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사 와 심은 뒤 햇빛을 충분히 소주고 물을 충분히 주다 보면 어느새 떡잎이 자라고, 줄기가 뻗어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성취감이 상당하달까.
토마토는 영양을 많이 필요로 하는 채소란다. 그러다 보니 반드시 해 줘야 하는 작업들이 있다.
모종을 심은 후, 첫 꽃이 피면 첫 꽃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첫 꽃에 영양분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 깊고 줄기를 튼튼하게 해 주기 위한 이유이고, 영양이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곁가지를 제거해 주어야 한다.
그저 씨앗 심고 물이나 주면 끝나려나 했는데 토마토는 의외로 신경 써줘야 할 일들이 소소히 많았던 모양이다. 꽃이 지고 가지 끝에 봉긋하게 열매는 맺혔는데 열매가 자라지도 않고 그대로 있던 이유가 무수히 뻗어있던 이 곁가지 때문이었다. 열매까지 영양분이 가지 않아서 자라지를 않았던 거다.
적절하게 곁가지를 잘라주면 작물의 에너지가 주요 부분으로 집중돼 결과적으로 수확량이 늘어나고, 품질도 향상되고, 또 작물이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게 되면 더 많은 햇빛과 공기를 받을 수 있으며, 통풍도 잘 돼 병충해에도 강해진다고 하니 곁가지 치기는 토마토 열매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참, 토마토 키우는 방법이 어쩜 이렇게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들과 똑같이 닮았을까.
오롯이 햇빛만 쪼이며 물을 듬뿍 먹고 자라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고 토실토실 봉긋하게 자라는 토마토 열매처럼, 알이 굵은 인생의 열매들을 굵직굵직하게 맺으려면 열매옆에 무수하게 웃자란 곁가지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라는 가지를, 때때로 불쑥 올라오는 근심과 절망의 곁가지를, 잘 안될 거라는 낙심과 부정적인 마음의 곁가지들을 과감하게 쳐내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의 열매에 긍정적인 영양분이 간다. 병마에도 더 강해지고 세상 풍파에도 이겨낼 힘이 생기게 된다.
빨갛게 익은 토마토 열매를 위해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싱싱한 열매를 따기 어려웠을 거다. 토마토 열매는 그냥 그대로 자라지 못하고 풋내만 내면서 썩어갔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열매를 맺기 위해 더 키우고 자라게 만들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토마토 작물하나를 키웠을 뿐인데 삶의 엄청난 성찰을 얻고, 인생의 관통하는 지혜를 꿰찬 느낌이 든다.
시인 서정주의 '국화'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고, 천둥도 먹구름 속에서 울었다는데, 나의 빨간 토마토는 내 인생의 곁가지를 쳐내고 인생의 열매에만 오롯이 집중하라고 오히려 '나'를 키웠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