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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연 Mar 08. 2023

내면 아이는 어떻게 키우지?

티저는 왜 아직도 쉽지 않지?


SNS에서 필라테스의 화려한 동작들, 한 번쯤 보셨을 텐데요, 그렇게 필라테스에는 다양한 동작이 있습니다. 제가 이 매거진을 처음 쓸 때 '필라테스 티저'라는 동작이 저에게는 굉장히 힘든 동작이라는 얘기를 했었죠. 햄스트링이 짧은 탓에 고관절을 접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힘들고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여전히 매일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다시 힘들어지는 동작입니다.


필라테스 티저


마음에도 그렇게 유독 어려운 동작들이 있지 않을까? 몸으로 동작을 연습하고 성장해 나가는 것처럼 마음도 그렇게 성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이 매거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원래 힘들어하던 어려운 동작도 안 되는 날이 있지만 맨날 하던 기본 동작인 풋워크도 마음처럼 안 되는 날이 있어요.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 '나는 이건 무조건 잘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요? 항상 잘하던 것도 못하는 날이 있고요, 겨우 재활해서 회복했는데 다시 다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아도 되는 건 내가 해봤던 거니까, 성장도 해봤고 재활도 해봤으니까. 다시 떨어지는 날이 있더라도 그전보다는 더 잘, 빨리, 회복하고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성장의 모든 순간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무튼 풋워크가 안 먹히는 날에는 헌드레드를 먼저 해봅니다.


코어를 활성화하는 필라테스 헌드레드


헌드레드는 코어의 적극적인 활성화를 이끌어내면서 팔, 다리의 힘까지 연결할 수 있는 조셉 필라테스의 오리지널 동작 34가지 중에 가장 첫 번째 동작입니다. 제대로만 해낸다면 온몸에 열이 오르면서 전신에 있는 근육을 깨울 수 있죠.


리포머에서의 풋워크


몸에 코어 근육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풋워크를 시행하면 훨씬 써야 할 힘을, 써야 하는 방향으로 잘 써내면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 코어 근육이 마음으로 치면 자존감이 아닐까요? 근데 자존감은 예를 들면 아이큐처럼 너는 몇 점, 너는 몇 점으로 나눠진 것이 아니라 내가 충분한 근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잘 써지지 않는 날도 있고, 약해지는 순간도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날은 코어를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처럼 자존감도 활성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내가 나의 행복을 위해서 무언가를 쌓아나가는 거죠. 저는 매년 다이어리를 쓰는데 다이어리의 맨 뒷장에는 기분이 괜스레 좋지 않은 날, 내가 나에게 해주어야 하는 것들과, 별거 아니지만 하면 기분이 좋은 것들의 리스트를 적어 놓습니다.


그것도 잘 안될 때는 제가 누군가를 엄청 좋아했을 때를 회상해 봐요. 그 사람한테 뭘 해주고 싶었는지, 그 사람이 오늘의 나처럼 일도 마음대로 안되고 기분도 안 좋고 하는 것마다 괜히 꼬이는 날이라서 지치고 힘들어한다면 내가 뭘 해줬을지, 어떻게 해주고 싶었을지. 그 말도 행동도 저 자신에게 똑같이 해줍니다. 어린아이의 투정을 한껏 받아준다고 생각하고요.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뭐 하고 싶어? 뭐 먹고 싶어? 뭘 하면 기분이 나아질까? 네가 원하는 거면 뭐든 해도 괜찮아.'


이렇게 버릇 나빠질까 봐 걱정하지 않고 차라리 버릇이 나빠질 정도로 그 칭얼거림을 다 받아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받아준다고 해서 버릇이 나빠지지 않을 거라는 정도의 믿음은 제 자신에게 있으니까요. 마음이 건강하다면 충분히 충전된다면 그런다고 해서 버릇이 나빠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건강하고 좋은 선택을 하려고 자발적으로 노력하게 되죠. 예전에 마음공부를 하다가 들은 문장인데요, 나쁜 마음은 없다고 해요. 아픈 마음이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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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제가 좋아하는 타로카드 집이 있습니다. 거기는 단순히 재미 삼아 운이나 이런 걸 점친다기보다 심리상담소에 가까운 곳이에요. 타로를 매개로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살펴보면서 결국은 상담을 해주시는, 심리 상담 자격과 타로 자격을 모두 가지고 계신 선생님이 계십니다. 제가 그런 쪽에 관심도 많고, 또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타로로 보는 성격 유형 워크숍도 추천해 주셔서 너무 듣고 싶었는데요, (아직도 못 들었네) 무튼 글을 쓰면서 캐릭터 분석이나 캐릭터 설정에 엄청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저는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합니다. 보통은 싫어하는 사람, 맘에 안 드는 사람 보기 싫어하잖아요. 근데 저는 제가 싫어하고 너무 이해 안 되고 '왜 저래?'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멀리서 계속 지켜보는걸 좀 좋아해요. 그게 다 캐릭터 분석, 혹은 심리 분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사람은 왜 저 상황에 저런 반응을 보이지, 같은 상황을 저렇게 해석하는구나, 많은 단어 중에 저 단어를 선택해서 이야기하는구나, 그 말을 할 때의 어조나 태도가 이렇구나 등등, 말과 행동에서 비치는 방어 기제와 작동 원리(?) 같은 것들을 파악하고 혼자 생각해 보고 정리해 놓는 걸 좋아하죠.


그 타로 선생님과도 얘기한 거지만 저는 엄청 두껍고 큰 탱크 안에 진짜 어린아이가 들어 있다고 하셨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요. 저는 아직도 친구들에게 '너는 진짜 영혼이 맑은 거 같아, 동심을 아직도 잃어버리지 않은 것 같아, 어릴 때랑 비슷하게 순수한 마음이 남아있는 게 신기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요, 그게 좋으면서도 너무 싫습니다.


'이 어린애는 왜 아직도 안 자라는 거야!? 나 너의 그 어리고 여린 마음 때문에 세상을 살아나가기가 굉장히 힘들거든? 마치 마음에 화상을 입고 피부가 재생이 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마음이야. 바람만 불어도 아파. 그 마음으로 어떻게 건강히, 다치지 않고 살아나갈래? 그 연약한 마음으로 살아남기나 할 수 있어?' 이렇게 저를 탓하기도 하고, 어쨌든 '내 본성이 그런 걸 어쩌겠어.' 하며 두꺼운 탱크에 쇠질을 해가면서 더더욱 독해지고 더더욱 강해져야겠다는 마음을 다져나가기도 했죠. 그 탱크가 아무리 두껍고 강력해진다고 해서 그 안에 있던 아이가 크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왜인지 모르게 동심에 때가 타지 않는 건, 그것 역시 내가 타고난 특성이겠지 하면서, 어찌 보면 정말 소중하고, 이제는 너무 좋아하는 나의 특성이라고 생각하는데도 가끔은 또 그게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사실은 사랑받고 보호받고 싶었던 그 아이가 있다는 건 알겠어요.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강력한 탱크를 만드느라 독하게 굴었던 것도, 그래서 누가 보면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내가 느끼기에 나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언제라도 무너질까 봐 두려워서 바짝 긴장하고 균형을 잡고 있는 것 같은 그 공포를 아무도 모르는 것도 왜 그런지 어렴풋이라도 알겠어요. 근데 그럼 이 아이는 어떻게 키우냐고요? 왜 그건 아무도 안 알려줘.



-



이제 그렇게 어려운 감정이 또 나를 찾아오면, '나의 새로운 면을 찾았구나, 어떻게 해나갈지 같이 알아가 보자.'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아직도 바보같이 해맑고 순진한 구석이 남아있냐고 뭐라고 하기보다, 그냥 믿고 싶었던 마음, 사실은 그냥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 그 어린아이의 마음을 그냥 이해하고 공감해주려고 해 봅니다. 이 힘든 마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도 괜찮아, 알아가면 되니까!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 상황 자체에 스트레스받고 수치심 가지고 화내지도 말고. 모르고 답답한 것 자체도 편안하게 수용하고 알아봐 주고 돌봐주기.


모름을 발견할 때마다 앎으로 채워갈 수 있고, 그만큼 도약할 수 있는 것일 뿐.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야.


잘 모르고 계속 혼란스럽기만 하고 그럴 때도 그냥 '그렇구나.' 하면 돼. 아직 이 부분을 잘 모르는구나,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구나, 그러면서 겪고 있구나. 그것 참 힘들고 어렵고 막막한 일이겠다. 하고 그 마음과 한껏 함께 있어주는 거예요. 앎을 억지로 만들어서 채우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마음들이 충분히 수용받고, 받아들여지고, 성장하게 되면 저절로 앎의 순간이 찾아올 테니까. 삶의 순간순간, 필요한 경험들이 나에게 찾아올 거고 그 과정에서 힌트들이 여기저기서 떠오를 거야. 모름에 저항하고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그냥 그 안에 온전히 있으면 돼.


그러니 차라리 한 껏 수치스러워하고, 내가 진짜 두려워서 피한 것이 무엇인지, 진짜 그 일이 생기면 어떨 것 같은지 풍덩 빠져봅니다. 두려워서 피하고만 싶었던 감정을 느끼기 무서워서, 상처받기 싫어서, 그 반대의 모습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달린 순간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냥 그 모습이 되어보는 거예요. 기꺼이. 그리고 그때 내 감정을 충분히 느껴봅니다. 그리고 그 슬퍼하는 나와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에 대해서 "YES"해주는 것. '그렇게 생각하지 마, 더 건강하게, 더 현명하게, 더 어른스럽게 생각해야지!'라고 하지 않고, 내 마음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들과 1cm의 거리도 없는 포옹을 내가 나 자신에게 해주는 겁니다.(그렇게 생각만 해도 너무 따뜻해요!) 그게 단순하게, 가만히 느끼고 수용해 주는 것에 가깝다고 하더라고요.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꾸지 않고, 수정하려고 하지 않고, 더 나아지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제가 이걸 온전히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나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그 불편한 감정들의 뿌리들이 어디 있는지, 매번 들여다보기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요, 알아가고 나아가기를 계속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피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감정들을 한껏 느끼고 나면 오히려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이 보여요. 오히려 내가 가진 것들을,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것들을 마음속에서 저항하지 않고 깨끗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뜻밖의 마음을 받았을 때 그 마음을 온전히 깨끗하게 받지 못하고, 예의상 준거겠지, 빈말로 한 거겠지, 그렇다고 너무 기대하고 믿지는 말아야지, 그런 마음 든 적 있지 않으세요? 



그렇게 저항하지 않고 그 어려운 순간들을 온전히 마주하면, '이렇게 해야지!!!!'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성장이 찾아옵니다. 심층심리분석 상담도 그와 비슷해요. 어떤 해결책을 주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생각하기!!!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하고!!!' 그런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힘들지만 내 감정을 온전히 마주하고 그냥 느끼는 것. 신기하게도 그 과정에서 나의 무의식이 수정되기 시작합니다. 그 아이가 완전히 안아져서 조금씩 자연스러운 성장을 겪는 거겠죠.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성장을 한다고 해도요.




매일매일의 필라테스 수련을 쌓아나가는 것처럼 마음에도 똑같이, 내가 유독 약한 것들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임을 나부터 수용해 주고, 잘 안 되는 것도 어느 날 문득 잘 되는 날이 찾아오고, 또 잘하던 건데 잘 못하게 되는 날도 찾아오고 그 파도를 잘 마주해 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계속 혼란기와 도약기의 반복이니까. 또 혼란이 오더라도 너무 불안해하고 힘들어하고 한심해하고 아직도 이러냐고 전보다 못해졌다고 뭐라 하지 않기. 혼란기도 주기적으로 오고, 그거에 저항할 필요 없어. 뭘 모르는지를 알고, 더 알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그것을 통해 앎을 얻고, 성장하고 도약하게 될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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