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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un Jan 04. 2024

쫓는 치타와 달아나는 사슴

성공을 쫓는 8년 차 직장인 J


J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8년 되어 간다.


처음 3년,

하루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까마득하다.

모든 게 처음이던 회사 생활, 다양한 낯선 사람, 처음인 일... 잔뜩 긴장한 날들이었다.

매일 녹초로 퇴근 시간을 보냈다.


적응 못 할 것만 같던 회사도 3년 차 지나니 조금씩 나아졌다.

나이 차 많은 상사와도 잘 지내고, 욕 먹는 횟수가 줄고, 일은 손에 익어 무리 없이 처리하고, 가끔 주도적으로 일해 성과를 내기도 했다.



8년 차! 적응이란 게 된 거 같다.

여전히 출근길은 곤욕이요 퇴근길은 행복이지만, 그냥 그냥 출근 도장을 찍다 보면 월급날이 되고, 매년 연봉도 조금씩 올랐다.

업무 루틴이 익숙해져 그 리듬에 올라탄 일상은 숨 쉴만하다.


12월은 구매팀 J네 부서 업무 비수기이다. 보통 12월은 생산이 많지 않고 긴급 생산도 잘 없다. 생산이 적으니, 구매 업무도 자연히 줄고.

11월에 한해 업무를 정리하고 내년 업무 계획도 마쳐놓아 비교적 여유 있는 시기이다.


12월 둘째 주 금요일, 자신에게 여유를 선물하고 싶어 오후 반차를 냈다.

추운 날 밖에서 서성이는 것도, 지인들과 송년회로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싫어 곧장 집으로 왔다.


따뜻한 집 소파에 누워 TV 보는 게 더 좋다.

“막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에 집이라니? 이 시간에 TV를 보다니?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 이런 게 행복이지, 별 거 있겠어!"

혼잣말에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는데, 지상파 채널이 ‘동물의 왕국’을 송출하고 있다.


사냥 가는 치타와 도망가는 사슴이 보인다. 문득 J는 궁금해졌다.

'나는 살려고 쫓아가는 치타일까, 살려고 달아나는 사슴일까?'

화면 속 두 동물은 생명을 유지하려는 목적은 같지만, 행위는 정반대이다.

'나의 직장생활은 성공을 쫓아가는 중일까, 살아남으려 애쓰는 중일까?'

J는 궁금해졌다.


치타가 사슴 엉덩이를 무는 장면이 나오자, J는 채널을 옮긴다.


이미지 출처 : 미기팬클럽 카페


이번에는 원시 부족을 촬영한 케이블 채널의 다큐멘터리에 멈췄다. 저 사람들은 무얼 먹으며 어떻게 음식을 획득하는지 궁금하다. 주변 나무에서 열매를 채취하거나, 근처 냇가에서 창과 망을 던져 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나가고 있다.

‘그렇지. 쟤네는 낚시와 수렵으로 먹을 걸 구해 살지. 저게 생계유지를 위한 생산활동이었지. 나는 회사에 출근하고 일해 돈 벌어 사는 거고. 직장생활이 나의 생산활동이구나.’


현대 문명의 J에게 넉넉하지 않은 음식, 비위생적인 조리 과정과 식사 환경이 눈에 든다. 하지만 식사하는 그들 표정은 미소로 가득하다.

이미지 출처 : 태어난김에세계일주 시즌3, 태계일주 팝업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J는 소파에서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갔다, 자신의 표정을 보려고.

심각한 표정에 생기를 잃은 눈빛.

"이게 내 모습이라고?"

이미지 출처: 피곤에 찌든 오뉴님 : 네이버 카페 (naver.com)



소위 말하는 "성공"을 쫓기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지만, 꿈꾸던 성공은 여전히 저 먼 어느 곳, 안갯속을 헤매는 거 같다.

J는 성공의 끝에 도달한 자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때 원시 부족 사람들처럼 맑은 미소를 짓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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