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연 Apr 10. 2023

겉으로 보이는 건 다 잘하고 있는 사람

속근육과 겉근육

주변에, 혹은 나 자신이 그런 경우 있지 않나요? 겉으로 보이는 건 다 잘하고 있는 사람. 제가 필라테스를 가르쳐주었던 어떤 친구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건 참, 다 잘하고 있는 사람이었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속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왜 그건 봐주지 않는지 괜스레 짜증이 나기도 했죠. 회피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거든요. 자신 없는 건 하기 싫어하고, 실패하기 싫어하고, 자기가 잘하고 익숙한 것이 아니면 손도 안 데려고 하는 그런 성격 있잖아요.(자기소개인가?)


필라테스를 알려주다 보면 그런 성격이 고스란히 움직임과, 몸과 근육에서 관찰됩니다. 겉에 있는 큰 근육들, 즉 글로벌 머슬들로만 움직임과 운동을 다 해결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죠. 그러면 속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요? 뼈에 아주 가까이 붙어있는 작은, 속 근육들은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겉에서 다 하고 있으니까요. 우리 몸은 조별 과제라고... 이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죠?


속근육 들은 힘은 약하지만 지구력이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은 힘으로도 하루종일 자세를, 즉 뼈의 위치를 잘 유지해 주고, 또 뼈와 뼈가 만나는 관절에서 부딪힘이나 유착이 생기지 않도록 미세 조정을 해주는 역할을 하죠. 어깨나 고관절 같은 곳에서 움직일 때마다 뚝뚝 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이요.


반면에 겉에 있는 큰 근육들은 동원할 수 있는 힘의 크기가 크고 지구력은 약합니다. 그래서 피로도가 굉장히 심한 편이죠. 이 큰 근육들은 운동하거나 힘을 쓸 때는 적극적으로 힘을 내주고, 또 내가 쓰지 않을 때는 off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요. 만약에 자세를 잡아주는 속근육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이 겉에 있는 근육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돼요. 예를 들면 우리가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동안 우리의 머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더욱 단단히 붙잡고 있는 상승모근처럼요. 그렇다면 이 근육들은 굉장히 큰 힘으로 엄청 피로도를 쌓아가며 하루종일 내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굉장히 비효율적이죠. 뼈에 가까이 붙어 있는 속근육들이 제 역할을 해주었다면 큰 힘을 쓰지 않고, 피로하지도 않으면서 자세를 잘 유지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러다 보니 피로해진 근육들은 점점 더 신장성 긴장(늘어난 상태에서의 긴장 상태-고무장갑을 팽팽히 양쪽으로 당겼다고 상상해 보세요. 신장이라고 해서 항상 힘 없이 축 늘어진 게 아니라 엄청 텐션이 높은 상태에서 나 좀 그만 댕겨!!!라고 외치고 있는 상태입니다.)을 하게 되고,

그 안에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염증과 붓기로 인해 근육들은 더 딴딴히 뭉치고 떡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움직이고, 스트레칭을 하고, 주무르고 마사지를 해도 여전히 딴딴하고 피로하게 되죠.






자세가 삐뚤어진 건 알겠는데, 겉에 있는 힘이 센 근육으로 열심히 운동하면 안 되는 건가요?


겉에 있는 큰 근육들은 보통 한 개의 관절이 아닌, 여러 관절을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조인트 머슬이라고 하죠. 대표적으로는 햄스트링이 있는데요 엉덩 관절과 무릎 관절, 두 개의 관절을 지나면서 몸통의 바깥쪽에 가까운 아주 크고 힘이 센 근육입니다. 이와 비교해서 원조인트 머슬, 즉 한 개의 관절만 감싸고 있는 엉덩이 근육들, 둔근과 중둔근들을 같이 살펴보죠.



만약 스쿼트 브리지 같은, 하체 뒷면의 근육들이 잘 쓰여야 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햄스트링이라는 큰 근육에서만 힘을 다 쓰고, 둔근이나 중둔근 등 엉덩 관절에 가깝게 붙어서 관절들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움직여주는 근육들은 활성화가 되어있지 않다면요. 움직임은 점점 크고 둔탁해질 것이고 고관절이나 무릎 관절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그렇게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통증이나, 불편감이 생기기 시작하겠죠.


근데 속근육 들은 이야기 한 것처럼 힘이 센 근육들이 아니라서 단순히 강도 높게 운동을 한다고 해서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관절에서 원래 나와야 하는 섬세하고 작고 기본적인 움직임들을 충실히 하는 것으로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하죠. 그래서 필라테스에는 분절, 관절 하나하나를 나눠서 움직이듯이 하는 동작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속에 있는 근육들부터 깨워서 활성화를 시키고, 속부터 차오르듯이 활성화시켜서 겉에 있는 큰 근육들이 큰 힘으로 움직임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운동이죠. 속근육과 겉근육이 각자의 일을 각각 잘 해내고 서로 역할을 바꾸지 않는 것. 조직들은 신기하게도 자신의 역할에 맞는 특장점을 또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각자의 특성을 잘 살려서 협응 해서 움직이는 것이 조화롭고 바람직한 움직임입니다.


그렇게 속에 있는 근육과, 겉에 있는 근육들이 협응 해서 최적화된 전략으로 잘 움직일 때, 관절의 안정성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또 적절한 힘들을 큰 근육으로부터 동원해 쓸 수 있는 거죠. 보통 헬스나 웨이트를 하는 남자 회원분들 중에 이렇게 속근육들이 활성화되지 못한 채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도 좋고, 수행 능력도 좋다 보니 계속 무게를 치거나 난이도를 높여서 근육통이 오는 정도의 강도 높은 운동을 하고 싶어 하죠. 만약 속에서도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이나 건강히 잘 움직이고 있었다면, 허리가 아프거나 어깨나 목에 질환이 발견되는 등의 뒤틀림이 생기지는 않았겠지요.


그래서 이런 경우는 더욱 인내심을 가지고 속근육들을 깨워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겉에 있는 근육들이 워낙 운동을 잘하고 힘이 세기 때문에, 내가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속근육들이 활성화되기도 전에 겉에 있는 근육들이 먼저 발사되듯이 튀어나와 힘을 쓰고 움직이려고 하거든요.






제가 필라테스를 알려준 그 친구도 그런 움직임 패턴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친구의 성격 또한 움직임 패턴과 비슷했죠. 겉으로 보이는 건 참 잘하고 있는 사람.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기는 무서워하는, 겁이 나는 건지, 피하고 싶은 건지, 상처받는 게 싫어서였을까요?


강사로서 움직임을 이끌어내려고 이런저런 큐를 주기도 하고, 핸즈온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데요. 이게 힘이 없고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것과, 하려고 했는데 근육이나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못하는 것과, 아예 할 생각 없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은 몸에서 티가 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마주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아픈 곳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움직임을 이끌어 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곤 하죠. 무조건 이 방향으로 이렇게 힘을 쓰라고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 과정이 꼭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친구다 보니 괜히 더 답답하고 왜 이렇게 꿈쩍도 안 하나 싶긴 했습니다. 근데 사실 제 마음 어느 구석에도 그런 면이 있어요. 내가 못하는 모습을 남이 보는 게 너무 싫고 수치스럽고, 그래서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너무 창피하고 망신스러울 것 같아서 시도도 안 하고, 피하고, 안 해버리고, 모르는 척하거나 잘할 때까지 어디 숨어서 혼자 죽어라 연습하다가 잘하고 나서야 겨우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하는 척이라도 하는.


저는 데미안에 참 좋아하는 문장이 있는데요,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지 않은 모습에 흥분하지 않는다는 문장이요. 내가 무언가를 유독 싫어하고 분노 버튼이 눌린다면, 그 모습이 자기 안에 어떤 형태로든 들어있는 겁니다. 저는 회피형인 사람들을 엄청 싫어했는데, 자세히 자세히 들여다보니 저도 어떤 부분에서는 엄청난 회피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회피형이 싫으니까 혼자 숨어서라도 열심히 시도하고 도전하고 연습했는데, 할 생각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짜증이 치솟는 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그 이후에 어떻게 운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망신스럽고 수치스럽고 피하고 싶은 내 모습을 마주하고, 기본적이고 작은 움직임들을 조금이라도 시도해보고 있을지. 여전히 겉으로 보이는 것을 잘하면서 그 성취감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어떤 선택을 하든, 사람은 자신에게 안전한 선택을 하겠지요. 사실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다 잘하는 것도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어쩌면 더 피곤하고 힘들 수도 있어요. 겉에 있는 근육들이 그만큼 많이 힘을 쓰고 쉽게 피로 해질 테니까요.


하지만 허리나 목이 아픈 것처럼 어딘가 통증이 느껴지고 불편함이 있고 뒤틀림이 있다면요, 종종 그 신호를 바라봐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가끔은 몸에서 보내는 그 신호들을 들여다보고, 조금씩이라도 자신 없는, 피해왔던 것들에 1mm씩이라도 움직여보기를. 그 과정을 통해서 결국 자신이 불편하지 않게, 아프지 않게, 어떤 것을 너무 많이 두려워하거나 갇혀있지 않고, 안전하고 자유로운 움직임 안에서 편안해지기를. 마음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일단 저 자신부터 그래야겠지요:)





이전 09화 내면 아이는 어떻게 키우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