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경험을 모은다

단상의 아포리즘 5

by 고봉진

철학 에세이


(법)철학을 에세이와 연결해서 글을 쓰면 좋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정리하면 좋겠다.

나랑 이름을 같은 고봉진 선생님이

‘봄에는 바람 가을에는 비’라는 수필집을 썼다.

언제 이 책을 한 번 보고 싶다.

이런 책을 쓰고 싶다.


(고봉진 선생님이 최근에 작고하셨다.

안면은 없지만 인터넷으로 내 이름을 검색하면 늘 뵙던 분이다.)




골프와 인생


골프와 인생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평소 했다.

롤러 코스트 같다는 것,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 등등

오늘 골프를 하면서 느낀 점은

골프나 인생이나

큰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 같은 백돌이는

버디는 아니어도

파는 아니어도

보기나 더블 보기로 마쳐야 한다.


어느 때는 더블 보기가 아니라

4, 5개를 더 치면서

무너지는 홀이 있다.


18홀 전체에서

무너지는 홀이 없다면

그 골프는 잘 친 게 된다.


인생도 큰 실수만 없다면

무난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인생 살면서 버디가 계속 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지 않나?


큰 성공이 계속 되기보다

큰 실수가 없게 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은 아닐까?



작가는 경험을 모은다


작가는 경험을 모은다.

여행하기를 즐긴다.

여행지의 새로움을 마음 속에 담는다.

역사와 지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이것을 글속에 녹인다.

글은 텍스트이지만 콘텍스트이기도 하다.

글은 문자이지만 삶이기도 하고 여행이기도 하다.


좋은 글이 나오기까지 여러 단계의 숙성된 과정이 필요하다.




기초법학자의 임무


법철학과 같은 기초법의 대응은 느리기만 하다.

요즘 헌법 개정과 맞물려 헌법학의 논의와

수사권 조정 문제와 더불어 형법학의 대응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에 비해 법철학과 같은 기초법의 대응은 느리다.

(다만 최근 헌법재판소 양심상 병역거부 결정과 관련해

기초법에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 급할 것이 없는 기초법의 성격상

법의 기본원리와 내용을 심화해서 다루어야 한다.

우리는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빠르지도 않고

철저하지도 않은 것은 아닌가?


기초법학자로서

내 임무를 생각해 본다.




책과 삶

내 나이 48, 2년 뒤엔 50이 된다.

2018, 2019년이 지나 2020년이 되면 50살이 된다.

문득 내 삶이 곧 끝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

교수 2분기가 시작되었다.

내 삶을 새롭게 재구성하자!


괜찮은 책을 쓸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앞으로 몇 권의 책을 더 낼 수 있을까?

글과 책이 합쳐져 내 삶이 된다.




작가의 삶


시간이 글감을 준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이를 기록하면 된다.

글감에 대해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작가의 삶은 비슷할 것 같다.

무슨 쓸 꺼리가 없나 늘 찾아다닌다.

하루 일과 중에 특이한 사항이 있으면 글로 옮긴다.

평범한 일도 글로 쓰는데 하루에 특이한 일이 생기면 좋아라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사는 것 같다.


물론 나같은 아류 작가도 있다.

어느 때는 작가이지만 대부분은 백수로 지내는 ...




글쓰기


글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글쓰기가 날 자유롭게 한다.

글쓰기의 속박이 나에게는 필요하고 절실하다.

글쓰기의 속박이 날 자유롭게 한다.


글을 쓰면서 난 자유를 느낀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자유일까?

그렇지 않다.

무엇에 제대로 속박되어 있을 때 자유롭다.

자유를 주는 존재에 속박되어야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다른 생각


소설가들은 어떻게 작업을 하는가?

소설가만큼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한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창조해낸다.

쓰는 작품마다 창의성이 돋보인다.


다른 내 생각에 기초하지 않으면,

다른 글의 복사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뭔가 다른 것을 쓰려면 다른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글은 생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Think Different. Write Different.




낯선 곳으로


아무도 찾지 않는 낯선 곳으로 가보라.

남들이 가고 남들이 하는 것을 피해

남들이 멀리 하고 남들이 꺼려 하는 것을 살펴보라.

거기에 뭔가 다른 것이 있을지 모른다.


(이대로 실천하지는 못해도

내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글의 발화수반적 효과


글을 쓰면서 계획을 세운다.

내가 곧잘 하는 행동이다.


글로는 뭘 못 하겠는가?

실제로 행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글로 표현된 것은 믿을 게 못 된다.

그럼에도 글은 행동을 낳는 효과가 있다.

말의 발화수반적 효과라고 했던가?

글도 마찬가지다.

글도 발화수반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 효과를 톡톡히 체험했다.

물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게 더 많지만 ...




지혜로운 삶


지혜의 에세이를 쓸 수는 없을까?

여러 위인들이 남긴 격언을 모은

‘천개의 소망’, ‘천개의 희망’이 지혜의 격언들이 아닌가?

이를 모아 책을 펴낼 수는 없을까?


무엇보다 지혜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지혜로운 삶은 어떤 것인가?

지혜와 명철을 늘 가까이 두고,

지혜로운 생각을 하고,

지혜로운 활동을 하는 것 ...

지혜로운 인생이 되어야 한다.

지혜가 내 인생을 인도하기를 기도한다.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 지혜로운 인생을 사는 것,

내가 추구하는 삶이다.




Simple is better


단순화할 수 있으면

최대한 단순화하는 것이 낫다.

simple is better.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널려 있는 것보다

하나를 집중해서

하나를 신경 써서 완성해야 한다.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다른 하나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여러 개를 다 잘 할 수는 없다.



화장실과 산책


한참 책을 읽다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올 때

아이디어를 얻는다.


요즘 몇 번씩 그런 일이 있어

신기했다.


화장실 가는 짧은 순간이지만,

책 읽은 내용이 가장 선명하고

생각 밖에 할 게 없어

그런 것 같다.


책을 읽고

산책을 나가야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샌디에고 일상


방금 있는 일도 쓸거리가 된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좋겠지만

일상의 삶 자체가 글소재가 된다.


미국에서의 일상은

일상이 아닌 것처럼 살 수 있다.

한국에서의 삶보다

더 단조롭고 지루할 때가 많지만 ...


샌디에고 일기가 가능한 이유다.

단조롭고 지루하니까 글을 쓰게 된다.

미국 샌디에고 연수라는 이유로.




초서 습관과 글쓰기 습관


초서 습관과 글쓰기 습관 ...

모두 내가 힘들었을 때 생긴 습관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큰 좌절이

나로 하여금 크게 도약할 기회를 준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생의 좌절이 하게 한다.

감사할 일이다.



글쓰기와 인생


글쓰기와 인생 ...

두 코드로 살아간다.

내 글쓰기와 내 인생은 닮아간다.


내 인생을 글이 위로해주고,

내 글은 내 인생을 지지해준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다.

공생 관계에 있다.


작가로 살기로 결단한 이상,

매일 글쓰는 인생일 수밖에 없다.

글쓰는 존재다.




죽음을 가슴에 안고 살자


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죽음을 기쁘게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행복과 불행도 모두 사라지고 만다.


한동안 얻은 명예도, 한동안 누린 부도 모두 없어진다.

죽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

죽고 나면 이름이 남고, 그 사람의 기억이 남는다.




자연의 일부


대자연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자.


아둥바둥 거리는

내 모습이

초라하지 않게

자연을 경외하며 살자.


나 또한 자연의 일부일 뿐



늘 거기에 머물다보면


꾸준히 하다 보면 주목을 받을 때가 온다.

사람은 원래 그곳에 있지만 사람들이 그곳을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순간을 주목하는 시간이 온다.

(유시민이 썰전에서 이야기한 것이기도 하다.)


꾸준히 하고 결코 포기하지 말자.

인생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에 희망이 있다.




새로운 시도


아들 정훈이가 실험 정신이 꽤나 강하다.

놀이기구가 없어도 놀이를 개발해내는 기술이 대단하다.

정훈이는 ‘총검’ 게임을 만들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창작에 박수를 보낸다.

몰카도 여러 번 기획했다.

정훈이 머리 속에는 게임으로 가득하다.

아이의 세계는 순진하고 무궁하다.

아들 정훈이를 키우면서 재미를 느낀다.


내가 연구할 때도

이 아이의 새로움, 창작열을 가지고 임하면 새

로운 것이 하나 나올 것도 같은데 ...

엉뚱한 거여도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평범한 것을 계속 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제주와 샌디에고


주택가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꽤나 정겹다.

이곳 사람들이 누리는 삶이 자연과 가까이에 있음은 틀림없다.

샌디에고여서 더 가능한 일이다.


제주나 샌디에고나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이다.

인공적인 구조물보다는 천연 자연물이 경치를 이루는 세상이다.


‘제주와 샌디에고’란 에세이 주제는 어떨까?

제주와 샌디에고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기술하면 어떨까?

제주도 잘 알아야 되고 샌디에고도 잘 알아야 하는데 가능할까?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쓰면서 배우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전에도 생각했던 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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