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아빠

단상의 아포리즘 16

by 고봉진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


복숭아 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아래 저절로 길이 생긴다.


살면서 실력도 중요하지만

덕이 더 중요하다.


덕이 부족한 사람은

그릇이 작다고밖에 할 수 없다.


덕과 그릇 크기는 비례하지 않을까?


내 그릇이 작아 보인다.




아들과 아빠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정훈이가 옆에 있어 행복하다.

정훈이가 내 친구가 되어 행복하다.

아들로 인한 것은 무엇이든 행복하다.

정훈이로 인해 힘들었던 것도 감사한다.

내 아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일까?

나 때문에 힘들었던 것도 괜찮은 걸까?

구약의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셨는가?

선지자를 보내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때마다 듣지 않았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모두를 믿게 하실 수도 있지 않나?

우리의 운명을 미리 정하신 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나?

왜 믿는 자는 택하고 믿지 않는 자는 택하지 않는 그런 모순에 빠져드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아버지 하나님, 제가 정훈이를 사랑하듯 하나님도 절 사랑하시나요?

제가 정훈이를 혼내기도 하지만 정훈이는 제 아들이어서 늘 사랑한답니다.

속상한 일이 있고 정훈이가 날 배반해도 전 정훈이를 사랑할 겁니다.

그런 관계가 하나님 아버지와 저 사이에 있나요?




정원과 서재


정원과 서재를 갖추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춘 셈이다. (키케로)


If you have a garden and a library,

you have everything you need. (Cicero)


작가와 학자는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


근데

한국 사회와 대학은

강사들에게

정원과 서재를 제공하고 있는가?




사명


사명이 있으면

주변 환경이 어려워도

극복할 수 있다.


개인의 영예가 아닌

개인의 발전을 직접적으로 겨냥하지 않은

사명이어야 한다.


그런 사명이라면

나를 살린다.


사명을 추구하면

영예도 발전도 따라온다.




교수라는 직


교수에게는 별 권력이 없다.

그저 학문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애착이 있을 뿐


이마저도 점점 나이가 들면

줄어든다.


세상 부조리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교수의 목소리도 점점 약해진다.


이 모두가

교수직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오는 게 아닐까?


교수직은

연구하라고 교육하라고

사회 봉사하라고

준 것인데,


난 어디서 헤매는 걸까?


뛰어난 논문과 저서를 썼으면

제자를 길렀으면

사회에 올바른 목소리를 내었으면


교수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길

작지만 소중한 소망과 사명으로 살아가길




출퇴근길


오늘도 걷는다.


출퇴근길 2시간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시간이다.


출근길은 오르막길이어서 운동이 되고,

퇴근길은 퇴근길이어서 상쾌하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해진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오늘도 걷는다.




마을길


출퇴근길에 큰 차로 옆을 걸어

자동차 매연이 걱정되었는데,

오늘 퇴근길에

좋은 마을길을 발견했다.


오늘 하루

이 발견 하나로

기쁘다.


이제 이 길을

계속 다니련다.





우리 삶에

쉼은 절실히 요청된다.


집이 주는, 가족이 주는

아늑함과 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몸이 좋지 않아

집에 누워

TV를 보고 있노라니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게으른 내가

더 게을러졌다.




삶과 독서


헤르만 헤세는

자신과 우리의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으로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 스스로

일상을 잊기 위해

책 한 권을 붙든 적이 많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책 한 권에 의존한 적이 많다.


양서나 좋은 취향의 진정한 적은

책 경멸자나 문맹자가 아니라

오히려 다독가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직접 써보라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누구나 직접 형편없는 시라도 지어보면 안 될까?

그렇게 해보라.

그러면 형편없는 시를 짓는 것이

심지어 최고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보다

훨씬 행복함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무슨 글을 써” 하는 자세가 아니라

“쓸데없는 글이라도 써보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루 한 장 글을 써보라.


그 글이 모이면

그래도 괜찮다.

(내 글처럼)

쓰레기 위에 피어나는 꽃도 있다.




버려지더라도


내가 쓴 글이 결국은 버려진다.

내가 쓴 책도 마찬가지다.

읽는 사람이 별로 없다.


많은 사람이 읽고 사랑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확율이 더 높다.


그래도 글을 써야 할까?

그래도 써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쓸데 없는 글이라도 써야 한다.

비록 나중에 버려질지라도

아무도 읽지 않는다 해도


써야 한다.

내게는 쓰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보잘 것 없는 삶이지만 ...

내게는 소중한 삶이다.




보왕삼매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연구해야 하나?

병심확과 삼근!

마음을 다잡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한다.

나름 해야 할 방법은 정해져 있다.

내 마음이 흔들리고 노력하지 않아서 문제다.

감사와 행운아 마인드로 살자.


아침에 ‘보왕삼매론’이 떠오른다. ‘보왕삼매론’을 마음에 새기자!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리지 말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억울함을 당해 밝히려고 하지 말라.




글과 산책


글은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마음을 쓸어내린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글로 풀어낸다.

조금 쓰고 있으면 마음이 풀린다.

마음이 치유된다.


산책도 마찬가지다.

걷고 있으면 나를 누르고 있는 압력에서 벗어난다.

가끔 새로운 마음을 얻고 시작할 힘을 얻는다.

출퇴근 2시간 걷고 나면 발과 다리에 힘이 생긴다.

그 기분이 좋다.


글과 산책은 닮은 점이 있다.




사명


내가 헌신해야 할 대상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내가 100프로 헌신하고 만족할 대상이 어디에 있는가?

아! 곤고한 사람아!

그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 대상이 너를 구원할 것이다.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

그곳에 내 구원이 있다.

그곳에 진정한 만족이 있다.

삶의 여건이 어려울지라도 그곳에 내 마음을 둔다면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사명이 있는 곳에는 비교도 없고

보상에 대한 불평도 없고, 삶의 권태도 없다.

사명이 있는 곳에 소망이 있고, 그 소망으로 살아간다.

아! 곤고한 사람아!

네 사명을 발견하라.

네 사명이 너를 구원할 것이다.

사명이 너를 살릴 것이다.




사명과 헌신


지난 몇 년 동안

‘감사와 행운아 마인드’를

주제어로 삼았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는 못했다.


‘감사와 행운아 마인드’를

당위 프레임으로 설정했지만,

‘감사와 행운아 마인드’는

당위의 언어가 아니었다.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였다.


며칠 전에

‘감사와 행운아 마인드’ 보다는

‘사명과 헌신’이 먼저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사명이 있고 헌신하게 되면

감사와 행운아 마인드는

절로 따라 오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 사명은 무엇이고

나는 어느 정도로 헌신하고 있나?

딱히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학문’이라고 막연히 이야기할 뿐 ...

‘작가로서 글쓰기’라고 말할 뿐 ...


오늘 우연히 가수 박진영씨가

I want to be 가 아니라

I want to live for 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봤다.

나와 비슷한 생각이란 느낌이 들었다.


사명을 발견하고

그 사명에 헌신하는 사람은

감사하게 되고

행운아임을 알게 된다.


나에게 그런 행운이 있을까?

그러길 간절히 바란다.




시골길


마을길을 걸어 퇴근했다.


귤밭 사이로 있는 마을길이나

학교까지의 마을길을 가다 보면

꿩이 놀라 날아가는 것을

자주 본다.


꿩꿩꿩꿔엉 ..

왜 꿩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알 것 같다.


제주대 교직원 아파트에 살 때에는

그 앞 도로에서

사슴을 가끔 보곤 했는데 ...


시골길에서 꿩을 만나는 게 반갑다.

나를 보고 짖는 개들도 ...

손짓으로 인사하는 아이가 정겹다.


‘행복한 동행’이라는 플랫카드가 보인다.

홀로 출퇴근하는 길이지만

누군가 동행하는 듯한

출퇴근길이다.




병심확과 삼근


출퇴근길을 걸으면서

장기 계획, 중기 계획, 단기 계획을

떠올린다.


사명을 기초로

목표를 향해

구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사명이 더 뚜렷해야 한다.

사명은 선명하게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정약용 선생님이 말씀한

병심확과 삼근이다.

마음을 다잡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해야 한다.


아! 곤고한 사람아!

부족함을 절실히 절감하는가?




훔볼트 로드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를 다룬

(형이 빌헬름 폰 훔볼트다.)

‘훔볼트 로드’를 시청하고 있다.


남미를 탐험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5년 2개월 동안 남미를 돌아다니며 측정했다.

1400장이 넘는 지도를 그렸다.

6만점이 넘는 동식물을 채집했다.


전문 장비도 없이 (당시 최고봉인) 에콰도르 침보라소 산을 오른다.

인간의 신체는 고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

식물은 어느 높이까지 살 수 있는가?

고도에 따라 어떤 식물이 있는지, 그 특징을 도표 한 장에 그린

‘열대지역의 자연도(1805)’를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훔볼트는 독화살로 잡은 짐승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느냐고

원주민들에게 물으니,

불에 익히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훔볼트는 쿠라레 독이 신경에만 영향을 미치고

소화기관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마셨다.

(오늘날 근이완제를 쿠라레로 만든다.)


전기뱀장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만지기를 여러 번 했다.


페루 북부의 과나페 섬

조류 배설물인 구아노를 연구했다.

(구아노는 엄청난 돈이 된다.

볼리비아령 아타카마 사막에서 구아노가 발견되어

페루-볼리비아 연합군과 칠레 사이에 태평양전쟁(1879-1883)이 발발한다.

이 전쟁에서 패한 볼리비아는 해안을 잃어 내륙 국가가 된다.

내가 페루에 갔을 때 빠라까스 섬에서 수많은 새와 물개를 본 적이 있다.

상상 이상이다.)

훔볼트는 이곳에 새들이 모이는 이유를 조사했다.

조수간만의 차를 채고 바다의 온도를 쟀다.

남극에서 남미 해안으로 흐르는 한류 해류를 발견했다.

이후 ‘훔볼트 해류’로 명명되었다.

한류가 상승하면서 플랑크톤이 떠오르고

이를 먹는 멸치가 모이고

이를 먹는 훔볼트 오징어가 모인다.

오징어에도 그의 이름이 붙었다. (거대 오징어다.)


정말 대단한 탐험가요, 연구자다.

30살에서 35살까지 5년을 탐험한 후

‘코스모스’ 등 80권의 저서를 저술했다.


“남아메리카 대륙 30.000km를 탐험했다.

그는 전 재산과 목숨을 걸고

측정하고 기록했다.

세상은 그로 인해 바뀐다.”

멕시코시티에서

엄청난 불평등을 보았다.

은광석에서 일하는 수많은 어린이를 봤다.

그곳의 인권 침해를 비판했다.

원주민인 인디오의 비참함을 아파했다.

무너뜨린 피라미드로 만든 교회를 보고

불평등의 이유를 알았다.


“인디언들의 소외는

지혜의 근원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만일 프랑스나 독일에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거대한 문화와 지식을 누가 이어갈 것인가

평등하게 교육기회가 주어질 때

과학과 예술이 차등없이 제공될 때

사회적 행복은 증가한다.“


“백인의 번영은 인디언의 번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명의 진보에서 나오는 모든 이득이

불행에 처한 인디언들에게도 나눠지지 않는 한

지속가능한 발전은 없다.” (훔볼트)




매핑 도스토옙스키


어제 서울 출장길에

교보문고를 들렀다.

나에게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다.

오전과 오후 2번 들렀다.


여러 책을 살폈다.

수많은 책이 나를 압도하지만,

책을 살피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한 권의 책에 꽂혔다.

석영중 교수가 쓴

‘매핑 도스토옙스키’다.

내 ‘365권의 책’에 속할 게 확실했다.


아!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


제주로 오는 내내 읽었다.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석 교수님의 글솜씨가 대단했다.


도스토옙스키를 더 알고 싶어졌다.

가능하다면 그의 ‘인간연구’를

소설 속에서 확인하고 싶다.




인생 마지막을 생각하며


병원 병실에서 노부부를 봤다.

누워있는 노인 옆에 간병인이 있고,

딸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문안을 왔다.


노인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손으로 닦아낸다.

아! 인생의 마지막에 처해 얼마나 외로울까!

어떤 심정일까!

나 또한 저런 날이 오겠지.

나도 30년 뒤, 40년 뒤 이 장면처럼 될 게 아닌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장면이다.

30-40년 뒤의 장면을 선취해 나를 대입해봤다.

슬펐다. 외로웠다.


언젠가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날이 오겠지.

자식마저도 간병인에 나를 맡기고 갈 날이 오겠지.

내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했다.


오늘은 인생이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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