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도 독서니까 괜찮아
딸에게, 그리고 나에게
소설가 김훈 작가님이 딱밤을 한 대 때린 줄 알았다. 김훈 산문집 ‘연필로 쓰기(문학동네)’를 읽다가 눈이 멈춘 부분은 75페이지였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 대며 중언부언하는 자들을 멀리하려 한다.’
나는 읽은 책을 인용하며 적당히 작가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무임승차하는 것이 설득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 설득 기법이 난폭한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아 급한 마음에 병렬독서까지 하며 문장 필사에 속도를 올리던 나는 딸의 독서목록을 슬쩍 봤다. 작전이 필요했다. 많은 양의 책을 읽고는 있는데, 도대체 얼마나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는 독서목록이었다. 국어문제집을 사주며 무조건 하루에 한 장씩 풀게 하고 채점하는 방법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하지만 지속성을 위해서는 마땅한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할머니 선배님이 오셔서 따뜻한 강연을 해주셨다. 수업 대신 강연이라니 신이 나서 강당으로 전력질주 했고, 에너지 방전으로 내내 졸다가 강연은 끝이 났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선배님은 박완서 작가님이셨다. 그날 나의 졸음은 무지하게 후졌다. 그날의 무지함이 얼마나 멋없고 누추하게까지 느껴지는지 꽤 오랫동안 나를 들볶았다.
지난여름 신형철 평론가의 유료강연 신청을 해놓고, 그분의 칼럼과 저서, 인터뷰 영상까지 찾아보았다. 박완서 작가님을 못 알아본 10대의 내가 몸서리치게 싫었으니, 더욱 예습에 열을 올렸다. 평론가님의 별명이 ‘서울대 김동률’이라는 정보까지 알아냈으니 강연 내내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며 손목에 힘을 잔뜩 주었다. 덕분에 고전문학을 읽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얻었고, 아홉 살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할 과제가 남아있다. 뜨거웠던 여름은 나의 무지함을 한 꺼풀 벗겨주었다.
이런 무지함이 조금씩 벗겨지면 부작용도 따라온다. 만화 ‘미생’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되니, 윤태호 작가님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얼음이 돼버린다. 그날 내가 마신 얼음 생맥주와 후라이드 치킨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그분의 화장실 가는 순간만을 기다리다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과학콘서트와 열두 발자국을 열심히 읽었더니, 김포공항에서 갈비탕 뚝배기를 비스듬하게 세워 깍두기를 집는 정재승 교수님이 한눈에 보였다. 비행시간이 다가오는 건지, 그날의 첫 끼였었는지 모르지만 뇌과학자의 숟가락은 바빠 보였다. 식사 종료 시점을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뚝배기를 제자리에 놓는 일이 기준이 되는데, 교수님은 거의 뚝배기와 각도를 맞춤과 동시에 의자에서 일어나셨고, 난 인사할 기회를 놓쳤다.
소설가, 평론가, 작가에 대한 나의 발걸음은 왜 항상 한 박자씩 늦는 걸까. 차라리 람보르기니 타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싶다.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쓰는 문장가를 부러워하니 아무 가능성이 없어 괴롭다. 그럴땐 나를 들들 볶는 것을 멈추는 일이 우선이다.
오독도 독서니까 괜찮다는 말을 딸에게 해줘야겠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말을 해줘야겠다. 그냥 읽고 쓰는 순간 자체를 누리고, 즐거워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