 뒤 원하는 결과로 이동한 것일까.

그 둘을 가르는 기준은
너무 얇아서 판단으로 부르기 어려웠다.

며칠 뒤 아버지가 어린이집에
조금 일찍 도착했을 때였다.

딸은 창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교사가 옆에 앉아 있었고,아이들은 주변에서 떠들고 있었다.

딸은 교사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교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와, 잘 그렸네.”

딸은 아주 짧게 웃었다. 입꼬리만 움직였다.

그때 아버지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아이가 먼저 보았다.

딸은 교사를 다시 보지 않았다.
웃음은 그 자리에서 끝났다.

아버지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아이가 누구를 기준으로 어떤 얼굴을 꺼내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거짓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기능적이었고, 적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빠르고 정확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어린이집 어땠어?”

딸은 잠시 생각했다.

“괜찮았어.”

“뭐가?”

“그냥.”

그 대답은 회피가 아니었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작은 어긋남을 느꼈다.
아직 문제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결이었다.

아이는 규칙을 따르고 있었지만,
그 규칙에 자신을 묶고 있지는 않았다.

사람을 보며 필요한 반응을 고르고,
상황을 통과한 뒤
조용히 다른 길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선택들은 모두 작았고, 모두 합리적이었으며,
그중 어느 것도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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