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뿔 달린 도깨비 형상을 하고 있었다. 십리 밖 비슬산 (해발 1,083.4m)에는 산불이 밤하늘 아래 붉은 띠를 이루며 산 정상을 향하여 바람을 따라 서서히 이동하고 있었다. 봄비라도 오지 않는 한 그 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거대한 괴 생명체, 쇠붙이를 먹으면서 몸이 점점 커지는 전설의 불가살이였다.
그 불은 어떤 나무꾼이 담배 피우고 난 후 버린 담배꽁초에서 발화되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산 정상에 핀 진달래를 보러 온 구경꾼들이 밥해 먹다가 불을 냈다는 이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무장 공비 소탕 작전이 벌어진 와중에 어느 쪽인지 섬광 탄을 쏴서 그 섬광 탄에서 발화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동족상잔 6.25 휴전 얼마 후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조르는 어린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큰 산이 주무대인 청도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호랑이가 등장할 정도로 높고 깊은 큰 산이었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말이다. 큰 산 산꼴짝 외딴집에 엄마와 장성한 외아들이 함께 살고 있었단다. 약초 캐러 간 아부지는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행방불명이 되었단다. 큰 산 청도 근처에 호랑이란 놈이 살았는데, 아마 그놈 짓이었을지 몰라. 그런데, 그놈이 어느 날 엄마마저 잡아갔지. 아들은 복수하려고, 쌀밥을 져서 말린 고두밥을 광목으로 싸, 어깨에 두르고 챙겨 먹으면서 단단한 참나무 방방이를 들고 호랑이를 찾으려 나섰지. 어느 날 대나무 숲 속에 잠자고 누워 있는 배부른 호랑이를 발견했지. 살금살금 다가가서 살펴보았더니, 아 글쎄 그놈 옆에 여자들 머리에 꽂는 은 비녀와 피 묻은 옷가지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겠어. 그 은 비녀가 엄마 것이었지. 아들은 있는 힘을 다해 잠자고 있는 호랑이 머리를 참나무 방망이로 내려쳤지. 그 한 방으로 집채만 한호랑이가 죽은 거야. 부모님 복수를 한 것이었어"
웃을 때 항상 윗니 금빛 치아를 활짝 더러 내 보이는 신혼초의 이웃집 아저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아저씨는 대여섯 살 어린 꼬마인 나에게 짚으로 삼은 장난감 같은 예쁜 짚신을 선물로 주었다. 아마도 새로 태어날 자신의 어린 생명에게 지어줄 실재 작품의 습작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짚신이 좋아 바닥이 닿도록 신고 다녔다. 아저씨는 농한기 겨울밤에는 봄날 농사철에 사용할 새끼를 꼬았다. 깜빡이는 호롱불 아래 새색시와 함께 나무로 만든 가마니 틀에 새끼줄을 걸어 놓고짚으로 가마니를 짰다.
개울에 올챙이 알이 엉켜 있고, 개구리가 울기 시작하던 어느 날이었다. 달콤한 신혼 재미에 미처 신경을 못 쓴 것인지 키가 작은 예쁜신혼 댁은 우리 집에 김치를 얻으려 왔다. 시댁과 친정이 이웃동네여서, 미처 가지러 갈 시간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땔감 나무도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 당시 연탄은 너무 비싸서 도회지 부잣집에서나 떼고, 시골에서 사용할 엄두를 못 내었다.
6.25 직후라 산에는 큰 나무는 전투와중에 불타 없어졌다. 그나마 살아남은 키 작은 나무들은낫이나 톱으로 베어 냈다. 썩은 가지나 낙엽은 갈쿠리로 달달 끌어 모아 피난민, 주민들이 밥 짓거나 소죽 끓이는 땔깜으로 사용했다. 동네 근처 야산에는 땔깜이 남아나질 않았다. 소나무 밑에 있는 마른 솔잎은 연기가 별로 나지 않고 불 소시개로 인기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른 솔잎을 갈쿠리로 빡빡 끍어 가져가서 소나무 밑은 땅바닥이 다 드러나 보였다. 더구나 동네 개구쟁이들이 전쟁놀이, 숨바꼭질 등으로 뛰어놀아 반질반질하였다.
불가살 괴불은 보름 넘게 밤을 밝히다가 점점 확산되어 옆산으로 번지고 산봉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땔감이 바닥날 즈음 드디어 옆집 아저씨가 또래 동네 젊은 친구들과 세명이 십리 밖 큰 산에 나무하러 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즉, 그날은 육중한 근육의 진가를 선보이는 힘이 넘치는 나무꾼이 되는 것이다. 육각기둥 모양의 뚜껑 있는 커다란 대나무 도시락에 밥이 가득 담기고(고봉 밥그릇 3개 분량), 삶은 계란, 간장 종지, 김치, 파전 등이 들어갔다. 아저씨가 좋아하는 막걸리도 한통 덤으로 지게에 걸렸다. 십리 길 먼 거리라 새벽 일찍 출발했는데, 준비물은 지게, 작대기, 쌔끼줄, 단 한 번에 나뭇가지를 칠 수 있는 며칠을 틈틈이 숫돌에 벼론 날카로운 조선낫이었다. 그리고 새댁이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든 대나무 도시락 속의 점심과그날의 화룡점정 막걸리였다. 빛바랜 군용 방한모에 광은 고사하고 모피 가죽 색깔이 드러난 너덜너덜한 오래된 군화를 신었지만, 아저씨는 당당해 보였다.
옆집 새댁은 남편을 보내면서 신신당부하였다. 산불이 있는 근처에는 얼씨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무꾼들은 주로 큰 산의 석새미 골짜기에서 나무를 하였다. 산주인은 있었겠지만 워낙 큰 산이고 범위가 넓어 통제가 안되었는지 모두 그산으로 나무하러 갔다. 두세 시간만 일하면 뚝딱 지게 한 짐을 꾸릴 수 있었다. 나머지 시간은 덤, 자유시간으로 점심을 편히 먹을 수 있었다.
청정지역 골짜기 계곡 물속에는 호박돌을 들추면 참가재가 바글바글하였다. 한 시간쯤이면 대나무 도시락 바구니에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식구들에게 자랑하며,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 귀가할 수 있었다. 숯불에 구운 빨갛게 익은 참가재는 고소해서 별미였다. 당시에는 먹을게 별로 없었다.
더구나 어린 나의 기준으로 보면, 집채만 한 나뭇짐에 짙은 분홍색의 진달래꽃을단 가지가 여기저기 꽂혀 있었다. 나무꾼이 걸어올 때면 멋지게 장식한 진달래 꽃이 너울너울 춤추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마을의 어느 누가 큰 산에 나무하러 갔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진달래 꽃 볼 요량으로 해 질 무렵부터는 할일없이 마을 어귀 개천의 나무다리까지 왔다 갔다 했다. 나뭇짐의 주인공은 단연 진달래 꽃이었다. 봄이 춤춘다고 할까.
그런데, 통상 어둠이 깔리는 해그름 무렵이면 나무꾼들이 귀가할 시간인데, 마을을 대표하는 건장한 일꾼 셋이 나타날 기색이 없었다. 아침부터 강한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빨랫줄에 늘어놓은 남편의 유일한 외출복 한복 윗 저고리가 마당에 굴러 떨어져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새댁은 점점 불안해졌다. 큰 산의 불은 아침에는 연기만 뭉게뭉게 피어올랐지만, 점심 무렵부터 점점 무서운 기세로 활활 타며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믐날 밤이라 어둠은 짙어지고, 산불은 광풍을 타고 괴물처럼 맹렬히 큰 산을 삼키고 있었다. 더구나 강한 바람이 불어 일부는 청도 고개를 넘어 진격하고 있었다. 불난 근처 몇몇 외딴집 화전민들이 6.25 이후 두 번째 피난을 하고 있었다.
안절부절 새댁은 어머니에게 호롱불을 들고 마중을 나가야겠다고 우리 집에 불 밝힐 석유를 얻으려 왔다. 어머니는 이 밤중에 새댁이 어딜 혼자 가느냐며,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장정이 세명이나 있는데, 무슨 일이야 일어나겠느냐고 토닥여 주었다. 모두가 가난하여 연락수단으로 자전거도 없었던 시골이었다. 인편(사람이 직접 가서 전함)이 전부였던 시절이라 인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새댁은 호야불(호롱불의 일종으로 하부에는 둥근 양철판 통에 석유를 담고, 심지를 올려, 불이 쉽게 꺼지지 않게 얇은 통유리로 두른 이동 가능한 옥외 등불)을 들었다. 몇몇은 짚단이오래 타도록 대여섯 군데 볏짚 몇 가닥으로 묶었다. 끝자락에 불을 붙여 횃불을 들었다. 캄캄한 그믐밤에 횃불 행진이 비포장 도로 위에 펼쳐졌다. 나는 그 당시 사고뭉치로 개천의 나무다리 아래로 거꾸로 떨어져 머리가 깨져 된장을 붙이고 다녔다. 장난꾸러기 열혈 아동도 당연 합세하였다.
자갈이 발끝에 차이는, 칠흑 같은 밤길을 걸어가면서 고함을 쳐 보았지만 나무꾼들의 메아리가 없었다. 이웃 마을의 야산 중턱을 돌아갔을 때, 애타게 찾던 나무꾼들인지 누군지 멀리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점점 가까워졌다. 서로에게 반가웠다. 특히 새댁은 "와이래 늦었노?" 울음 섞인 질책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어? 그런데, 나무꾼들 지게에 나무가 얹혀 있지 않았다. 빈 지게였다. 아버지가 "우에 된 기고?" 묻자, 자초지종 설명하였다. 나무꾼들이 불난 능선 한참 아래에서 나무를 한 짐 가득 지게에 꾸리고, 휴식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계곡에 미친 광풍이 불었다. 불똥이 산 전체로 여기저기 옮겨 붙고 불꽃이 튀기 시작하였다. 워낙 강풍이라 계곡 전체가 화마에 갑자기 휩쓸리기 시작하자, 불길과 매연으로 앞이 안 보였다. 그래서 나무 짐을 다음에 가져갈 요량으로 계곡물에 쳐 넣어 놓고, 빈 지게를 지고 죽자 살자 뛰어 내려와 탈출했다고 했다. 나무꾼들 몸에서 불화근내가 코를 찔렀다.
내려오다가 보니, 화전민 외딴집 근처에 까지 불길이 번져, 그 집 중년 부부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팔순부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청년들이 지게에다 지고 모셔서 저수지 옆 평촌 마을에 내려 드리고 왔다고 했다. 아들은 "우리 할아버지가 지은 집인데 홀랑 다 태우고 족보도 못 건지고 몸만 빠져나왔습니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 심더"라고 울먹였다고 했다.
아버지 말씀 " 그래 잘했다. 이 세상에 사람 목심보다 귀중한 것이 어데 있겠나?"
오늘이 절기상 3월 5일 경칩, 개구리가 땅속에서 나온다는 날이다. 봄이 오고 있다. 벌써 너울너울 춘추던 선분홍 빛 진달래가 기다려진다. 그리고 그리워지는 얼굴들이 점점 많아진다. 되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날들도 더욱 많이 쌓여 간다.
어릴 적 봄이면 연래 행사처럼 늘 큰 산에 산불이 나서 몇 날 며칠 타고 또 탔던 기억이 났다. 그 당시에는 소방장비가 없어서 자연 진화되도록 몇 날 며칠이고 기다려야만 했다.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등장하신 분들 중 부모님은 벌써 오래전 하늘나라로 올라가셨고, 나도 어느덧 땅에 떨어진 눈에 비에 젖은 낙엽 나이가 되었다.
큰 산에 매년 그렇게 거대한 산불이 났었어도, 선분홍 진달래는 군락을 지어 끈질긴 생명력으로 세대 이음을 하고, 배달의 진달래, 봄의 축제를 이어 오고 있다.
나에게 귀중한 짚신을 선물로 주신 스마일 옆집 아저씨, 진달래를 기다리던 수줍던 예쁜 그 새댁, 나무꾼 청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현재 전국 각 지역 산불로 고통받는 이웃들이 너무 많아 가슴 아픕니다. 폭우라도 어서 쏟아져 불길이 잡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20220305)
■ 봄 산불이 마침내 진화되었습니다. 헌신적 사투를 벌이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피해자분들 하루빨리 회복하시고, 관계 당국은 전폭적인 지원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220313)
《2022년 3월 3일~3월 13일( 213시간) 산림·소방 당국이 울진·삼척 산불 진화를 위해 ‘사투’를 벌인 시간이다. 국내 발생 산불 중 최장 기록이다. 울진·삼척, 강릉·동해, 영월 등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한 산불로 타 버린 산림의 면적은 2만 5003㏊에 이른다. 이 또한 최대 피해 규모로 기록됐다.》
■ 내용중 큰 산을 비슬산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비슬산을 큰 산으로 부릅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산이지요. 큰 산은 언제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라잡고 있습니다. (2022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