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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연 Oct 05. 2023

세상의 어떤 구석

사람의 어떤 부분을 이쁘게 봐줄 수 있는 사람


세상의 어떤 구석을, 사람의 어떤 부분을 이쁘게 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쁘고 아름다운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지나쳐버리지 않고 포착할 수 있는 사람. 사랑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게 다 이뻐 보이잖아.


예전에 한창 공연을 보러 다녔을 때 내 책을 읽었다며 수줍게 말을 걸어온 동생이 있었다. 그 동생은 살면서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고 그래서 자기가 난독증이 있는 줄 알았다면서 울었다. 


깜짝이야..! 같이 밥을 먹으러 가면 앞접시를 나눠주거나 젓가락을 챙겨주는 사소한 몸짓이나 움직임에서도 선함이 묻어 나오는 친구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게 이쁜 동생이었는데. 우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생각지 못해서 마음이 찡하고 조금 놀랐다. 술을 먹어서 그런가 그래도 여러 번 봐서 그런가 아니면 내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으로 훅 가까워진 걸까.


무튼 내 에세이는 아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으니까 술술 읽혔다고, 책을 한 권을 꼬박 다 읽어본 게 처음이라면서 고맙다고 했다. 나도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지만 주정 같아 보일까 봐 꾹 참았다. 그냥 같이 울어줄걸 주정 좀 부리면 어떻다고


가끔 책을 잘 읽지 못하거나, 책 읽는 게 느리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럼에도 책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들. 속독과 다독이 독서에 능숙한 거라고 친다면, 책 읽는 게 서툴고 느리더라도 새근새근 읽어나가는 사람들. 그 모습이 참 이뻐 보인다.


전에 토익학원을 한창 다녔을 때였는데, 보통 대학생 기준으로 한두 달이면 토익 700점 정도는 따게 된다. 내가 좋아하던 강사님이 수강생 중에 나이가 꽤 많은 경찰관이 있다고 하셨다. 진급 기준에 들려면 토익을 700 맞아야 하고, 영어를 안 한 지 한참 되셔서 처음에는 기초반도 따라오기 힘들어하셨지만, 1년 넘게 학원을 다니면서 마침내 700점을 넘기셨다는 이야기. 


이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이 얘기가 생각났다. 느리지만 꾸준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 그 서투름이 참 이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일을 못하는 사람을 엄청나게 싫어하는데, 내 마음을 가만히 관찰하다 보면 유독 일을 잘 못하는 사람에게 무자비한 마음이 꾸물꾸물 올라온다. 그게 나여도 말이다. 물론 사회화가 된 이성으로 누르고 있기는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그 무자비함이 그대로 꽂혀버리니까 결국 나에게 가장 무자비해. 


근데 이 얘기들을 떠올리다 보니 서툰 것도 꽤 안쓰러우면서 사랑스럽고 예쁘잖아?


그렇게 나의 모든 부분을 봐줄 수 있다면 좋겠다





+


앗! 귀여운 이야기 하나 더 추가!


남자친구가 퇴근하고 풋살을 다니는데, 이번에 너무 귀여운 막내가 들어왔다고 했다. 조금 체격이 있어서 통통하고, 축구는 잘 못 하지만 빠지지 않고 꾸준히 보이는 동생이라고 했다. 성격도 수줍고 내성적인걸 보니 자기 딴에는 엄청 용기를 내서 찾아온 거 같다고


그래서 잘 못하는 거 아는데도 골 한번 넣으라고, 공 한 번이라도 더 건드려보라고 팀원들이 일부러 공을 그 동생한테 많이 차 준다고 했다. 너무 귀엽잖아. 


하루는 남자친구가 자기한테 오는 공을 다 그 동생한테 차 줬더니 뛰다가 "저한테 공 주지 마여어어어�"라고 외쳤단다. 그래서 다들 빵 터졌다고 그 얘기를 전해 듣는데도 웃음이 나서 마음이 따숩. 


계속하다 보면 잘하게 되든, 아니면 여전히 계속 서투르더라도. 계속 계속하길 바라본다 그 자체로 이쁘고 사랑스러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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