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연 Oct 10. 2023

안전하게 움직이는 경험 쌓기

내 마음아 안심하렴

자 이제 정말 움직여 봅시다


안전하게 움직이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일단 나의 상태와 레벨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과도하게 힘든 운동을 하다가 다치거나, 지나친 보상이 생기지 않을 테죠. 나를 잘 관찰하고, 내가 어떤 움직임을 해야 기분이 좋은지, 또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생기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 뿌듯한 느낌이 드는지, 혹은 그냥 지쳐버리기만 했는지 관찰하고 또 기록까지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남을 의식한 움직임과 기록도 때로는 동기부여가 되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움직임과 기록을 해야 내 마음에 좀 더 깨끗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운동을 시작할 때는 잘 가르쳐줄 강사를 찾거나, 유튜브를 통해 전문가의 조언을 듣거나, 책을 찾아보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나에게 어떤 것이 적합할지 결정해 봅니다. 나에게 최적화된 방향을 찾아주는 것이죠. 이렇게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에게 좋은 방법을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시작입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죠


운동을 배우러 가서도 나의 고집이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우러 가는데도 많은 저항이 생기겠죠. 시간이나 돈 같은 현실적인 문제부터 귀차니즘과 필요한 걸 알면서도 미루는 마음 등. 그런 언덕을 열심히 넘어서 배우러 갔는데도 또 다른 언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맞는 건 알겠는데 왠지 따라가지 않는 마음, 동의하고 싶지 않은 마음 등. 저도 많은 강사들을 만나봤지만 항상 마음속 깊이 동의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각자의 장점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작은 것이더라도 최대한 배워본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좋은 강사를 만나면 좋겠지만, 누구를 만나도 배울 점을 찾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 또한 최선을 다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정답일 수는 없다는 마음을 항상 기억하고 의연해지려고 합니다.


저는 1년 정도, 주에 2회씩 45분 심층정신분석 상담을 다녔습니다. 보통의 우울증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심하고, 이 경우에는 약물 치료가 유효하지만요. 만성적인 우울증은 사고방식과 무의식이 나를 계속 우울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잘 살펴보기 위해서 명상 요가도 다니고, 책도 찾아보고, 유튜브에 있는 심리학 콘텐츠도 많이 찾아봤어요. 그 모든 과정이 버겁고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일단 내 마음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고요, 내가 애써 덮어두었던 과거의 기억과 감정들을 굳이 모두 꺼내봐야 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겨우 대충이라도 아물었던 상처를 다시 헤집는 기분이 들었어요. 


선생님은 너무 나아지려고 무진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상담할 때도 솔직하게 잘 얘기하고, 차도도 제깍제깍 보이고, 선생님의 말도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상담실에서까지 모범생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요. 저는 상담가기 전과 후에 모두 일기를 썼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혼자 먼저 분석하고 생각해 보는 예습을 하고, 상담에 가면 똑똑하고 이해도 빠르고 저항이나 고집이 심하지 않은, 치료에 엄청 적극적이고 열심히인 내담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상담이 끝나고 나면 오늘 했던 이야기들을 또 노트에 정리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리하곤 했어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나오던 날도, 저녁 수업을 가야 했기 때문에 마음을 얼른 추슬러냈고, 또 웃으면서 저녁 수업을 해내곤 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쓰고 보니까 저에게 너무 가혹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상담실에 가기로 했습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나와서도 뭘 메모하거나 공부하지 않고, 상담을 안 빠지고 가는 것만 해도 잘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요. 그때는 그게 엄청난 게으름을 피운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심층심리분석 상담을 하고부터 선생님은 저에게 중립적인 태도로 일관하셨는데, 그게 어느 때는 너무 매정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좀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주시면 안 되나 하고요. 선생님은 항상 중립적인데 저 혼자 생각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선생님을 미워하기도 하고, 그려려니 하기도 하고, 내 치료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사실은 어떻게 해결 방법이 없으니 그냥 방임하는 게 아니실까? 생각하기도 하면서 상담을 다녔습니다.


바깥에서 어떤 일을 겪으면 부정적으로, 내 탓을 하는 방향으로, 결국은 내가 우울해질 수밖에 없게끔 설계되어 있는 내 무의식을 저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 건지 항상 답답해했는데, 열심히 생각하고 계획하고 분석하는 것보다 속도는 느렸지만, 선생님의 말대로 그냥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에 묶여있던 매듭이 그냥 스르륵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건 한순간에 탁 하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얼음이 녹는 것처럼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리고 믿을만한 상담자가 있으면 훨씬 도움을 받을 수 있겠죠.



너무 각 잡지 않고 일단 해보기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너무 각잡지 않고 일단 시도해 보는 마음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제가 어느 순간부터 별생각 없이 상담을 다녔던 것처럼, 저 같은 완벽주의자들은 더더욱이요. 


근데 그렇다고 또 막무가내로 덤비는 것보다는 적절한 프렙을 쌓아가는 것도 필요하죠. 필라테스의 어려워 보이는 동작들도 냅다 하는 것과, 사전에 어떤 움직임들을 수행하면서 쌓아가는 것의 차이는 꽤나 크거든요. 제가 못하는 필라테스 티저도 무턱대고 하는 것과, 고관절의 올바른 움직임과 후면사슬의 신장성 운동, 코어의 활성화를 충분히 거치고 난 후에 하는 티저는 생각보다 쉽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참 어렵죠? 너무 생각해도 안되고, 또 너무 생각 없이 해도 안되고. 마치 우리의 척추도 너무 후만이지도 않고, 또 너무 펼쳐지지도 않는 중도의 상태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요.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고 그 장단점이 되는 정도가 나에게 적합하게끔 안전한 경험을 통해 찾아가는 것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생활로의 전이


나에게 맞는 안전한 방법으로 고립 운동을 연습했다면, 복합적 운동도 해보고, 또 다양한 포지션에서도 움직여봅니다. 일상생활에서 생기는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에 잘 적응해 나가면서 동시에 적절한 힘을 통해 대응하고 움직이고 결국은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도 가끔은 제가 노출되지 않아 보았던 환경이나 사람들에게 저를 종종 노출시켜 본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갑작스럽게 만나지 않던 사람도 한번 만나보고, 잘 가지 않았던 모임에도 한번 가보고, 내가 원래 했던 말들도 하지만 내가 원래는 잘 안 했던 말과 행동을 해보기도 하면서요. 저는 지금 그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지켜보고, 따뜻한 관찰자가 되어주고, 기록하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움직여보는 것. 어떨 때는 각잡지 않고 계속 시도하다가도, 어느새 각 잡게 되는 나의 마음도 관찰하고 알아차리고, 그 정도가 지나친 것 같을 때는 다시 각잡지 않고 시도하기도 해 봅니다. 적절한 사전 움직임을 찾아보고 천천히 쌓아가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또 일단 해보는 용기를 가져보기도 하고요.



내가 힘들 때, 내 마음이 내 친구라면


마음이 힘들 때가 가장 어렵죠. 미움이든, 사랑이든, 이별이든, 좌절이든, 실망이든, 무기력이든. 어떤 감정에 의해서든 마음이 힘들어질 때, 지칠 때, 힘들고 지치는 정도가 아니라 산산이 조각나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이 있을 때도요. 내가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슬픔,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 그 앞에서 나아지려고 무던히 상담을 다니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심리학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하면서 나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되었던 문장들이 있다면 그걸 꼭 메모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데도 답이 없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이 세상의 낭떠러지 끝에 혼자 서있는, 아니 매달려 있는 느낌이 들 때면요? 찾아보고 공부하는 것 마저도 힘들고 부담스러워서 다 놓아버리고만 싶을 때는 그냥 저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줬습니다. 그냥 쉬고, 그냥 걷고, 그저 웃을 수 있고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생각 없이 그걸 보기도 하고요. 그럴 때일수록 내가 할 수 없는 것,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것에 집중하고 반복해서 기억하고 감사해보기도 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되더라도, 세상 끝에 나만 남겨진 것 같을 때면 저는 더더욱 의식적으로 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만약 내가 아무리 못나도 끝까지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는 지금 나에게 뭐라고 얘기해 줄까, 나를 어떻게 대해줄까. 내 마음이 나의 내부 감시자가 아니라, 내 마음이 내 친구라면 얼마나 든든하고 따뜻할까.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조금씩 바꾸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p.s. 아참, 저 댄스학원 갈 거예요. 정말 자신 없고 수치스러울 것만 같은 어떤 것을 한번 배워보려고 합니다. 근데 그 모습도 이제는 제가 꽤나 귀엽고 웃기다고 생각해 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한번쯤은 춤을 배워보고 싶다고 마음먹고는,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면서 1년을 미룬 것 같아요. 그 후기도 글로 써보도록 할게요.




이전 18화 세상의 어떤 구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