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의 아포리즘 17
장 앙리 파브르
어제 밤에 정훈이에게
‘장 앙리 파브르’ 동화 전기책을 읽어줬다.
정훈이는 자연과학자 이야기를 좋아한다.
곤충을 좋아하지만 곤충을 연구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한다.
나는 곤충을 좋아하지도 관찰할 생각도 안 한다.
그럼에도 곤충학자 이야기는 너무 좋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게 느껴져서 그럴까?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모종의 신비감 때문일까?
곤충이 전부인 파브르야말로
‘진정한 학자’이지 않을까!
제목과 내용
지난 주 토요일 교보문고에서
두 권의 책을 샀다.
‘매핑 도스토옙스키’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이다.
‘매핑 도스토옙스키’는
기대하면서 샀다.
이 책에 필이 꽂혔다.
아주 재밋게 읽었고
내용이 알찼다.
저자의 인터넷 강연도 찾아 봤다.
글솜씨처럼
강연도 잘 하신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반신반의하면서 샀다.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궁금해서 샀다.
근데 대략 살펴보니
제목 때문인 것 같다.
제목을 너무 근사하게 뽑아
이 책을 읽으면
철학을 삶의 무기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내용은 글쎄 ...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철학을 삶의 무기로 삼을 생각을 하게 될까
잘 모르겠다.
내용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많지만,
제목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있다.
철학을 실용서의 내용으로 삼은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50개의 주제와 50명의 철학자, 너무 많다.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도구가 과연 될까
의문이 든다.
강의
학자에게 강의는 축복이다.
어디에서 1시간 넘게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겠는가.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있다.
가르침과 배움은 함께 성장한다.
강의가 부담되지만
연구 촉매제가 된다.
학생들이 배우는 것보다
내가 더 배운다.
학생들이 고맙다.
그래도 강의가 없는 날이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계속 나에게 묻는다.
대답 한 번 시원하게 못하는 질문을 계속 반복한다.
내 삶을 제대로 살기를 바라면서.
시원한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제대로 살고자 하는 몸부림을 원할 뿐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묻는다.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학문
학자로 교수로 내 삶을 살면서
학문을 대단하게 생각한다.
근데 내가 추구하는 학문이
초라하게 보일 때가 꽤 있다.
대단하다가도
초라해 보인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크지 않고 많지 않다는 사실이
양가성의 이유이지 않을까.
학문 세계는 넓고 깊은데
내 학문 세계는 좁고 얉아서
그런 게 아닌가.
그래도
내가 종사하는 분야이기에
소중한 게 아닌가.
이것을 붙들어라.
산책 아포리즘
산책을 할 때면
책상머리에서는 떠오르지 않는
착상이 떠오른다.
니체가 아포리즌 형식의 글을 많이 쓴 게
산책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산책을 해보니,
니체는 산책 중이나 산책 후에
아포리즘 형식의 글을 썼을 것 같다.
그와 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다르지만,
나도 출퇴근길에 걸으면서
단상의 조각들에 쓸
짧은 글을 떠올린다.
새로운 마음
안식년 연수를 통해
새로운 마음으로
연구하고 살길 바랬다.
연수를 끝내고 이내 알겠다.
새로운 마음이 휘날아갔음을
사명과 헌신이 없으면
새로운 마음이 없다는 것을
다시 붙잡아야 함을
사명과 헌신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마음이 있으면 행동하게 되고
행동으로 마음을 확인한다.
새로운 마음에는
새로운 행동이
반드시 있다.
눈물
가끔 눈물이 난다.
메마른 심정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눈물이 날까 싶다.
눈물이 난다는 건
그래도
내가 살아있다는 증표이지 않을까
오늘 따라
눈물이 반갑다.
왕벚꽃 길
제주대 앞 도로에
왕벚꽃이 폈다.
평소 한적하던 길이
북적거린다.
그 모습을 보니
뭔가 있어야
사람들이 모인다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다.
나비가 꽃을 찾듯이
사명
출세를 지향할 때는
눈앞의 파도에 마음이 흔들린다.
사명을 목표로 하면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격랑에도 평온함을 얻는다.
나같은 소인이
무슨 사명이랴만은
마음을 다잡고
삼근하라는
다산의 말씀을 붙잡고 싶다.
빈 공간
지난 10일 동안 꽤 바빴다.
바쁘게 생활하니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꽤 있다.
마음의 여유를 잃었다.
마음에 빈 공간이
필요함을 알겠다.
오늘 오전에는
집에서 푹 쉬었다.
쉬면서
빈 공간을 마련했다.
빈 공간을 애써 채울 필요가 없다.
빈 공간이
꽉찬 공간보다
더 요긴하다.
삶에는 여유와 비어있음이
긴장하며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월요일 아침 단상
주말 내내 우울했다.
월요일 수업 자료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주말에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주일에도 대략
수업 준비를 하고
잠을 잤다.
잠을 자도 편치 않다.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수업 자료를
들추어 본다.
수업 준비를 하는 게
뭔가를 몰아간다는 느낌이다.
입구에서 출구로
몰아가면서
빠뜨릴 것, 소홀히 한 것을
다시 강좌 하나로 만들어낸다.
초반에는 이것 저것
포부가 크지만,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고
포기한다.
기존의 것을 다시 읽고 또 읽고
보충해서
수업 자료를 만든다.
강의로 인한 스트레스를
강의 준비로 서서히 푼다.
늘 강의 앞에
초짜가 된다.
아니 초짜면 좋겠다.
초짜때는 잘 몰라도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다는 생각에
준비를 소홀히 할 때가 있다.
초짜 때보다
강의에 힘이 없는 건
그 때문이다.
초짜때의 열정!
그것을 기억한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
준비할 수 있다면 좋겠다.
벚꽃나무
벚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절정을 향해 가지만
어느덧 벚꽃이 떨어진다.
벚꽃이 피는 시간만큼
인생에서도 확 피는 시간은 아주 짧다.
인생 절정에 있다면
금방 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벚꽃나무처럼
꽃이 안 피는 시기를
무난히 잘 견디고
살아야 한다.
인생이란
활짝 핀 벚꽃이 아니라
꽃이 진 벚꽃나무임을
깨닫는다.
건널목 보행자 우선
미국 연수를 다녀와서
한 가지 확실하게 다가오는 게 있다.
(미국 교통문화가 다 좋은 건 아니다.
흑인을 대하는 백인 교통경찰의
인권 침해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미국 교통경찰은 많이 무섭다.
그에 비해 만만하게 느껴지는
우리나라 교통경찰이 더 정겹다.)
미국에서는 차량은 정지선에서 일시 정지를 하고
3초 정도 머문 뒤 가야 한다.
건널목에 사람이 들어서려 하면
차는 멈춘다.
건널목에서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충분히 차는 기다린다.
건널목에서 사람들은
마음 편하게 안전하게
건넌다.
요즘 차를 타고 가면
다시 옛 운전 습관으로 돌아와
건널목에 사람이 서있는데도
그냥 통과할 때가 있다.
보행자를 나름 배려한다고 머지감치 차를 정지해도
사람들은 움찍하며
건널목을 건너가기를 주저하거나
미안한 마음으로 뛰어간다.
나 보고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하기도 한다.
내가 보행자일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교통문화가 그래서
어쩔 수 없다 생각되어도
보행자 중심의 교통문화를
강력하게 도입하는 게
어떨지 생각해 본다.
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시행해야
바뀔 것 같다.
그냥 그대로 두어서는
예전과 똑같다.
내 운전 습관도 금방 예전으로 돌아왔다.
벚꽃과 인생
제주에 부는 비바람과 돌풍에
벚꽃이 우수수 떨어진다.
한때 장사를 하는 분들도 떠나고
관광객 발길도 끊어졌다.
1주일 정도 지나면
벚꽃이 다 지고
예전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제 또 1년을
이대로 산다.
우리 인생과 닮았다.
자연과 예술
오늘 아침에 아들 정훈이를 차로 학교에 데려다주는데
차 창에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고
자연이 예술이라는 말을 한다.
창에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니
그야말로 대단하다.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거다.
며칠 전에 차를 타고 가는데
벚꽃이 바람에 소용돌이치면서
꼭 눈이 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오늘 아침에 출근길을 걸으면서
제주대 앞 도로에 널린
벚꽂의 동그라미를 보면서
자연이 예술가라는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가우디가 자연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그의 위대한 건축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이
놀랍지 않다.
(물론 자연이 파괴자가 되기도 한다.
자연 앞에 인간이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출퇴근길
출근길, 퇴근길을 걷는다.
출근길 발걸음 수를 세어보니,
5천 5백보다.
퇴근길을 합치면
만보가 약간 넘는다.
오늘 퇴근길에
욕심 부리지 말자
평범해도 즐겁고 기쁘게 살자
생각을 마음에 담는다.
하루 하루
평범한 삶이지만
뚜벅뚜벅 걷는다.
때론 우울하고
열등감에 빠지고
허망한 마음이 들지만
때론 즐겁고
더 기쁘다.
오늘도
뚜벅뚜벅 걷는다.
새옹지마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날 때는
‘새옹지마’를 떠올려야 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기에
일어난 일이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새옹지마’로
마음을 달랜다.
인생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잘 되는 것도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새옹지마’의 힘이다.
무엇보다
‘새옹지마’가 일어나지 않아도
그렇구나 수긍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걷기의 치유력
퇴근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마음 속 무거운 생각들을 날려보냈다.
잘게 부서질 뿐이지만
걸으면서 치유된다.
글쓰기가 치유력이 있는 것처럼,
걷기도 치유력이 있다.
일을 미루는 방법
일을 미루는 방법으로
책을 읽고 초서하는 건
좋다.
인생 헛살았다는 죄책감으로
책을 푹풍 구입하는 것도
좋다.
인생 허비하고 낭비한 시간을
책과 함께 했다면
지금의 소가에서
중가쯤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