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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바다 Jan 10. 2023

선비  김굉필의  도동  서원  

고향   이야기(1)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에 눈이 많이 왔다. 일주일간의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방송에서는 대설 주의보를 발표하고 있었다. 폭설로 차량 접촉사고가 났다고 했다. 고향 대구의 눈길을 밟아보고 싶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짝사랑을 많이 닮았다. 고향 산천은 그대로 인대 방랑자인 나그네만 애걸복걸 애만 태운다. 그 꿈이 깨어지더라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게 일어났다.


   겨울만 되면 고개를 두 개나 넘는 오리(2km) 초등학교 등교 길의 낙동강 북풍 칼바람은 우리들을 시험에 들게 했다.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그날은 동네 친구들과 선생님 없는 야외 자율학습의 날이 되었다. 개구쟁이 친구들과 스스로 과목을 정해서 화목하게 놀다가 수업 끝날 때쯤 집으로 돌아갔다. 그 야외 자율 학습 과목은 여기서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 옛 친구들 명예훼손 혹은 배신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정말 나무에 불을 때면서 화목하게 신나게, 그러나 가슴 조이며 야유했다. 그날들의 엄동설한 땡 추위가 그리워 고향 앞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여수를 꼭 가보고 싶었다.      


   이번 여행 목표는 대구 도동서원, 이노정, 곽재우 장군 묘소, 소래 곽 씨 정려각, 덕골 효자각, 선산 묘소 참배다. 이어서 순천 장모님 뵙고 장인어른 묘소 방문 그리고 여수 여행이다. 


   특히 김굉필 선생은 무오사화로 평안도 희천에서 조선 개혁의 심벌 조광조를 제자로 맞아들여 교육시켰다. 선생 모친의 간곡한 상소로 유배지를 평안도 희천에서 비교적 고향과 가까운 전라도 순천으로 유배지가 변경되었다. 이어진 갑자사화로 변경 유배지 순천 철물시장에서 왕명에 의해 사약을 받아 마시고 절명하셨다. 순천 제자들이 세운 옥천서원에 배향되었다. (순천 옥천서원과 선비 김굉필 참조 :  https://brunch.co.kr/@@8pxb/63)


   크리스마스이브날(2022.12.24, 토) 대구행 새벽 출발 첫 고속버스에 올랐다. 전번 여름 여행 때 지리를 잘 몰라 많이 헤맨 것을 거울삼아 이번 여행에서는 나름 제법 선택을 잘했다.  서대구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해서 만촌역에서 모노레일형 지상 전철을 탔다. 중간에 역 몇 군데 내려서 역구역 내 높은 곳에서 시내구경을 잠깐 했다. 대구에 지하철 노선이 3개가 있다. 명덕역에서 환승하여 진천역에서 지상으로 나왔다. 명덕역(로터리)에는 1960년 2.28 학생의거 기념탑이 있다.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4.19 의거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진천역 주변 일대는 선사시대 고인돌과 원시인 아저씨들이 유명했다. 전봇대를 기어오르는 아저씨, 멧돼지 잡기 위해 돌망치로 내리치는 아저씨들이 도처에 있었다. 선사시대 역사 유적 공원 안내 표지판이 돌망치에 맞아 찌그러져 있었다. 관광객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선사시대 조상님들 (진천역)

   진천역에서 급행 8번 버스를 타고 목적지 면 사무소 앞에 내렸다. 전번여행 때는 완행버스를 탔다.

크리스마스이브 토요일이라 사방이 조용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옛 추억을 되새겼다. 은행나무 밑에는 은행알들이 새알처럼 소복이 쌓여 있다. 놀이터 근처에서 새까만 후배 여학생들 몇 명이 놀고 있었다.  은행 알들에 관심을 갖지 않는 가 보다. 화롯불에 구워 먹으면 얼마나 고소한데.


   눈을 기대했지만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다양한 기후를 가진 나라인데 대한민국을 누가 좁다고 작다고 했는가? 초등학교 시절로 잠시 되돌아갔다. 수업 중인 오전 열 시쯤이었다. 유선방송 팝송을 크게 틀어 놓고 마당의 붉은 고추를 말리던 탱자 울타리 밖 누나가 생각나서 건물 뒤 울타리를 돌아보았다. 탱자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교실과 고추 마당은 20m쯤 되었을 까? 내심 그 누나의 팝송 시간을 기다렸었다. 초가집이 세련된 양옥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 누나는 간데없다. 호호 할머니가 되었을까?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초등학교를 둘러본 후,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택시를 우연히 발견했다. 대화를 하여보니 초등학교 선배님이었다. 택시기사님과 도동서원, 이노정, 곽재우 장군 묘소, 소래 곽 씨 12 정려각, 덕골 효자각, 선산 묘소방문 스케줄을 말씀드리고 출발했다.     

도동서원 전경(출처 : 달성군청)

1) 도동서원 (道東書院)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다.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 황과 함께 동국오현(東國五賢)중 한 분인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년 ~ 1504년 10월 7일)을 모시는 서원이다.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 사액되었는데,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묘소는 서원 담을 왼쪽으로 돌아 800m에 있다. 서원은 2019년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과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는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어 다른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568년(선조 1년) 비슬산 동쪽 기슭에 쌍계서원(雙溪書院)을 세웠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04년(선조 37)에 지금의 자리에 중건하여 보로동 서원(甫老洞書院)이라 불렀다. 1607년(선조 40)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 사액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전국 서원 중 철폐되지 않은 전국 47개 중요서원의 하나였다.     

도동서원 배치도

   낙동강 바로 옆 주차장에 도착하면 우선 거대한 은행나무가 반겨준다. 약간 경사진 소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면 수월루(水月樓)와 환주문(喚主門)이 나온다. 이어 좌 우측에 유생들의 생활하던 기숙사(거의재, 거인재)가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서원의 중심 중정당이란 강당이 나온다. 강당 좌측에는 서적 보관 장판각이 있다.  위로 내삼문을 통과하면 김굉필 선생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이 있다.       


   사당에서 내려와 시계 한시 방향으로 난 사주문을 통과하면 유생들의 음식 빨래 청소를 담당하던 전사청이 ㄷ자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금 더 내려오면 먹거리를 보관하던 곡간채가 나오고 문간채를 통해 6시 방향밖으로 내려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  크게 보면 학문 관련 영역, 제사 영역, 생활 지원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은행나무

은행나무

   서원 입구에 있는 수령(樹齡) 400년 이상 된 은행나무(보호수로 1982년 10월 29일 지정, 높이 25m, 둘레는 어른 여섯이 두 팔 벌려야 안을 수 있음)는 1607년(선조 40)에 안동부사로 재직 중인 김굉필의 외증손이며, 퇴계 이황(李滉) 선생의 고제(高弟)인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도동서원 중건기념으로 식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제(高弟)는 고족제자(高足弟子)의 준말로 ‘학문이나 덕행이 뛰어난 제자’를 일컫는다. 겨울이라 노란 은행잎을 다 떨구고 기둥과 줄기 잔가지만 드러낸 거대한 고목이 누워 쉬고 있었다. 할 일을 다 한 노년의 모습을 닮았다.     

수월루

수월루(水月樓)

   북쪽 낙동강을 바라보며, 유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던 수월루(水月樓)가 전면에 위치한다. 팔작지붕을 한 2층 누각이다.    

 

환주문

환주문(喚主門)

   수월루(水月樓)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환주문(喚主門)이 있다. 수월루가 지어지기 전에는 정문역할을 했다. 좁고 낮은 문, 허리를 숙이고 겸손한 모습으로 들어가는 유생들 모습이 그려졌다. 꼭대기에 작은 항아리는 빗물이 지붕으로 새어드는 것 방지하기 위함이다. 환주문 바닥 중앙에 정지석이 있는데, 잠깐 멈추고 발아래를 보며 숨을 고르라는 의미라고 한다.     

거의재(좌) 거인재(우)

거의재(居義齋, 동쪽)와 거인재(居仁齋, 서쪽)

   각각 동재(東齋, 선배들 사는 곳)와 서재(西齋, 후배 사는 곳)로서, 유생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거의재는 의로움이 사는 재실이란 뜻이고, 거인재는 인자함이 사는 재실이란 뜻이다.    

 

중정당 (좌측 7 계단-전국 유생이 가져옴/ 계단에서 우로 2m 상단에 용머리 / 기둥 상단에 흰 띠)

중정당(中正堂)

   중정당 앞 일곱 돌계단에는 이 서원의 건립과 관련된 특별한 전설이 전해온다. 길재와 김종직에서 조선 성리학의 맥을 이어받은 김굉필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의 유생들이 돌을 하나씩 가지고 와서 돌계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돌계단의 크기 모양 색깔 질이 서로 다른 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빈틈없이 서로 맞물려서 일체가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중정당 정면 기단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4개의 용머리와 다람쥐 모양의 동물이 새겨져 있는데, 용머리는 낙동강물의 범람을 막고 유생들의 과거급제를 바라는 비보(秘寶) 책이라고 한다. 우측에서 2두 번째 용두가 원형 그대로이고 나머지는 소실되어 훗날 새로 제작하였다고 한다.     

 

   중정당(中正堂)은 서원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강학을 하는 강당(講堂) 건물이다.  서원 내의 여러 행사 및 학문의 강론 장소로 사용되었다.      


   기둥의 흰 띠는 5현 중 으뜸이라는 의미로 도동서원에만 있다고 한다. 두 개 편액이 있는데, 검은 편액은 이황의 글씨체에서 뽑아 썼다. 흰색 편액은 선조가 내린 사액 현판으로 문신 배대유의 글씨라고 한다. 비바람 노출 쪽 문은 2 중창이다. 내부 창호지와 외부 판재로 된 문이 비바람을 막게 되어 있다.     

장판각

장판각(藏板閣)

   문집 서적을 펴내거나 보관 장소이다.     

내삼문(중앙문이 신문)

내삼문(內三門)

   사당입구 문이다. 가운데 작은 문은 신문(神門)이라고 해서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한다. 입구의 양두석은 양머리 모양으로 악귀를 쫓는다는 의미로 처용의 탈을 닮았다고 한다. 평소에는 문이 잠겨 있다.

     

사당 (문틈으로 보임)

사당(祠堂)

   강당의 후면 제일 높은 곳에 있다.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전사청 (ㄷ 자 형태)

전사청  

   서원 유생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며, 빨래 청소하는 사람들 기거하던 곳이다. 현재는 서원 관리인이 있다.     

곡간채

곡간채

   먹거리 보관 창고이다.     

문간채

문간채

   유생들을 돕던 사람들의 출입구다.     

유물전시관(추모비 뒤)

유물전시관

담장 (보물 350호)

담장

   지형에 따라 돌을 쌓고, 그 위에 암키와를 놓고, 진흙층을 다져 5층으로 쌓았다. 돌 흙 기와가 조화를 이루어 중정당 사당과 더불어 보물 350호다.     


기타

서원 앞 낙동강 / 주차장에서 본 전경

*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서 다음 편에 이노정, 곽재우 장군 묘소, 소래 곽 씨 12 정려각, 덕골 효자각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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