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는 센서 모듈 개발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모듈 그룹은 직접적인 매출로 성과를 내기보다는 센서 컴포넌트 지원 업무가 주이다. 컴포넌트 테스트 모듈 제작과 고객 검증용 시료 대응처럼 센서 매출을 도와주는 게 주요 일이다.
오래간만에 H는 옆 부서 김과장이 정대리와 커피 한잔하자 하여 1층 커피숍으로 가고 있다. 이들을 만나 이런저런 회사 소식과 ‘카더라’ 소문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지. H는 늘 한 발짝 늦게 소문과 소식을 접하는 1인이다. 회사 일에 매몰돼 지내니 세상 돌아가는 건 둘째 치고, 바로 눈앞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제대로 알기 힘들다.
오늘 셋의 대화는 새로운 조직이 생길 거라는 정대리가 던진 소문에서 시작한다.
“모듈팀이 컴포넌트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 생긴다고? 아니 왜?”
처음 듣는 얘기에 H의 말끝이 한껏 올라간다. 이 변화는 H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니.
회사 소문이라는 소문은 다 물고 다니는 정대리가 말을 잇는다.
“음 선배, 두 가지 이유가 있대요. 하나는 영업 최상무가 상무 7년 차잖아요. 그동안 실적이 계속 애매해 승진도 못 시키고 자르지도 못했잖아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실적 만들 기회를 준다는 얘기가 있어요. 이번에 못 하면 껚이죠.”
“그럴듯한데~. 이런 얘기는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건지 신기하다야. 또 다른 이유는 뭐래?”
따뜻한 커피만 훌쩍이던 김과장이 끼어든다.
“다른 건 머 심플해요. 모듈 팀 매출이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올랐잖아요. 좀 더 본격적으로 사업해서 규모를 키우겠다는 거죠. 경쟁사 A, B 모두 모듈 매출이 컴포넌트보다 많잖아요.”
“맞아, 회사가 생긴 것도 심플하지. Long long time ago, 소소하게 물건 만들다 실력이 좋아져 많이 만들어졌고, 이걸 시장에 내다 팔고, 규모가 점점 커진 게 기업의 시작 아니겠니? 돈이 있는 곳에 기업이 있는 거지. 아니, 기업이 있는 데 돈이 있는 건가? 아무튼.”
이 얘기가 오간 2주 뒤, 게시판에 새 조직 발표가 떠, H는 새 모듈 팀으로 발령 났다. 소문대로 최상무가 맡았고. 지원 업무로 조금씩 제공하던 샘플을 일부 고객사에서 돈 주고 사 가기 시작하며 매출이 생겼고, 규모가 조금씩 조금씩 커지더니 별도 팀으로 독립한 거다. 이렇게 새 조직이 생겼다.
H는 좋으면서 부담이다. 자신이 속한 모듈팀 일을 회사에서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기쁜 반면, 곧 과장 승진을 앞두고 있는데 새 조직에서 과연 평가를 잘 받을지 걱정이다. 또, 그동안 컴포넌트 뒤에 숨어 쉽게 갔는데, 이제 정면으로 바람에 맞서야 하니 두려운 마음이 든다. 잘하지 못하면 금세 또 정리하는 게 회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