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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바다 Mar 29. 2023

 선암사   선암매   이야기(3)

봄날  나의  버킷리스트(1)

   

선암사 전경
선암사 가람 배치도


   찬란한 봄날 3월에 간절한 3개의 버킷 리스트가 남아 있었다. 3일의 시간이 주어 졌다. 324(), 25(), 26().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아껴 써야 한다. 첫날은 선암사(仙巖寺)의 선암매. 둘째 날은 섬진강의 벚꽃. 셋째 날은 순천만 와온의 석양. 이것이 나의 봄날 33개의 버킷 리스트다.      

일주문


324(, 흐림/, 첫째 날)     

   선암사의 선암매가 간절히 보고 싶었다. 선암사와의 인연은 이미 두 차례 브런치에 글로 남겼다. 대학 시절 선암매 매실을 따고 있는 스님을 만난 이야기(선암사의 선암매, 2021.10.24.) 그리고 옆지기와 인연을 맺어준 군대 시절 선배 이야기(선암사 여행, 2022.07.09.).     

 

   단, 손 2호가 아침 9시 유치원 버스를 무사히 타고 떠나야 한다. 개구쟁이가 금년 2월에 집 바로 앞의 어린이집을 졸업하였다. 한때 어린이집에서 형님이 되었다고 어깨를 으쓱하고 다녔다.


   3월에 약 1km 거리의 유치원에 입학하였다. 상급 학교인 유치원으로 진학하여 적을 옮겨 보니 그곳에서는 막내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웠었는가 보다. 첫 등원 후 3일 만에 등교 거부를 하였다. 도보 20분 거리의 유치원에 버스를 태워 보내는 매일매일이 조마조마한 긴장된 주요 일과가 되었다. 유치원 버스만 눈앞에 나타나면 안 타겠다고 울며불며 대 소란이 벌어졌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무섭다고 했다. 2주간은 유모차에 태워 유치원으로 출퇴근하였다. 마침 담임 선생님과 면담시간이 있어 자초지종 상의를 드렸다. 버스기사님의 과도한 관심과 큰 목소리는 거부반응을 일으키니, 부드럽게 대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드렸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따라 녀석이 자원해서 6명이 긴 줄을 만든 끄트머리에 섰다. 학부모 포함해서 12명이다. 게다가 두 발로 버스 탑승 발판을 차례차례 밟고 올라갔다. 고맙다! 손 2호! 야호! 마침내 나의 자유 여행이 시작되었다. 가방을 둘러매고 고속버스 터미널을 향해 이동하면서 버스예약 앱을 열고 시간을 출발 예약 시간을 17:00에서 10:10으로 변경하고 신속히 터미널로 이동했다. 만약의 경우 등원거부등 돌출상황을 대비하여 오후 시간에 예약을 걸어 두었던 것이다. 14:00 순천 도착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봄이 더욱 진하게 눈에 보였다. 들판이 연한 초록으로 변하고 있었고, 가로수도 옅은 초록색 움을 틔우고 있었다. 농부들의 일손이 바빠지고 있었다.      


   날씨가 점점 흐려졌다. 순천 시내로 접어들 무렵에는 벚꽃이 만개하여 동천강변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비가 버스 창문을 두드렸다. 선암매가 걱정이 되었다. 311일경 브런치 작가님이 방문하셨는데 아직 못다 핀 꽃봉오리가 반겨주고 있다는 글을 올려 주셨다. 인터넷에서 선암사 스님이 전해 주었다는 “319일이 만개가 될 것이니 어서 오시오란 뉴스가 있었다. 벌써 5일이 지난 시점이다. 더구나 비까지 왔으니. 봄날의 꽃구경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열흘 붉은 꽃은 없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매표소 입구 / 진입로

   순천 터미널에서 내려 시내 승강장에서 1번 버스를 기다렸다. 1시간에 1대 정도 오는 노선버스다. 봄비가 제법 내렸다. 우산을 샀다. 정류장의 버스 도착예정 정보 판에는 1번 버스에 대한 현재 위치정보가 뜨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급히 택시를 타고(27,680) 15:00경 선암사입구 주차장에 내렸다. 조계산의 동쪽이라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일몰 시간은 18:45. 오늘을 놓치면 내일은 비 온 후라 선암매가 다 지고 말 것 같았다. 도착까지 약 5시간 걸렸다. 비가 추적추적 계속 내렸다. 일주문까지 비포장 도로여서 흙탕물이 곳곳에 고여 있었다. 등에 진 백 팩, 바짓가랑이와 우산을 든 오른팔 소매도 비에 젖었다.   

   

선암매

   마침내 선암매가 있는 각황전 옆 돌담길에 접어들었을 때는 담장 위 기왓장에 비에 젖은 채로 선암매 잎들이 드러누워 있었다. 나의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듯 몇몇 가지에는 그래도 선암매가 버티며 비를 견디어 내고 있었다. 만개 소식으로부터 5일 후에 선암매 꽃 축제가 벌써 끝난 것이었다. 그래도 기왓장 위의 선암매를 본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선암사의 4가지는 반드시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승선교, 선암매 그리고 측간이다. 그리고 타북 타종행사를 보는 것이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버스정류장과 경내에는 비옷을 입고 혹은 우산을 쓰고 관광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선암사仙巖寺)는 조계산(888m) 동쪽 전남 순천시 승주읍에 있다. 사찰 서쪽에 신선(神仙)이 바둑을 두던 평평한 바위(, 장군봉 배바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 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려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이후 여러 번의 전쟁과 화재로 피폐해졌으나 그때마다 재건되었다. 특히 화재 피해가 많았다. 화재 예방을 위해 전각 곳곳에 자나 자가 새겨져 있다.      


   선암사(仙巖寺) 선암매(仙巖梅)가 유명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무우전(無憂殿) 돌담가의 600년 넘는 고매화(古梅花)는 특별히 선암매(仙巖梅)라고 부른다.

승탑군(왼쪽에서 3번 째가  상월 스님 승탑, 강원 방향임)

승탑군(僧塔群)

   매표소에서부터 약 1.5km쯤 승탑군에서 유독 한 비석이 각도를 달리하여 비뚤어지게 서 있다. 제자들이 배웠던 장소 강원(講院)을 향해 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19세기 큰스님 상월스님 것인데 제자들이 그 스님을 너무나 존경했다고 한다.      

돌 장승

장승

   전번에 방문했을 때 밤나무로 만든 것으로 두 장승이 있었는데 오랜 풍상 세월을 못 견디고, 철거되고 없어졌다. 현재는 돌로 만든 새로운 장승이 서있다.     

승선교

승선교(昇仙橋)

   승선교(길이 14m, 높이 7m, 너비 3.5m)는 계곡에 걸쳐진 무지개다리다. 자연암반 위에 곡선형 반원 홍예(虹預)를 세워 물에 비치면 완전한 원형이 된다. 그 원형을 통하여 사찰 방향에 강선루(降仙樓)가 보인다. 개울에서 위로 쳐다보면 용두(龍頭)가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절을 지키는 용이라고 한다. 그용이 엽전 3개를 물고 있다. 비가 와 바닥이 미끄러웠지만 집중해서 바닥으로 내려가 사진을 남겼다.     


   다리를 완성하고 나서 축조비용을 정산하여 보니, 그 나머지가 딱 엽전 3개였다고 전하여진다. 선암사를 중건할 때 원통전과 동시에 축조했다고 한다.     

 

   전설은 이렇다. 숙종 24(1698)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간절히 보기 바라며 배바위에서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어 낙심하였다. 배바위 벼랑에서 몸을 던졌다.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보자기로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승선교를 세웠고 원통전을 고쳐지었다고 한다.

 

강선루

강선루(降仙樓)

   승선교에서 강선루가 보인다. 선녀가 내려왔다는 누각이다. 누각 바로 밑에 선원교(仙源橋)가 있다. 상부의 선암매 옆 계곡물이 흘러 내려와 강선루 밑의 선원교를 통과한다.     

 

삼인당

삼인당(三印塘)

   전통 찻집 앞에 삼인당이라는 타원형 연못이 있다. 전에는 하마비가 보였었는데, 이번에는 찾지 못하였다.   

  

일주문

일주문(一柱門)

   曹溪山 仙巖寺이라는 현판이 있다. 일주문 올라가기 직전 우측에 속이 빈 햇수를 알 수 없는 고목 2그루가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비를 맞으며 중생들을 반기며 서 있다.      

고목

만세루(萬世樓)

   만세루 위치는 일주문과 범종루를 지나면 나온다. 만세루는 총림에서 학승들에게 강학을 하는 곳이다.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선암사의 주불전으로 고려시대 의천에 의해 중창된 후 조선시대 정유재란으로 불탔다. 1660(현종 1)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 후 1766(영조 42)에 다시 불탔다. 1824(순조 24)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현판은 순조의 장인 김조순의 글씨라고 한다.   

   

설선당

심검당(尋劍堂)과 설선당(說禪堂)

   심검당과 설선당은 대웅전을 바라보아 오른쪽(동쪽)에는 심검당이, 왼쪽(서쪽)에는 설선당이 대칭으로 마주 보고 있다. 여러 번 화재를 겪은 선암사는 경내에 석등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곳곳에 연등이 걸려 있지만 전등은 설치되어있지 않다. 선암사 스님이 나와 백년지기를 함께 데리고 들어간 장소가 설선당으로 짐작된다.     

동탑 / 심검당

삼층석탑(三層石塔)

   동. 서 삼층석탑은 만세루와 대웅전 사이의 넓은 뜰 중정(中庭)에는 같은 모양의 석탑 2기가 동, 서로 나란히 서 있다.   

  

원통전(圓通殿)

   원통전은 대웅전 뒤편에 있다. 후사가 없던 정조를 위하여 선암사 눌암 스님이 100일 기도를 했다. 그 후 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훗날 순조가 하사했다는 '대복전(大福殿)' 현판이 내진에 걸려있다.  

선암매 (홍매화)
선암매(백매화)

선암사(仙巖寺) 선암매(仙巖梅)

   선암매에는 백매화와 홍매화가 있다.      


   원통전과 선원 영역 사이에 커다란 고목(古木)'천연기념물 제488호 선암사 선암매'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중 생육상태가 가장 좋다고 한다. 백매화이다.      


   홍매화는 각황전 옆 돌담길을 따라 늘어선 50여 그루가 그것이다. 물론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 스님이 항상 생각나는 장소다. 40년 전 일이다. 돌담길 좌측 매실을 대나무 장대로 툭툭 털고 계셨다. 살구 한 알을 달라고 요청하였더니, 아무 말씀도 없이 몇 개를 덥석 집어 주셨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따라오라고 하셨다. 설선당(說禪堂)으로 안내되어 나도 모르게 무릎을 굻은 채 설법을 들었다.  


   한갓 그냥 스쳐 지나가는 젊은 연인들에게 각별히 중생시절의 아픔을 이야기하여 주셨다. 나의 인생에 큰 가르침을 주셨던 분이다.  스님이셨지만 선비의 품격과 포용력을 보여 주셨던 분이다. 내가 불원천리(不遠千里) 길을 달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선암매 길을 위로 좀 더 올라가면 작은 개울 건너에 정유재란으로 불탄 선암사를 약휴대사가 재건하였다는 선암사 중수비가 나온다. 조금 더 오르면 운수암이 있다.      

무우전 / 선암매

무우전(無憂殿)

   선암매 초입에 있다. 근심()이 없다()는 곳이다. 은퇴하신 스님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태고종 종정이 계신다고 '한국불교 태고종 宗正院(종정원)' 현판이 걸려 있다. 문안으로 들어가 담장밖의 선암매를 보고 있는데 어느 스님이 마루로 나오셨다. 수행에 방해가 될까 봐 얼른 문 밖으로 나왔다.

석정
등 굽은 소나무 / 홍매화



석정(石井)

   돌우물이라고 하는데 야생차밭 물을 끌어들여 나무에 골을 파서 연결하여 처음은 크고 높은 네모난 석정에, 조금씩 낮아지고 작아지는 둥근 모양의 석정을 거쳐 흐른다. 등 굽은 소나무 고송과 조그마한 사각형 연못 그리고 그 밑에 해우소가 있다.      

선암사 해우소

선암사 해우소(仙巖寺 解憂所)     

   나무로 만든 큰 화장실이다. 중생들에게 번뇌 근심 걱정거리를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라는 의미다. 화장실의 옛말 뒷간의 고어가 우에서 좌로 씌어있다. 내부가 궁금한 분들 위해 해우소안을 공개한다. 가족 여행객인 듯 한 일행 중 한 남자분이 남녀 화장실이 마주 보고 일을 보게 되어 있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고 있었다. 평행선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일을 보시라.  해우소 뒷면이 궁금하여 내려가 둘러보았다. 2층 목조 건물이고, 청소를 위하여 문이 열려 있었다.    


   해우소는 정호승시인의 시로 유명하다. 입구의 뒷깐 팻말을 통과하면 우측 벽면 머리 높이에서 시가  중생들을 반기고 있다. 


    해우소에 앉아 있으면, 순천역의 기차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저녁 무렵 스님의 목어, 북과 타종 소리가 들린다. 등 굽은 소나무가 해우소를 내려다보고 있다. 속세에서 받은 상처를 꽃과 풀잎과 새들이 안아주고 위로해 준다.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

선암사(仙巖寺)

정호승 시인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범종각 / 범종루

범종루(梵鐘樓)

   범종루는 일주문을 지나 높직한 계단 위에 서 있다. 선암사는 화재를 멀리 하고 싶어 한다. 2단으로 아래층은 가운데를 비워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타북 타종 행사


   위층은 누마루를 깔아 범종과 목어, 법고, 운판 등 불구 4 물(佛具四物)을 설치하였다. 예불 때 치는 범종은 우측에 별도 다른 건물 안에 있다. 오후 6시에 예불의식이 진행되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지상에서 스님들의 합장이 끝나고 타북 장소 2층 계단으로 이동하였다. 두 분이 북 양쪽에 서서 교대로 타북한다.  타북과 타종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스님들 타북팀과 타종팀 두 팀의 일종의 하모니 종합 예술이다. 타북 행사가 완전히 끝나면 타종행사가 이어 진다. 스님 네 분이 한 팀을 이루고 정성을 다해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긴 여운이 선암사 경내를 가득 채운다.  중생들의 배팔번뇌를 없앤다는 의미라고 한다. 경건한 마음이 든다.   

   

선암사 선암매

   북소리와 타종소리는 선암사를 자주 찾는 또 다른 이유다. 비가 점점 세게 간이 우산을 쓴 탓에 백 팩은 온통 비에 젖었다. 오후 6시에 시작된 타종행사가 끝나고 버스 주차장에 내려왔을 때 한기마저 느꼈다. 어둠이 짙어지고 나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오후 735분 버스를 타고 순천 아지트에 도착했다.    



선암매

글이 길어져 다음날 섬진강 벚꽃 구경과 와온 일몰 이야기는 다음 편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선암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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